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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May 22. 2024

상상이라는 광견

집주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주인이 주말에 집에 와서 계약 연장 건에 대해 이야기하잔다.


  잠이 달아나버렸다. 집과 마당 상태를 보려고 하는구나. 계약 연장을 안 하려는 생각이구나. 부동산에서 6개월 전에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으니 6개월을 줄 테니 집을 알아보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자꾸 이어진… 건 아니다. 그냥 딱 이 정도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어진 건 불안감이다. 최악의 상황이 이사라고 하면 어디를 갈 수 있을 것인가? 다음 집주인은 까다로울 것인가? 정도의 의문이 뒤따랐지만 지금으로선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하여,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이라면 그만두고자 했는데, 불안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계속 핸드폰을 쥐고 있다. 내일 있을 예정이었던 약속도 다음 주로 미뤘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말하고 싶었지만, 털어놓고 나면 속이 상할 것 같았다.


  최악이라야 이사 아니냐, 하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 살면서 변화는 막을 수 없다는 데 우리 부부는 동의했다. 그리고 변화 또한 변화일 뿐 그것을 나쁘다 좋다 판단할 수 없다는 데도 동의했다. 만사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게 있는 법이고, 눈앞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아도 다른 곳에서 창문이 열리든 다른 문이 열리든 개구멍이 열리든 하여 삶이 지속된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되었다.


  상상이라는 광견이 날뛴다. 집주인이 마당을 보고 트집을 잡을지도 모른다. 데크를 보고 트집 잡을지도 모른다. 서재 문을 보고 트집 잡겠지. 집안을 찬찬히 다 뜯어보겠지. 자기 집을 살피는 거지만 우리의 생활도 함께 뜯어보겠지. 화를 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집에 오는 것이니 아이가 같이 있을 텐데, 아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려면 부부 둘 중 하나는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피해야겠지. 상상이라는 광견이 침 흘리며 미쳐 날뛴다. 이놈의 목줄을 잡아채어 기를 죽여놓지 않으면 오늘 밤을 통째로 바쳐할 듯하다.


  떠올려본다. 나를 지탱해 주는 문장이 영웅처럼 머릿속에 떠올라 상상을 기죽여놓는다.


  “당신의 최악의 상상은 당신의 최고의 상상만큼이나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신과 대기실에서 우울증을 겪은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을 읽은 적 있다. 거기서 나온 문장이다.


  “당신에게는 일이 생겨도 그걸 이겨낼 자원이 아주 많다.”


  이건 내 상담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차차 진정되는 느낌이 든다. 광견에게 밤을 바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행이다. 아이가 자면서 끙끙댄다. 좋지 못한 꿈을 꾸는 듯하다. 쓰다듬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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