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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쌍의 장수풍뎅이

전직 어린이로서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날이 맑아졌네? 집 앞 계곡에 놀러 가기로 했는데 요즘 계속 비가 오거나 흐리더니만. 그래도 일단 엄마는 어류포획기를 주문하긴 했어. 날이 개면 가서 물고기 잡고 놀자.


며칠 전엔 삼촌의 생일이었지. 네 삼촌은 아빠의 형인데 싱글이야. 할머니는 네 삼촌의 미역국을 챙기셨지. 가족단톡방에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할머니가 올리셨던데, 왠지 엄마아빠는 그 메시지에서 안타까움을 느껴버렸지 뭐야. 엄마아빠도 예전에는 싱글인 게 어때서?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랬었지. 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둘이서 행복한 거, 셋이서 행복한 거를 이젠 엄마아빠도 알아버렸잖아. 나중에 네가 혼자서 누리는 행복만 누리고 살겠다고 하면 엄마도 씁쓸할 거 같은 거지. 사랑에는 받는 기쁨 말고도 주는 기쁨이란 커다란 게 있다는 걸 아니까. 옆에서 사랑을 주고받고 살 맞대고 살면서 삶을 공유하는 존재가 있으면 좋겠더라고. 그래서 어제 결국 네 아빠도 마음 아파하길래 할머니댁에 다녀왔지.


게다가 대형 사육통도 구했어. 정말 커서 삼촌이랑 고모랑 모두 다 깜짝 놀랐잖아. 요즘 곤충에 열을 올리는 네가 한쌍의 장수풍뎅이를 선물 받았잖아. 엄마는 발 밑으로는 땅이요 머리 위로는 하늘인 삶을 사는 곤충이 투명플라스틱 통 안에서 날아오르다 막히고 날아오르다 막히는 모습을 보자니 안타깝긴 하지만 네가 너무 정을 붙이고 장순이, 정순이 이름도 붙여주고 하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번식해서 알도 많이 낳고 보내주자고 생각했어. 너도 곤충젤리 다 먹이고 나면 놔주겠다고 했지.


엄마아빠는 정신 차리고 보니 너보다 더 열을 올리며 플라스틱 놀이목을 꺼내고 마당에서 톱질하고 나무를 가져와서 진짜 나무로 교체해 줬어. 이렇게 놓는 게 더 역동적인 배치라는 둥 어쩌는 둥 하면서 소나무랑 단풍나무를 넣어줬으니 잘 타고 놀았으면 좋겠구나. 참나무 진액을 먹는 녀석들이라니 먹이까지는 진짜를 구해주질 못하겠어서 곤충젤리로 단념했지. 장순이(수컷) 정순이(암컷)는 번식을 잘하려나 모르겠네. 마침 최근에 유퀴즈에서 나온 곤충박사 이지섭 형님을 보고선 너도 핸들링을 해보겠다고 중무장을 하는 모습에 얼마나 웃음이 터지는지 모르겠어. 겨울 장갑을 끼고 목도리로 팔을 둘둘 감고 그 위에 겨울 털모자까지 덮어쓰고 나서야 “엄마! 내 손에 얹어줘요!” 하는 게 어찌나 웃기는지. 엄마아빠도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 데려다 닭까지 키운 전직 어린이로서 네가 곤충 한쌍을 키우겠다는 걸 못하게 막을 수가 없었어.


네 덕분에 웃음이 팡팡 터지는 나날이야.

이 웃음이 언젠가 흘릴 눈물을 닦아줄 거야.


대선 투표 마치고 뭐 하고 놀까?



사랑해,

이따 만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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