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걔들한테 빽 소리 지르지 마세요
아들에게,
방금 유치원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왔어.
네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구나. 너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아이는 작년엔 요즘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심했다고, 선생님 두 분도 놀랄 정도였다고 하니, 네가 그 아이랑 같은 공간에서 종일 붙어있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많이 쌓였겠어. 그 아이는 요즘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이야기를 계속 네 옆에서 떠들어댄다지. 너는 하지 말라고, 싫다고 말했지만 걔는 네 말을 듣지도 않고 입만 벌리면 네가 싫다는 놀이, 이야기. 너는 밤이 되면 어둠이 무섭고, 밤이 무섭고, 엄마 옆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 네 달리기 실력을 놀리면서 넌 앞으로도 빨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니 엄마는 솔직히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알았어.
그런 이야기들을 선생님과 나눴지. 이미 선생님은 누구 한 명 중심으로 돌아가는 놀이에 쏠리는 걸 금지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라거나 어떤 말을 하라거나 시키는 것도 금지하시고. 이미 선생님이 조치를 하고 계셨지만 네가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까지는 잘 모르셨더구나. 그 부분을 선생님께 설명하고 우리는 어떻게 네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슬그머니 찾아줄지 논의했어.
어차피 어디를 가나 너와 도저히 안 맞는 사람은 만나기 마련이고, 피하면서만 살아갈 수 없어. 네가 네 중심을 잡고 상처받지 않을, 혹은 상처를 최대한 조금만 받을, 아니면 상처받고도 잘 회복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길을 찾는 게 더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일 거야. 너와는 조금 달리 움직임이 민첩한 아이들이고 목소리 크고 말이 많은 아이들이라 걔들이 좋아하는 놀이로 많이 끌고 가려하겠지만, 선생님이 중심을 잘 잡아주실 거야.
선생님과 엄마는 네가 그런 아이들에게 질투심이 일었을 거라고도 생각해. 부러웠을 수도 있고.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넌 덕분에 예전보다 활동적으로 변해가고 있거든. 너는 그들과 발맞춰 가고 있고, 넌 네가 좋아하는 것도 같이 했으면 하는데 그 아이들은 관심이 없고 상대적으로 자기들보다 느리고 순해 보이는 네게 이것저것 요구하고 시키고 싫다는 말도 들은 척도 안 하는 거지. 어떻게 보면 선생님은 그 아이들이 너를 질투하는 것도 같다고도 하셨어. 반 아이들이 네게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온다지.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글도 너만 직접 쓰고 나머지는 다 선생님이 써주신 걸 따라 쓴 거라면서. 그러니 좀 자기들과는 다르고 부러워하는 것도 같다고.
어차피 모든 아이는 다르고 모든 부모가 다르니, 걔들 부모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양육 중인지는 몰라. 너를 보면서 뭘 그리 어릴 때부터 글자 가르치냐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는 엄마가 한글을 가르친 적도 없어. 작년에 유치원 선생님이 맛만 보여주시고 그때 있던 형아누나들이 하는 거 어깨너머로 보고 스스로 익힌 거지. 걔들과 다른 게 있다면 너는 책이라는 걸 부담감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먼저 알았다는 것, 궁금한 게 많아서 알고 싶은 것도 많다는 것이야. 그 어느 하나도 엄마가 강요한 건 없어. 그건 그저 네 색깔이야. 넌 그냥 걔들과 달라. 걔들 집에서는 네가 크게 관심 없었던 움직임이나 활동적인 영역을 더 우선시했을 수도 있고, 어리니 어느 정도는 버릇없이 자라도 크면 다 괜찮아진다고 생각한 지도 모르지. 뭐... 추측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맞겠어.
확실한 건, 본인과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 널 지켜보고, 네 말을 귀담아듣고, 그렇게 네가 좋아할 만한 방법 중에 좋다고 판단이 서는 걸 추려서 권해볼게. 조금만 기다려 줘. 엄마 아빠가 좀 더 힘내볼 테니.
넌 오늘 유치원에서의 일은 네 선에서 해결하겠다고 했지. 정확히는 “유치원 일은 내가 해결할게요. 엄마가 걔들한테 빽 소리 지르지 마세요.” 였다만.
엄마가 빽 소리 지르는 일은 없을 거야.
넌 네 방식으로 해낼 테고, 그동안 있을 좌충우돌을 우리는 지켜볼 테니까.
사랑하는 아들,
이제 널 데리러 갈 시간이야.
이따 만나.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