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의미

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장 생활 칼럼

by Kimkihoon

중국에 살면서 우표 수집을 하는 취미에 십여 년을 중국 우표수집가들과 교류하면서 세월의 벗을 찾은 지 오래이다. 내가 처음 중국에 오기 전 중국에 가면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재미난 생활을 하겠지 하면서 부푼 기대를 가졌었다. 내 기대는 자연스레 많은 친구를 만들게 되었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연령대가 할아버지 뻘이나 아버지 뻘이었다. 그 중국 우표 수집가 친구들을 상대로 무료 우표 강의를 한지가 십 년이니 그 세월 속에서 나도 생각하는 바를 중국어로 전달하는 능력 또한 일취월장 할 수 있었으며 좋은 인연들과 세계를 여행하며 즐거운 추억을 가질 수 있었다.

중국의 우표 수집의 역사는 공산당 통치하에서는 매우 발전이 더딘 것이 사실이었다. 일병 지식분자(화이트칼라)나 부르주아(자본가) 사이에서 유행한 우표 수집은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수 있는 좋은 취미이자 학문이다. 그런 이유에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중국 우표 수집가들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식인들이 많고 그 연륜과 통찰력은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꽤 진지하고 깊다. 그런 할아버지 뻘 친구들과 오랜 세월을 하니 나도 반은 영감이 된 것은 아마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가 보다.

소(蘇)씨 할아버지는 국영 전기 회사를 다니신 꽤 학식이 높은 엔지니어이시다. 중국의 1세대 과학기술자이신 소씨 할아버지는 나와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십여 년이 넘었다. 직업이 전기 엔지니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우표 수집하는 주제도 전기이다. 십여 년을 함께 우표 수집을 하며 한 달에 한번 모임에 나오시던 소씨 할아버지는 일 년여를 뵙지 못했는데 어제 모임에 나오시게 되어 만 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만남의 과정이 참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열한 시가 되었을 무렵 약속 장소에서 전화 한 통이 왔다. 몸도 불편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모임 시간보다 세 시간을 미리 오셔서 기다리신다는 전화였다. 나는 전동차를 타고 소씨할아버지를 모시러 나갔다. 그런데 일 년여를 뵙지 못한 터라 소씨 할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연로하신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집으로 모시고 와서 차를 한잔 대접하니 열 두시가 되었다. 내가 아침에 끓여 놓은 죽과 나물이 있어 할아버지께 대접하며 맛있게 드시는 모습에 친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눈물아 핑 돌았다. 그도 그런 것이 소씨 할아버지는 일 년 전 사모님과 사별하시고 외롭게 살아오신 터였다. 늙어가는 세월에 사랑하는 동반자를 잃어버린 그 사무치는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마는 그 빈자리의 서글픔이 할아버지 어깨에 고스란히 내려앉은 듯했다.

”好吃很舒服了谢谢你呀!”
맛있어요 매우 편안합니다. 감사해요”

소씨할아버지의 어깨와 다리에 묶인 세월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나는 예전 중풍에 걸린 할아버지 수발 때 배운 안마를 해드렸다. 그러자 소씨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시며 한마디 말씀하셨다.

“好朋友” - 하오 펑요 / 좋은 친구

나는 한 것이 별로 없다. 그냥 죽 한 그릇 대접했고 가지고 있는 손길 한 번을 좋은 마음으로 전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소씨 할아버지에겐 그 작지만 다정한 관심과 정을 오랜만에 느끼신 것 같았다. 나이가 들고 이야기 들어줄 동무도 없는 요즘 세상에 자식들은 다 외지나 외국에 나가 사니 노인들의 외로움은 누가 들어줄까? 비록 우표 수집으로 만난 사이이지만 좋은 우정의 벗으로 그 세월의 차이도 극복하고 미소 지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는 지금도 늙어가고 있다. 신체가 늙는 것은 비록 기술적인 문제이지만 마음이 늙어가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고독감이다. 그 고독감은 벗이라는 따뜻한 차 한 잔과 같은 여유로 녹일 수 있고 담소 나누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받은 축복일 것이다.

친구란 바라는 것 없이 챙겨주고 싶을 때 그 마음이 진정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전해지는 우정은 함께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이자원방래 불역락호!
멀리서 친구가 왔는데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오늘 친구 만나러 가자!

2019년 3월 18일 북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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