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장 생활칼럼
패왕별희(覇王別姬)
오늘은 만우절이지만 또한 중화권에서는 한 연기자를 기리는 날이다. 바로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떠나간 장국영의 기일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법도 한데 그 사람의 향기는 왜 더 은은하게 풍겨 사람들의 가슴속에 피어오를까? 내가 기억하는 장국영의 가장 큰 인상은 패왕별희와 천녀유혼이다. 하나는 예술성이 깊었고 하나는 대중성이 높은 작품이었다. 그도 그런 것이 홍콩 영화에서 두 작품이 남긴 족적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크다. 그중에서도 패왕별희의 장국영은 연기의 몰입도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듯한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분간치 못할 정도로 열연을 했다. 아직도 그의 영화 인생에 있어 슬픈 영혼을 대변하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예견된 연기자의 각인이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해하가 (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時不利兮騶不逝(시불이혜추구서)
때가 불리하여 내 말이 나아가지 않는구나
騶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나하)
말이 달리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 것인가
虞兮憂兮奈若何(우혜우혜나약하)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는다 중국 역사상 천하를 놓고 서로 차지하려는 유방과 항우의 싸움이 마침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항우의 초군은 유방의 한군에 겹겹이 포위되었고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렸다. 사면초가(四面楚歌)였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오강의 마지막 결전이다. 항우는 한밤중에 일어나 장중(帳中)에서 술을 마셨다. 진나라 말기 항우가 한나라 고조의 군사에게 해하(垓下: 安徽省 靈璧縣)에서 포위되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막다른 상황에 다다르자, 최후의 주연을 베풀었다. 이렇게 끝나버리는 것인가? 그런 것인가? 항우는 비통한 심정으로 시를 지어 읊었다.
우(虞)는 항상 항우의 총애를 받으며 시종 하는 미인, 추마는 항우가 항상 타고 다니는 준마였다. 항우의 뺨에 몇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니 좌우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항우가 여러 차례 노래를 부르니 우미인도 일어나 칼을 빼어 춤을 추며 화답했다.
한군이 이미 땅을 노략질했네(漢兵已略地)
사면에 초나라 노랫소리(四方楚歌聲)
대왕은 의기 다하였으니(大王意氣盡)
이 몸 어찌 살아남으리오(賤妾何聊生)
노래를 다 부르고 춤을 마친 우미인은 칼로 스스로 목을 찔렀다. 훗날 슬피 숨져간 우미인의 무덤가에서 작은 바람에도 엷게 떠는 비단결 같은 꽃잎의 꽃이 피어났는데, 이후 사람들은 이 꽃을 우미인의 영혼이 환생한 것이라 하며 ‘우미인초’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화사하기로 친다면 양귀비를 따를 꽃이 없다. 하지만 양귀비의 농염함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섬약(纖弱) 하여 보는 사람에게 가련한 느낌을 주는 꽃으로는 우미인초(虞美人草)만 한 꽃이 없다고 한다.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양이 무슨 상념에 잠긴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일까? 진정으로 위하건대 낭군의 절명을 앞두고 떠는 것은 무슨 배려일까?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슬픈 이야기이다.
패왕별희의 슬픈 이야기는 중국 근대화의 시대적 배경 아래 암울하고 혼란했던 시대의 조명과 어울려 연기자들의 흉금을 울리는 활약으로 이름을 남긴다.
패왕과 별희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기에 역사는 그들의 사랑을 기록하고 그 기록은 또 다른 시대의 연기자의 열연으로 또 그를 기리고 있다.
虞兮憂兮奈若何(우혜우혜나약하)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자꾸 귀에 울린다.
2019년 4월 1일 북경에서
2017년 마카오와 2005년 홍콩에서 발행한 패왕별희 우표와 장국영 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