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장 생활 칼럼
2003년 대통령 취임우표
“우리나라의 진보는 극단적이고 보수는 뻔뻔하다.”
어제 국회의원 보궐 선거가 있었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에서 정의당 후보가 승리했다. 노회찬 의원의 서거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그 전처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도 매우 비슷하다. 사람이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신념과 자존심이다. 통장에 29만 원을 두고 치매노인이 골프 치러 다니면서 국민을 학살한 증거를 감추고 괴변으로 쓴 책을 팔러 다니며 법정에 출두해서는 왜 이래 하는 인간과는 차원적으로 다르다. 찔리는 게 있으니까 자살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목숨을 걸고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의 위기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낸 시절 그에게 편지 한 장을 보낸 바 있다. 그 내용은 변화에 대한 꿈과 열정에 관한 응원의 메시지였다. 물론 탄핵이 기각되어 다시 돌아온 대통령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2004년의 기록의 저너머에서 나는 다시금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그립다. 단지 그의 죽음이 슬프고 애달파서가 아니라 그가 생각한 대한민국의 길은 매우 명확했으며 길게 내다보았으나 스스로에게는 고달픈 시절이었을 것이다.
중국 친구가 물어보길 한국 대통령들은 왜 그렇게 명이 사납냐고 물어볼 때면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되돌아보면 한 사람은 자유를 생각한다며 민족주의자들을 죽이고 친일세력들로 정권을 꾸리다 독재하다 쫓겨났으며 한 사람은 며칠 해보지도 못하고 내려오고 그 뒤에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경제 개발이라는 단물을 뿌리며 독재하다 여자 끼고 술 마시다 부하에게 사살당했고 뒤로 언감생심 대통령 된 허수아비는 바로 정권을 다시 군사 정권에게 넘겼으며 국민을 총칼로 다스린 어느 인간은 그 친구랑 대통령 하다 손잡고 감옥 갔다. 두 민주주의 대통령은 너무 늦게 대통령이 되어 힘들어했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한 인간은 그 자리를 고달파하면서도 권위를 타파하려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경제 위한다던 인물을 알고 보니 훔쳤먹는 쥐였으며 독재자의 딸은 무녀의 놀음에 놀아나다 탄핵을 당했다. 참으로 돌이켜보면 슬픈 역사이자 우리의 과거이다.
나는 노무현을 생각해보면 중국의 민족영웅 악비가 생각난다. 악비는 조국을 구하노라 목숨을 걸고 싸우다 내부의 간신들이 의해 살해당한다. 결국 적은 내부에서 비롯된다고 하던가? 토착 왜구라고 일컬어지는 적폐 세력들은 스스로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언론을 조종하고 뒤로는 죄 없는 여자 연기자를 강간하여 자살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별장 성접대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참으로 뻔뻔해도 이렇게 뻔뻔할 수가 없다.
한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인간이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위해 세상을 속이고 시류에 타협하여 살면 세상은 조용히 흘러갈까? 아무 갈등 없이 내 위치만 지키고 살면 되는 것일까? 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노무현이란 바보는 사람 사는 세상을 부르짖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내려놓고 세상을 행해 외쳤다. 구차한 삶이 아니라 극단적이지만 후회 없는 신념으로 몸을 던졌다. 어느 어린아이의 물음이 생각난다.
“엄마 왜 착한 사람은 일찍 죽고 나쁜 놈은 오래 살아요?”
엄마의 대답은 참으로 명언이었다.
“아들아 하나님도 나쁜 놈은 곁에 두기 싫어하신단다.”
그렇게 믿지만 너무 일찍 가버린 노무현과 노회찬이 그립다. 그리고 누구의 왜 이래는 유행어가 돼버렸다.
그렇게 한없이 그립다. 그리고 또 슬프다.
2019년 4월 4일 북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