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칼럼.
어제는 하루가 정말 길었다. 습도가 높아서 숨이 막히는 듯하였고 비가 내리니 숨통이 트였다. 자연이 주는 체감의 온도는 그렇게 인간을 무력하게도 다시 시원하게도 만들어 준다. 모든 장치는 하나의 기교일 뿐 운명을 따라가는 인간의 순리는 자연 앞에서는 고요한 외침 일 뿐이다.
“예술하는 사람은 만나기가 어렵지 만나면 즐겁다.”
자연의 순리처럼 잊고 지낸 무언가가 스치는 빗방울처럼 번뜩이며 다시 지나온 자리를 더듬어 찾아간다. 여기인지 저기인지 내 기억 속의 그 장소는 생각보다 깊숙하게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내어 이야기하는 경우는 만나는 사람의 호응과 공감을 통해 표출되어 소리친다.
“우리 함께 살아 있구나”
나보다 한 살 많은 예술가 형이 운영하는 천사의 문이라는 쉼터에 찾아갔다. 인간이 술 한잔 하며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니 그 이름이 참 재미있다. 이름은 아기자기한데 실상은 현실의 고통을 피해 올라온 밤의 풍경이니 천국도 지옥도 다 다 인간의 상상일 뿐 기억하지 못하는 꿈일 뿐이다. 다만 그곳에서 만난 인연이 짧고도 긴 삶의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 예술가 형의 장소에서 형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일들이 많아졌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예술가로서 아니라 인간으로 숙성되어 간다라고 생각되었다. 그러자 형은 성숙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성숙이라는 말은 이미 비교 대상을 놓고 나아진 거라는 생각에 별로 흥분되지는 않았다. 숙성이라는 말은 성숙이란 말을 뒤집어 놓았을 뿐이지만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감칠맛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든 김치가 읶어가는 맛이 인간의 삶과도 많으 닮아 있다 생각되었다. 알지도 못하는 말을 씨부리면 재미도 없고 지루하기만 할 텐데 사는 이야기 생각의 깊이와 각성을 듣고 있으니 숙성된 김치 맛이 한결 느껴졌다.
“이 형이 원래 이래 감성적이었나?”
과거의 자신의 삶이 도시적이고 현대적이라면 물질문명의 허울은 스스로 그 가치의 존재를 잃어버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을 구분 짓기보다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는 행복을 형은 이야기했다.
이 형은 요즘 캠핑을 즐겨 산과 바다를 누비는데 우연히 사람들과 피워놓은 모닥불을 이야기했다.
“저 모닥불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네
무엇이 더 아름다울까?
그대들이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을 때
나는 나 스스로를 태우며 빛을 발하네
재가 되어 날아갈지언정
타는 순간에는 형용하지 못하는 눈물이
빛이 되는 희열에는 어둠이 있네
그 모닥불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네
나보다 아름다운지
그대들이 바라보는지.”
나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지만 상상이 되었고 절제된 감정에는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있다. 그렇나 부산 사투리로 들여오는 형의 고백이 나에게 두선 마주잡고 악수를 하게 했다.
“형 고마워 넬 쓸 감동을 줘서”
형은 운명적인 예술의 경험들을 신의 축복을 간증하듯 술 한잔 회포와 함께 술술 풀어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맞춤형 예술 마담”
멋져 보이기도 숙성된 경험의 감칠맛이 다른 안주가 필요 없게 보드카 한 병을 비워버렸다.
형은 내게 이야기했다. 스스로 40에 은퇴해서 지리산 자락에 마련한 땅에서 하고 싶은 걸 할 거라고.
부럽지는 않았지만 존경스러웠다. 나는 자연인이다. 가 생각났기에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고 생각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운명 같았고 그렇게 밤은 새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평소 어둠에 가려 보지 못한 무언가가 나름 자신의 위치에서 기지개를 켜는 시간
그 이야기를 정리하는 아침이다.
“시작하기 어렵지 시작하고 나서 멈추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2019년 5월 19일 북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