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상군 이야기

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생활 칼럼

by Kimkihoon





아침에 문뜩 인간의 지혜로움이 무엇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는 많은 인물들이 있으니 그 지혜로운 자는 수없이 많으나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내가 즐겨 그리는 사군자의 소재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맹상군은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정치인으로 이른바 ‘전국사공자(戰國四公子)’ 가운데 하나이다. 제(齊)의 왕족으로서 진(秦), 제(齊), 위(魏)의 재상을 역임하였으며, 천하의 인재들을 모아 후하게 대접하여 이름이 높았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에서 설(薛) 지역의 풍속을 경험한 바를 적으면서 “세상에 전하기를 맹상군이 손님을 좋아하고 스스로 즐거워하였다고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 名不虛矣)”고 하였다. 여기에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성어가 비롯되었다.

맹상군(孟嘗君)이 설(薛)에 있을 때 제후들과 빈객과 죄를 짓고 도망다니던 사람들을 불러들이자, 그들은 모두 맹상군(孟嘗君)에게 모여 들었다. 맹상군(孟嘗君)은 숙사를 짓고 그들을 매우 후하게 대접하였고, 그로 인하여 천하의 어진 선비들이 모두 그에게 모여 들었다. 그 식객이 수천 명에 달하게 되었지만, 모두에게 귀천을 구분하지 않고 한결 같이 자기와 동등하게 대접하였다.

맹상군(孟嘗君)은 기다리던 손님과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는 항상 병풍 뒤에 그 대화를 기록하는 사람을 두어, 손님과 나눈 대화와 그 친척이 있는 곳 등을 묻고 기록하게 하였다. 손님이 가고 난 후에 맹상군(孟嘗君)은 사람을 시켜서 그가 말한 친척들을 방문하여 선물을 주었다. 맹상군(孟嘗君)이 이전에 손님을 대접하며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불빛을 가리고 있었다.

손님은 화를 내며 맹상군(孟嘗君)과 자기의 밥상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여 밥을 먹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였다. 맹상군(孟嘗君)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먹던 음식과 그 손님이 먹던 음식을 비교해 보이니 그 손님은 부끄러워 어쩔줄 몰라 하며 스스로 목을 베었다.이 일이 있고 난 후에 천하의 어진 선비들이 더욱 맹상군(孟嘗君)에게 모여들었다. 맹상군(孟嘗君)은 오는 손님들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똑같이 잘 대접하였다. 손님들은 저마다 자기는 맹상군(孟嘗君)과 절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진(秦)나라 소왕(昭王)은 맹상군(孟嘗君)이 어질고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자기의 동생 경양군(涇陽君)을 제(齊)나라에 볼모로 보내고, 맹상군(孟嘗君)을 만나 보고 싶어 하였다.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에 가려고 하자, 빈객들 중 그가 진(秦)나라로 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로 하여금 진(秦)나라에 가지 말도록 간했으나 맹상군(孟嘗君)은 듣지 않았다.

소대(蘇代)가 맹상군(孟嘗君)에게 말하기를, "오늘 아침에 이 소대(蘇代)가 제(齊)나라로 오던 중에 나무 허수아비와 흙 허수아비가 서로 나누고 있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나무 허수아비가 말하기를,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면 너는 부서져 없어질 것이다.' 라고 하자, 흙 허수아비가 말하기를, '나는 본디 흙에서 태어난 몸이라 빗물에 부서진다면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지금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강물에 떠내려가 멈추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지금 진(秦)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나라인데, 군(君)께서 그곳에 굳이 가려 하시니, 만약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흙 인형의 비웃음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하자, 맹상군(孟嘗君)은 소대(蘇代)의 말을 듣고 진(秦)나라에 들어가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제민왕(齊湣王) 25년, 제왕(齊王)은 결국 맹상군(孟嘗君)을 다시 진(秦)나라로 들어가게 하였다. 진소왕(秦昭王)은 진(秦)나라에 온 맹상군(孟嘗君)을재상에 임명하려고 하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진소왕(秦昭王)에게 말하기를, "맹상군(孟嘗君)은 어진 사람이긴 해도 제(齊)나라 출신입니다. 지금 그를 진(秦)나라의 재상으로 임명하면 필시 제(齊)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秦)나라는 나중에 생각할 것이므로, 그리되면 진(秦)나라가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진소왕(秦昭王)은 맹상군(孟嘗君)을 재상에 임명하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맹상군(孟嘗君)을 역관(譯官)에 가두고 계략을 꾸며서 죽이려고 하였다. 맹상군(孟嘗君)은 사람을 시켜 소왕(昭王)이 총애하는 첩에게 자신을 풀어 주기를 청하도록 하였다.

소왕(昭王)의 애첩이 말하기를, "소첩은 군(君)이 갖고 있던 호백구(狐白裘: 여우 겨드랑이의 흰털로 만든 가죽옷)를 갖고 싶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 당시 맹상군(孟嘗君)은 호백구(狐白裘) 한 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호백구(狐白裘)의 값은 천금을 호가하는 천하의 둘도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秦)나라에 들어올 때 소왕(昭王)에게 바쳤기 때문에 애첩에게 줄 호백구(狐白裘)가 없었다.

맹상군(孟嘗君)이 이를 근심하며 그의 문객들에게 대책을 물었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가장 아래쪽 자리에 개의 흉내를 내어 도적질을 하는 사람이 맹상군(孟嘗君)을 향해 말하기를, "제가 가서 호백구(狐白裘)를 가져 오도록 해보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윽고 밤이 되자 그 사람은 개 흉내를 내며 진(秦)나라 궁중의 재물창고로 잠입해 들어가 전날 맹상군(孟嘗君)이 소왕(昭王)에게 바친 호백구(狐白裘)를 훔쳐냈다. 맹상군(孟嘗君)은 훔친 호백구(狐白裘)를 사람을 시켜 진소왕(秦昭王)의 애첩에게 바쳤다.

진소왕(秦昭王)의 애첩이 맹상군(孟嘗君)을 위해 석방을 간곡히 요청하자, 소왕(昭王)은 맹상군(孟嘗君)을 풀어 줬다. 맹상군(孟嘗君_은 석방되자, 즉시 말을 타고 달아났다. 그는 봉전(封傳: 통행증)을 가짜로 만들고 이름과 성을 바꾸어 관문을 통과했다.

맹상군(孟嘗君)의 일행이 한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당도했다. 한편 맹상군(孟嘗君)을 석방한 일을 후회하게 된 진소왕(秦昭王)은 다시 잡아들이려고 했으나, 이미 맹상군(孟嘗君) 일행이 도성 밖으로 빠져나간 후였다. 진소왕(秦昭王)은 즉시 사람을 시켜 말을 타고 그 뒤를 추격하도록 하였다.

맹상군(孟嘗君) 일행이 함곡관(函谷關)에 도착하였으나, 당시 관(關)의 규정에 첫 닭이 울어야 관문을 열어 사람들을 통행시켰기 때문에 맹상군(孟嘗君)은 추격군에게 붙잡히게 되지나 않을까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때 맹상군(孟嘗君)의 말단 식객 중에 닭우는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한 번 닭 우는 소리를 내자, 주변의 닭들이 일제히 따라서 울었다.
드디어 맹상군(孟嘗君)의 일행은 가짜 봉전(封傳)을 보이고 관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이 관(關)을 빠져 나온 다음 한 식경 쯤 되었을 때 마침내 진소왕(秦昭王)이 보낸 추격군이 함곡관(函谷關)에 당도했다. 그러나 이미 맹상군(孟嘗君) 일행이 관문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왕(秦王)의 추격군은 되돌아갔다.

처음 맹상군(孟嘗君)이 천한 재주를 가진(계명구도: 鷄鳴狗盜) 두 사람을 빈객으로 대우하자, 여러 빈객들은 그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해야 한다는 처사에 수치로 여겼었다. 진(秦)나라에서 맹상군(孟嘗君)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때 이 두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그후로 빈객들은 모두 마음속 깊이 맹상군(孟嘗君)을 따르게 되었다.

사람은 어디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은혜로운 도움을 받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자는 공손하고 겸손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자라고 맹상군은 이야기 해주고 있다. 맹상군처럼 사람을 사랑해보는 하루이다.

2019년 5월 31일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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