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원하는 만큼 푹신한 이부자리에 누워있으면 행복하기도 하지만
아들을 보면 오랫동안 밀린 숙제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기분의 이름은 '불안'.
여전히 잔소리를 해야 아침 양치를 하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게임 외에는 다른 분야에 관심이 현저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슴 한구석을 쓰리게 한다.
내가 일터에 가든 가지 않든 아이는 똑같은 모습일 수 있겠으나
부모로서 적적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분을 애써 누르며 지난번과 비슷한 잔소리를 하고 있는 엄마와
풀이 죽어 다른 곳에 시선을 던지는 아들.
테만 두르면 '잔소리'라는 제목의 라이브 영상이 될
내가 아주 싫어하는 풍경을 직접 연출, 주연하고 있는 중이다.
불안은 모든 상황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기에 느껴지는 감정이다.
때문에 자만의 결괏값이기도 하다.
엄마의 품에 안겨 젖을 빠는 아이에게 불안은 이 세상 단어가 아니다.
보호자를 상실하고 홀로 선 아이의 세계에 존재하는 개념이 불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지금의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손 아래 있다'는 믿음이
겸손과 평안을 선물한다.
오히려 주중에는 출근할 때 갈대상대를 나일강에 띄우며
하나님의 손에 아들을 맡기는 모세의 어머니를 떠올리며 가볍게 집을 나서는데
주말에는 기도보다 뭔가 내가 하려는 무거운 책임감도
자만의 한 형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갈대상자를 둘러싼 물결마저 아기 모세를 잠잠히 어르고 달래는 고운 손길로 사용하셨던
하나님의 그 손이 동일하게 우리 가족을 붙들고 계심을 믿자.
그 믿음으로 평안하자.
* 삶으로 : 가족을 위해 뭔가를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할 때
하나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일까 잠시 기도해 보고 움직이기.
내 뜻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계획은 이뤄지고 있음에 감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