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휴가인 ‘섬 관리인’
휴가 어떻게 보내셨나요? 복잡한 도심을 떠나 한적한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산과 바다가 있는 곳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더욱 좋을 텐데요. ‘섬 관리인(island caretaker)’이라는 직업을 통해 코로나19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답답함을 달래보시기 바랍니다.
호주 퀸즈랜드(Queensland)주 관광청은 2009년 세계 최대 산호초 지대인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의 해밀턴 아일랜드(Hamilton Island)에서 6개월 계약으로 일할 ‘섬 관리인(caretaker of the islands)’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낸 적이 있습니다. 숙소와 150,000달러의 급여를 제공한다는 조건이었죠.
이는 관광객을 끌어들일 목적으로 섬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한 ‘The Best Job in The World’라는 마케팅 프로젝트로, 주어진 임무는 섬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섬에서의 일상을 글과 사진 또는 동영상으로 포스팅하여 SNS에 올리는 일이기 때문에, 지원 자격은 영어를 말하고 쓸 수 있어야 하며,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기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는데요. 200여개 국가에서 약 35,000명이 응시했고, 최종적으로 당시 34세였던 영국인 Ben Southall이 채용되었습니다. 그는 마케팅과 상관없는 경력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지원자였습니다.
아침에는 섬을 돌아다니고, 낮에는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 내셔널 지오그래픽 6부작 시리즈 촬영 등 관광청이 요구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덕분에 유명세를 탔죠. 저녁 식사 후 집에 돌아와서는 사진을 정리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자정이 되어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잊지 못할 행복한 나날이었지만 바쁜 일상이었다고 Ben은 과거를 회상합니다.
퀸즈랜드주 관광청의 ‘섬 관리인’ 채용 마케팅은 2억 달러의 효과를 낸 것으로 추산되며 가장 성공적인 관광 마케팅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섬 관리인으로 6개월의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그는 관광청의 요청으로 퀸즈랜드의 홍보대사로 계속 일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19개의 마라톤에 참가했고, Great Barrier Reef에서 1,600km를 노를 저으며 영국의 항해가 제임스 쿡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보고, 뉴질랜드의 그레이트 워크(Graat Walks)를 횡단하고,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에서 3개월동안 살면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가 하면, 싱가포르에서 런던까지 1년 동안 33개국을 거쳐 55,000km의 육로여행을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그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2018년 어드벤처 여행자를 위한 Best Life Adventures를 공동 설립해 개인과 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모험 투어를 기획 및 가이드하며 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휴업 중이지만요.
작년에는 또 다른 섬 관리인 채용이 주목 받았습니다. 유럽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섬 그레이트 블라서켓 아일랜드(Great Blasket Island)에서 일할 두 명의 섬 관리인 채용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는데요. 이들의 주요 업무는 작은 카페와 숙박시설(7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 3개)을 관리하는 것인데, 전 세계에서 27,000명이 지원했습니다. Billy O’Connor는 가족 소유의 이 섬을 연인과 함께 관리 중이었지만, 두 아이의 교육 때문에 더 이상 섬에 머물 수 없게 되면서 섬 관리인을 모집하게 됐습니다.
작은 산과 모래 해변이 있고 물개와 돌고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섬입니다. 냉장고나 가스레인지가 없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는 건 휴가와 같은 일자리를 꿈꾸기 때문이겠죠.
해외에는 개인이 소유한 섬도 많고, 독일의 경우 성도 많아 짧게는 몇 주부터 길게는 몇 년까지 ‘섬 관리인’ 혹은 ‘성 관리인’을 뽑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무인도에서 특정 동물을 돌보며 섬 관리하기, 성에 머물며 한 달 동안 고양이 돌보기와 같은 일자리들이죠.
섬 관리인, 한국에는 없는 직업이지만 잠시나마 상상하며 힐링이 되셨나요? 울릉도 근처에 위치한 죽도(3명)와 독도(1명)에도 일반인이 살고 있습니다. 2년 전 여름 이 섬들을 다녀왔는데요. 이 섬들이 무인도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사람의 온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에서 섬 관리인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