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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May 24. 2020

정의연 사태를 대하는 세 가지 관점

1. 정의연 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나누어서 적으려다 한 번에 올립니다. 제 평소 글에 비해서도 깁니다.


정의연의 가치에 대한 평가


2. 우선 생각할 관점은 정의연은 '좋은' 운동이었는가라는 관점입니다. 이전의 정대협을 비롯 관련 운동단체를 비롯해 지금의 정의연은 성노예 혹은 위안부 할머님들의 아픔을 제대로 대변했는가. '운동'이라는 대의명분에 휩쓸려 정작 피해자의 목소리는 대변하지 못한 적은 없는가 질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억압받는 민족'이라는 시각이 너무나 강해 '억압받는 여성'이나 '억압받는 피지배계층'의 아픔은 무시하지 않았는지, 발전하는 시대를 담지 못하고 '반일'에 몰두해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부정적 개념만 심어주는지도 물을 수 있습니다.


3. 어떤 사회운동이든지 이런 평가는 필요합니다. 운동은 적절한 피드백이 없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관점에서 제기되는 의문과 비판은 귀 기울여 듣고 답할 의무가 정의연에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정의연을 평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만큼 잘 알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 활동에 서운함을 드러냈고, 예전에도 여러 할머니들이 공개적으로 정대협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적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비판받고 개선해야 할 점이 충분히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편 이전 단체들로 이어지는 정의연의 30년간의 노력과 이에 헌신한 윤미향 대표를 칭찬하는 목소리들도 여럿 있기에 수고하고 노력했지만 개선할 점도 있는 그런 운동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4. 지금의 관점으로 위안부 관련 운동을 보며 민족문제에 경도된 반일 장사라 보는 시각은 단편적입니다. 반일의 목소리가 크기에 여성문제나 계급 문제가 소홀히 여겨진 부족함은 있지만, 한편 이는 식민지배가 가장 큰 문제였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반일만 말하지 말고 여성 문제도 봐야 한다는 문제제기는 '그리고'로 접근해야지, 억압받는 여성을 보지 못했기에 정의연 운동이 나쁜 운동이라는 시각은 너무 나갔습니다. 박유하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저는 의도했다고 봅니다만) 제국의 위안부를 인용하며 이런 인식을 심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여성문제를 보지 못했기에 지금까지의 위안부 운동은 잘못되었다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운동이 부족했다면 이를 넘어서 소홀했던 모순도 끌어안아야지 운동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5. 피해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함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 사항을 그렇게 나이브하게 접근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광주 민주화 운동의 피해자는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에 관한 운동은 어느 피해자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정의연 건도 그렇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으니 정의연이 무조건 틀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용수 할머니의 의견이 모든 할머니들의 의견인지 묻지 않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또 과거와 현재 의견의 달라짐은 없었을까요? 몇십 년 동안 같이 운동을 하고 방향성을 잡으려 노력한 사람들의 의견은 아무 가치가 없나요? 예를 들어 성노예 관련 억압받는 여성의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할머니 중 한 분이 여성으로서의 피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이런 해석을 불편해한다면 이런 관점의 접근은 접어야 할까요? 이용수 할머니의 의견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당사자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당사자의 의견이 절대적이라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정의연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아울러 피해자가 말하니 정의연이 무조건 틀렸어라고 말하기에는 고려할 요소가 많습니다.


6. 어쨌든 이런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운동에 대한 평가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겁니다. 정의연 내에서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이 운동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함께 해결하고 발전해나갈 수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 정의연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은 아무리 봐도 정의연과 윤미향을 무너뜨리려는 공격입니다. 운동의 발전을 바라는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위안부 관련 운동을 모두 평가절하하려는 공격으로 보입니다.


정의연은 돈벌이를 해왔는가


7.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의혹은 전방위적이지만 핵심은 돈 문제입니다. 프레임은 선명합니다. 정의연은 할머니들을 내세워 사실은 돈벌이를 해왔고 윤미향 대표는 그 돈의 일부를 사적으로 유용 혹은 횡령했다는 의심을 계속 던지고 있습니다. 윤미향의 주택구입, 자녀 유학 등 자극적인 이슈들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지요. 아마 지금도 윤미향과 정의연 주위를 구석구석 파고 있을 겁니다.


8. 재정 문제에 정의연이나 윤미향이 아무 문제가 없을까에 대한 확신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기된 많은 의혹들이 단순한 누락이었거나 잘못 이해된 부분을 과장하고 왜곡해서 만들어낸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3300만 원 술값'처럼요. 솔직히 이런 프레임을 들고 나오는 언론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지 강한 의문이 듭니다만, 모든 기사를 다 거짓말로 여겨서는 안 되겠죠. 정당한 의혹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열 가지 스무 가지 던져내는 의혹 중에 정말 문제가 될만한 사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9. 하지만 근본적으로 정의연이 돈벌이를 해왔고 윤미향이 횡령을 했을까라는 의혹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우선 윤미향 개인이 돈을 유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보죠. 정의연은 한두 명이 이끌어가는 단체가 아닙니다. 회계 담당도 있고, 정기적으로 감사도 받아왔습니다. 이 단체에 속한 여러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횡령이 벌어졌다면 혼자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최소한 핵심 인원 몇 명의 암묵적 동의 혹은 적극적 협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정기적 감사에서 이 문제가 드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처럼 담임목사가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짐작컨데 대의를 두고 모인 단체에서 이런 식의 부정이 덮혀질 수 있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랬다면 벌써 안에서 터졌겠죠.


10. 무엇보다 돈을 목적으로 했다면 30년 동안 그 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생기고 특히 자녀가 생기면 달라질 수 있죠. 지금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껏 사익을 추구했다고 비판받는 것이 아버지를 컨테이너 집에 살면서 백만 원도 안 되는 사례를 주며 쉼터를 돌보게 한 정도라면 과연 언론에서 그려내는 돈벌이에 혈안이 된 부정투성이의 인간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이해관계의 충돌이란 면에서 하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 정도였다면 그렇게 욕먹을 일이었을까요.


11. 이렇게 판단이 어려운 사항에 대해서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평생 같이 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이 윤미향을 지지하는가 아닌가. 최소한 변호사로 같이 활동했거나 위안부문제연구소를 맡은 사람들은 윤미향에 대한 이런 의혹에 동의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또한 정의연에 같이 근무했던 사람 중 재정 의혹에 그렇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집단 이익을 위한 침묵일까요? 팔이 안으로 굽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최소한 보수언론이 내던지는 의혹들이 얼마나 사실에 뒷받침되었나 의심하게 만들기는 합니다.


12. 재밌는 건 탈세를 감시하는 국세청이 문제없다는 사안(예를 들어 누락)을 부정이라 확신하는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회계가 투명해야 하고 실수가 없어야겠지만, 이는 부정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작은 문제를 침소봉대해 나쁜 집단으로 낙인찍는 과정의 반복이지요. 과연 이렇게 집단적으로 벌어지는 악은 그냥 놔둬도 되는 걸까요?


13. 결국 조사하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나오겠지요. 하지만 확신합니다. 조사 결과 아무런 부정이 없거나 사소한 문제만 나오더라도 이미 정의연을 나쁜 집단으로 낙인찍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변화가 없을 겁니다. 그들은 어떻게든 미워할 이유를 찾을 테니까요.

그들의 수고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가


14. 이번 일을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아무도 정의연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그 운동에서 윤미향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이 캔 스피크>나 <귀향> 같은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았던 사람도 그들을 위한 운동에 힘써왔던 단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낮은 목소리>를 만들었던 감독은 정의연을 옹호하는 글을 썼다고 욕을 먹고 있더군요. 앞 뒤 문맥 없이 공격하기 좋은 부분만 뽑아서요.


15. 1992년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수요집회와 소녀상 건립을 비롯해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를 의제화시켜온 그들의 노력은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권에 따라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었겠지요. 그 모든 노력이 윤미향 개인의 것은 아니지만, 한신대 졸업 후 30년 동안 변함없이 이 운동에 함께 한 윤미향의 수고가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처럼 내던져지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미향이 집을 두 채 가지고 있었던 기간을 두고 사람들은 의심부터 합니다. 이런 운동을 하면서 어떻게 돈을 모을 수 있었느냐는 거지요. 가난이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런데 고생하는 것이 당연한 그 현장에 보낸 30년의 시간에는 아무런 가치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정의연의 사례가 다른 운동단체에 비해 약간 높지만 일반 회사에 비하면 아주 낮은데도 말입니다.


16. 모든 문제는 독립적으로 봐야 하고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도 잘못이 있으면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철저한 '중립'이 저는 불편합니다. 모든 사람은 공/과가 있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지요. 공이 과를 덮을 수는 없지만, 공을 보면 사람을 어느 정도 믿을 수는 있습니다. 최소한 위안부 운동에 헌신한 그 오랜 시간만큼은 정의연과 윤미향에게 기울어지고 싶습니다. 특히 이들을 향한 공격에 과장과 왜곡이 포함되어 있고,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위안부 운동 자체를 깔아뭉개려는 의도가 보이는 상황에서 비록 정의연 쪽에 작은 과가 있더라도 그들의 공을 생각해 정의연 편에 서고 싶습니다. 그리고 경험상 착한 일에 오래 헌신한 사람에게는 작은 과는 있을지언정 큰 과는 없더군요.


17. 이런 이유들로 지금 정의연과 윤미향에게 향한 공격들이 못내 불편합니다. 이런 시각이 '진영논리'라 평가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제가 틀릴 수도 있지요. 정말 그들이 큰 부정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지요. 어떻게 알겠어요. 그럼에도 지금 제 마음은 정의연과 윤미향을 응원합니다. 또한 이용수 할머니의 관계도 잘 풀리기를 바라고, 무엇보다 이때다 하며 나서는 보수언론과 친일 성향 세력의 개 짓거리는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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