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지, 며칠이 지났다. 인숙은 아직 중환자실에 있다. 원래 중환자실은 일정 시간만 면회가 허용이 되는데, 인숙은 병원의 배려로 중환자실 입구 부근으로 옮겨졌다. 커튼으로 가려지는 부분에 두 명의 환자만 있어서 특별히 보호자가 옆에 있는 것이 허용되었다. 옆 침대에 어린 남자아이와 그 엄마가 있었고, 인숙 옆에는 재호가 있었다.
장기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기에 회사에 보고할 것도 많지만, 회사의 배려로 재호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24일이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이지만, 그래도 인숙과 같이 보낼 수 있음에 행복했다. 하루 종일 재호는 인숙이와 이야기도 나누고, 음악도 들려주고, 간식도 먹여줬다. 미국에 있을 때 돌려 듣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그 상황에 딱 맞는 음악이었다.
지쳐 잠들어 있는 인숙의 얼굴을 창문에서 들어온 햇살이 비추는 모습을 보며 재호는 새삼 인숙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감사했다. 인숙과 뱃속의 아이까지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놀라웠다. 상황은 참 위험했다. 인숙이 실려왔을 때 병원에선 산모와 7 개월 된 아이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상황이 급격히 좋아져서 결국 둘 다 살릴 수 있었다.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 있을 때 벌어진 일이라 재호는 몰랐지만 만약 직접 그 이야기를 들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지금 상황이 너무나 고마왔다.
병원 밖에서는 모든 사람이 분주하게 즐기고 있는 크리스마스이브 하루를, 재호는 응급실에서 보냈다. 가끔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문병인의 움직임만 있을 뿐 그날 응급실은 유난히 고요하게 느껴졌다. 온전히 그 시간을 인숙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그 크리스마스이브는 어느 해보다도 따듯했다.
************
며칠을 더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인숙은 일반 병실로 갔다. 2주를 더 지내고 집에 갈 수 있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지기 전 일을 인숙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실에 들어설 때 미소로 재호를 받아주던 일. 중환자실에서 보낸 며칠 동안 같이 이야기하고, 웃고 지냈던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은 재호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때 일을 생각하면 더 애틋하고 더 사랑스럽다. 어쩌면 못 볼 수 있었던 사람. 어쩌면 오래전에 곁을 떠났을 수도 있었던 사람. 그 사람과 같이 보낸 지난 20년 세월은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