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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02. 2020

내 안엔 블랙홀이 산다.

글은 아래 오디오북으로 시청하시거나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도대체 난 어디에 서 있나. 왜 이 길을 선택했나, 지금 맞는 방향으로 향하는 중인가. 글을 쓰면서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자꾸만 과거를 곱씹는 버릇은 왜 생겼을까. 이것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곤란한 질문은 외면당하고만 싶다. 지독하게 글을 쓰면서도 왜 글을 쓰는지 여전히 답을 정의하기 어렵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글이 무엇인지 여전히 찾지 못하겠다. 그러니 배우면 배울수록 더 나는 깊은 검은 구멍 속으로 물러선다. 어둠의 노예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지고 만다.


두 시스템이 있다. 돈의 지름길로 향하는 시스템, 영혼을 눈 뜨게 만드는 시스템. 나에겐 두 가지 시스템이 섞여있다. 나는 두 영역과 매일 다툼을 벌이지만 어차피 내가 생산한 것이 아닌가. 두 시스템 모두 특정 기간 동안 유효할 거라는 사실을 알지만, 이 생산적이지 못한 두 시스템은 서로의 길을 방해한다.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시스템의 빈곤과 풍요를 바라본다. 그리고 너털웃음을 구토처럼 내뱉는다. 이제 그만 좀 하자고.


지난주에는 심각한 고민이 찾아왔다. 나는 마음과 줄다리기 협상에 나섰다. "줄여야 하지 않겠어? 넌 지금 너무 비대해"라는 말이 귓속을 후벼팠다. 그래, 난 비대하다. 어느 날부터 나도 모르게 덩치를 키우는 일에 힘썼다. 규모 싸움, 난 몸집 불리기에 급급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몰두한 끝에 살림이 필 정도로 세력 확장에 성공했나. 도대체 뭐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잖아. 모든 걸 거느릴 자신이 있어? 끌고 갈 여력이 되냐고? 냉정한 명령이 내 가슴을 관통했지만, 입은 더 굳게 잠겼다.


회사는 회사대로, 모임은 모임대로 자꾸만 내가 원하는 것과 어긋난다는 느낌. 대체 내가 원하는 그림을 제대로 그리고 있는 거야? 이런 질문이 지독하게 튀어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그림의 '그'자도 싫어하는 네가 그림을 스스로 그리다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야. 낯선 환영이 나를 붙잡아 눌렀다. 나는 활기를 잃고 잠시 제압당할 것만 같았으나 쉽게 복원됐다. 이유가 뭐야. 왜 쓸데없이 의기소침해지는데? 모닝페이지에 나는 기질적인 근거들을 늘어놓았으나 비난의 문장만 난무할 뿐이었다. 넌 과연 너를 지킬 수 있는 거야? 이대로 무너지는 건 아냐? 아냐, 그렇진 않을 거야. 여기 시시포스가 떠받치고 있잖아.


나에겐 하나의 보험이 필요했다. 어쩌면 충분히 도망칠 만한 시간과 여건을 보장해 두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안전장치, 방아쇠를 당긴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소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 '테리 카스'가 그랬던 것처럼 차라리 권총 오발사고라도 일어나길 바랐던 건 아니야? 난 이런 억측과 비난에 둘러싸여 한 주를 시작했고 마감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종말 같은 시간도 물러나고 새날이 찾아오듯 한주는 어김없이 시간을 트리거 시켰지만. 꽤 정신없는 것들이 일정에 연속적으로 추가된 덕분에, 나는 총알 같은 시간 마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 아닌가.


벌써 지친 거야? 날선 질문은 여전히 유효했다. 지친 건 아니야,라고 진술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자꾸만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감기고 얽히고설켜버렸다. 안쪽에서 블랙홀이 생긴 것 같았다. 빙글빙글, 팽이처럼 블랙홀은 에너지도 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다시 생겼다. 나는 이성을 잃지 않으려, 그럴 때마다 생각을 구원했다. 생각, 굴러가는 첫 번째 생각, 파도치는 두 번째 생각, 노을 너머로 몰락하는 세 번째 생각 따위를. 나는 그런 블랙홀에도 내성이 생긴 것이다.


나는 길을 걷다 멈췄다. 그리고 내 뒷모습을 보려고 노력했다.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감정들이 아득하게 멀리서 아우성을 쳤다. 감옥 속에서, 조르바의 것도 아닌 내 것도 아닌 억압 속에서 내 분신들은 저마다의 목소리로 울어댔다. 장난이다. 영혼의 비아냥이다. 망상이 빚어낸 허울뿐인 세상의 흔적들이다.


아직 정신을 덜 차린 모양이다. 쓴맛을 봐야 단맛을 이해하겠지만, 아직 때가 충만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진부하다고, 단맛을 이해할 자격을 덜 갖췄다고 미래의 나에게 판단을 유보하라고 지시한다. 오늘도 나는 거침없이 어떤 문장들을 가슴속에서 토해내지만, 이 문장들이 나의 대표성을 갖춘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내 영혼은 그만큼 타락했고 계속 낡은 상태로 전락 중이니까. 아, 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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