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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29. 2020

나의 글을 어떤 말로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나도 모르게 쓰는 고유의 말이 있다고 믿는다. 그 말을 잘 발달시키면 글자라는 제2의 물성을 가지게 된다고 믿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니 글을 잘 쓰려면 평상시 내가 사용하는 말들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현재 고민하는 문제,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상투적인 말들, 문장력의 고갈, 생각의 빈곤과 같은 문제가 감춰져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 진부한 것들에서 멀어질 방법은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딱히 지금 생각나는 게, 역시 ‘쓰고 또 쓰는’ 것 하나뿐이기는 사실이 나를 다시 빈곤의 우물통에 빠뜨리고 말지만.


잘 쓰고 싶지만, 잘 쓴다는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누군가를 닮아가는 게 차선책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루키의 문장을 접할 때마다, ’바로 이거야’라고 큰 만족에 도달한 것처럼 나는 야릇한 포만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와! 공심님 문장을 보면 김영하의 트렌디한 감성이 느껴져요’라는 말을 듣고서는, ‘아 며칠 전에 김영하의 에세이를 읽은 게 티가 났으려나’와 같은 작은 탄성을 한 번 내뱉곤 또다시 원인 불명의 만족감에 가슴이 부풀어지고 마는 것이다.


누군가를 닮았다는 말, 그 말은 나보다 타인이 월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니까, 나는 더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담은 그 짧은 문장에 나는 감격스러움에 젖기도 한다. 그런 내가 가진 어떤 부족함, 모호한 정체성의 한계를 여실히 깨달으면서도 나는 또 내 색깔은 도대체 무엇인지, 내가 하루키인지, 김영하인지, 아니면 이병률이 되어 가는 건지 대체 분간할 수 없는, 국적 없는 내 글의 문체를 두고 작가를 향한 이 변덕스러운 짝사랑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내가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딱딱한 것들, 완충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나의 예민함이 어쩌면 누군가를 꾸준하게 모사하려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르니. 이렇게 생각하면 꽤나 긍정적인 사람으로 돌변한다. 물론 이러한 모방쟁이의 습성은 안전함을 택하려는, 그러니까 부인하지 못하는 나의 오래된 스테레오 타입을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콘텐츠, 아직 개발되지 못한 나의 불충분을 때우는 것이야말로 모방이 가장 안전하고 빠를 길이 될 테니까.


나는 그런 면에서 혼자 배우고 익히는 데 특화된 사람이다. 며칠 전에는 유튜브에서 성우의 영상을 수차례 듣고 낭독을 업그레이드했고, - 아 물론 이 만족감은 전적으로 나에게만 해당될지도 모르겠지만 - 캘리그래피나 그림 역시 그렇게 반복했다. 글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완벽하게 독학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그렇게 완성해가고 믿고 있으니, 굳이 과정의 의미를 따져가는 게 불필요하겠다. 나는 그저 독학을 좋아했고, 독학으로 배운 것이 많았고 독학으로 안 될 게 없다고 믿는 사람이므로.



그러니까 내가 김영하든, 하루키든, 이병률이든 기분이 들뜬 날은 카잔차키스까지 따라 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것이든, 그 무엇이 대수랴. 내가 즐겁고, 배우는 것 같고, 성장해 나간다고 감정에 충실하면 그만인걸.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내가 아닌 그 누구든, 자신만의 색채를 분명하게 지닌 작가들의 문체를 따르고 배우리라. 그렇게 하다 보면, 나는 각양각색의 색채들, 몇 천만 가지의 색상들이 조합되고 뒤섞이고 배합되어, 기존의 특질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으로 나타나는, 그러니까 문체의 사생아 정도는 결국 생산해낼 수 있지 않을까. 닮는다는 건, 그 이상을 해내지 못한다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그 누구도 될 수가 없다. 내가 인식하는 나는 분명히 '나'일 테니. 그러니까 나란 인간은 그 어떠한 작가를 따라 한다 해도 그들과는 격리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잘 알기에, 그들의 삶과 나는 실체적으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을 하게 되면 내 삶에 겹겹이 쌓인 모든 표층을 해부할 수 있다. 하층부엔 화석들이, 상층부엔 스펀지처럼 푹신한 것들이 조금 있다. 과거는 화석과 같다. 화석은 돌보지 않아도 된다. 섬유화 되지 않은 것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오로지 그러한 작업만이 나의 미래에 유효할 뿐이니.


과거의 나는 내가 원하지 않은 이름으로 불렸겠지만, 미래의 나에겐 어떤 이름이 새롭게 각인될까. 그 이름엔 완결된 세계관을 내포하는, 굉장히 간단한 말로 정의할 수 있는 ‘내가 나타날 거야’라고 팔짱을 끼곤 시크하게 문장을 하나를 툭 던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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