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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24. 2021

무엇이라도 써서 보내드립니다.

일간 공심 2021 2월호

'일간 공심' 2021년 2호 구독자를 모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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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 동안 에세이 / 시 / 짧은 단상을 담은 글을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일간 공심 2021년 1호 중에서 에세이 한 편과 시 한 편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또 나타났다. 꿈에서 아버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멀쩡하게 살아서 생각과 말을 건넸고 움직였고 심지어는 가끔 누워서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나는 과거의 명확한 사실, 아버지가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단지 아버지가 꿈에 나타났으므로 그 사실은 허구가 아닌 분명한 실제인 것이었다.


아버진 젊은 시절 출판사를 운영했다. 너무나 어린 나는 당시 출판사의 규모를 알지 못했지만 꿈에서나마 아버지가 벌인 사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 그 순간을 통해 나는 어떤 지점을 유추해냈다. 어쩌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 실제로 들은 기억에서 그러니까 축소된 기억에서 환원된 것일지도.


"빚이 2천에서 4천만 원까지 늘어났어……"


아버지는 자신의 빚에 대하여 감당할 수 없는 곤란함과 답답함을 가족에게 털어놨다. 가족이래 봤자 단칸방에 평행하고 반듯하게 누운 4 식구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숨쉬기도 곤란하며, 귀를 막아도 들을 수밖에 없는, 빛조차 은폐될 수 없는 환경에서 아버지는 검사에게 진술하듯, 자신의 늘어난 적자와 감당해야 할 빚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 빚이라는 것은 그 꿈속에서, 그러니까 9살에 불과한 내가 이해하는 것도, 감당하기도 곤란한 커다란 암덩어리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출판의 사업구조는 이러한 것이었다. 책을 판매하기 전,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업은, 아마도 작은 출판사보다 훨씬 규모가 큰, 어떤 출판사로부터 책을 먼저 사입 받아 판매하는 구조였는데, 그 책이란 것이 단행본이 아닌 전집이었으며 책의 부피보다 책에 담긴 내용이 워낙 방대한 탓에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80년대 초반, 전집을 당시 금액으로 몇 십만 원의(지금으로 환산하면 전집당 수백, 수천만 원?) 빚을 지고 떠안아야 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출판사보다 더 큰, 말하자면 갑 출판사는 크게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을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갔기 때문에…… 아버지가 제대로 판매를 하지 못한 탓에 실적이 좋지 않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집안의 빚이 될 테니, 어차피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리대금업자처럼 돈을 수금해 갔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사업 수완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말발이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 책은 비교적 잘 팔려나갔으므로 우리 가정이 추락하는 불상사는 드물게 일어나는 편이었다.


하지만 결국 언제나 추락은 찾아오게 마련, 사업이란 것도 운이 맞아야 잘 굴러가지 않겠나. 모든 사업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그 출판 사업이라는 것도 결국 몰락의 길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가 바로 내가 꿈에서 목격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의 핵심이었다. 물론 그 대화는 너무나 생생했고, 살아생전에 늘 죄책감에 휩싸여 살았던, 아버지의 자책과 왜소함을 내 환한 두 눈으로 아니 꿈이었으니 눈을 감은 채로 목격했지만, 어쨌든 나는 지난 아버지의 잊고 싶은 기억 하나를 억지로 되살린 것이리라. 어떤 왜소한 기억, 감추고 싶은 치부 같은 것들과 함께.


'일간 공심' 프로젝트, 하루에 글 한 편을 구독자에게 보내는 시스템을 한 달 전부터 다시 실천 중이다. 과거에 나는 이 프로젝트를 구독자에게 선금을 지급받고 운영한 적이 있다. 마치 갑이라도 된 것처럼, 아버지 꿈에 나타난 갑 출판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시작한 '일간 공심'이라는 유료 글 발행 프로젝트는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나는 독자에게 빚을 진 탓에, 점점 더 왜소해졌고 작아지다 못해 공중에 떠다니는 티끌처럼 마냥 부유하다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세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좋아해 줄 사람이 있다면 일어나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그 이유 때문에 다시 글을 쓰게 됐다.


나는 왜 사적으로 구독자를 모아, 그러니까 이미 브런치에 구독자를 9천 명이나 가진 사람이 왜, 이메일 주소를 수집해서 구독자에게 글을 애써 발행하려고 애쓰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스스로 진단해본다면 결국 내가 쓰고 싶은 글, 그러니까 사회나 규정화된 시스템이 원하는 글이 아닌, 진정 나라는 인간만이 고유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오직 단 하나만 세상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생각과 사유가 담긴 글을 통해,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이유였으리라. 브런치가 아닌, 말하자면 타인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아닌, 내가 직접 만든 틀 안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꿈속의 아버지처럼 가끔 왜소해진다.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할, 세상의 귀가 점점 닫히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에너지마저 왜소해지기 때문에…… 그래서 점점 사라질 듯 희미해져가는 나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애써 용기를 내고 다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지쳤고 왜소해졌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갈 때, 그리하여 도저히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나는 글로써 노래를 부르는 셈이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 Bridge Over Troubled Water의 가사처럼, 내 눈에 눈물이 고일 때, 어쩌면 당신의 눈에 고인 눈물을 기억하기 위해, 그것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줄 당신을 기다리는 것으로, 그렇게 하려면 나는 마땅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아버진 꿈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늘 왜소한 사람이었다. 왜소한 체구만큼이나 성격도 포부도 모든 면이 왜소했다. 나는 아버지가 가진 왜소함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아버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삶의 모든 방면에서 전방위적으로 발악했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그날 이후로, 나는 어쩌면 계속 성장하고 있을까? 왜소함과는 완벽하게 격리되었을까? 아직까지 난 왜소하기 때문에, 더 성장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을까? 그래서 글을 쓰는 걸까?


가사대로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다면, 나는 굳이 이렇게 글을 쓸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므로 세상 어디에도 손을 닿을 수 있거나 그렇지 않은 거리에서도 내 친구들은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므로, 나는 또다시 희망을 안고 오늘처럼 글을 쓰고 새로운 구독자를 모집한다. 왜소함을 면하기 위해.


이 세상은 험난하다. 성나고 험악하며 폭군처럼 우리를 구석으로 파도 밑으로 거세게 몰아붙인다. 그 무서운 파도의 더미 속에서도 삶을 버텨내기 위해서라면 우리에겐 그 험한 세상을 버티게 해 줄, 단단한 다리 같은 구원의 수단이 필요할 것이다. 내 글이 든든한 다리처럼 누군가를 지탱해 줄 수 있다면, 이 글을 읽어줄 당신이 나의 잠재적인 구독자가 되어준다면 우린 서로에게 지친 삶을 위로하거나 감당하는, 말하자면 든든한 그 무엇이 서로에게 되어줄 수 있으리라. 그것이 내가 기대하는 글, 왜소해진 내가 원하는 글쓰기가 지향해야 할 가치일 것이다.




무엇이라도 써서 보내드리겠습니다.(하다못해 일기라도)

단 100자가 될지 5,000자가 될지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글은 평일에만 씁니다. (공휴일엔 쉽니다만 기분이 좋으면 보내드릴 수도 있습니다.)

글은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하단에는 글이 담긴 설문지 링크도 같이 보내드립니다.

피드백을 주시고 싶은 분들은 설문지의 댓글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글은 월요일부터 시작됩니다. (3/1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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