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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02. 2021

새벽과 내가 관계를 맺는 방법

새벽은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굳게 걸어 잠근 너머의 세상에서 그것은 마치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모습처럼 어색하지만 무거운 모양으로 빛을 배달해왔다. 


빗방울이 콘크리트 바닥과 부딪혀 번쩍하며 반갑지 않은 소리를 낼 때마다, 새벽은 축축한 아침의 형상으로 변신해갔지만, 나는 모두와 어울리지 않는 새벽에 맞선 낯선 손님일 뿐이었다.


나는 잠과 소통을 마친 직후였다. 영혼이 맑지 않은 상태에서 소리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그 소리는 내 일상의 둘레를 침범하는 형상, 모든 이데아를 초월한 지극히 일상적이며 평범할 뿐, 내 풍경을 기계적인 것으로 조작하려는, 그러니까 침묵이 스스로 자신을 포기해버린 일종의 이상한 계약관계였다.


나는 눈을 반쯤 뜨곤 창문을 슬쩍 열어봤다. 바깥쪽에서 기묘하고도 낮은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안쪽으로 스며들었으며 내가 아닌 모든 존재들과 내통하기 시작했다. 찬연한 광택지 위를 부드럽게 쓸어내 듯 내 영혼은 어둠 속으로 포복하듯 진입했지만, 나는 그 어떠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그저 새벽의 침묵, 짧은 의식에 집중해야만 했다.


한바탕, 대지를 널따란 회오리 모양으로 쓸어버리는 소리가 또다시 도착했다. 맹렬하며 거대하며 육중한 외침, 매섭고 매정하며 가혹한 심판이 시작된 것처럼 신은 굵은 빗방울로 불안을 선동했다. 나는 그 순간 이해할 수 없지만 한때 내 것이었거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열렬한 사랑을 잠시 떠올렸다. 


내가 상상하던 모든 결정적인 순간, 그 약속과 화합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나는 이 새벽에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고요해야 마땅한 이 새벽에서 어디로 포섭되어버린 걸까. 냉정하게 세상을 짓눌러버리는 비의 복수 앞에서, 나는 잿빛의 구름이 하늘을 잠식해버리는 사태 앞에서 밤이 전하는 평화로운 시선을 생각했다.


밤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고요한 그 시작으로 귀의할 수 있다면, 나는 불가능하리라 여겨진 계획들을 의도대로 구원해낼 수 있을까. 어젯밤, 몇 시간 간격으로 눈을 뜰 때 다가온 그 어색한 서성거림과, 아이디어의 모습으로 포장된  생각들은 새벽과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왜 나는 그런 성기고 얽혀 버린 표층의 의식들에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며 결론을 낼 수 없는 것들에게 결론의 위장막을 씌우려 하는 걸까. 어차피 세상도 나도 이해되지 못할 테니, 세상은 소리로 나는 글로 대화를 시도할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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