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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20. 2021

인생이라는 이름의 고속열차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고

나는 현재 고속열차에서 달리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내가 달리는 것의 주체는 아니다. 내가 올라탄 고속열차가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관점으로 본다면 고속열차 역시 달리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 달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것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서 달라지는.


고속열차 안에 있는 나는 내가 달리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다만 그러할 뿐이라는 걸 인식할 뿐이다. 바깥에서 고속열차를 바라볼 때는 다르다. 나는 분명히 달리고 있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만다. 그래, 내 시선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타인의 시선에서는 나는 달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증명할 수 있다.


인생도 그러하다. 나는 인생이라는 고속열차에 탑승 중이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앞으로만 내 달리고 있다. 어쩌면 광속 이상의 스피드를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아니, 인지하려고 애쓰지도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걸 인지하는 순간, 나는 곧 종착역에 도착하고 말 테니까.


종착역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다. 죽음은 종착역으로서 기능한다. 거부해도 언젠가 닥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현실은 지금의 현실이 아니다. 먼 훗날의 내가 겪게 될 가상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나는 성찰한다. 성장한다고 믿는다. 한 뼘 조금 더 자라남으로써 나는 죽음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겠지만, 그 모든 불운한 미래의 암시에도 나는 그 이론에 순응한다.


받아들이는 것은 체념하는 게 아니다. 수용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저자, 에릭 와이너에 따르면, 또한 보부아르에 따르면 나는 절대 체념하지 않을 생각이다. 죽음에 굴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녀석을 동반자쯤으로 여겨두는 것이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만나게 될 30년 후? 혹은 50년 후쯤의 치명적인 또한 운명적인 관계쯤으로 설정해두련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유쾌하다. 하지만 마지막 장에서 죽음을 다루며 인생의 마지막에서 우리 모두가 죽음을 맛보게  것이라고 지나치게 상기시킨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불쾌해진다. 후두부를 강력하게 강타한다. 나는 잠시 꿈에 젖어있다, 아니 인생의 어떤 희망적인 몽상에 잠겨있다, 꿈에서 번쩍 깨어난다. 현실로 돌아온다. 철학이란 죽음을 받아들이는 학문이라는 , 그리하여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의 인간으로 살아가라는 형식의 학문인지 이해하며 그의 주문을 받아들인다.


굉장히 유쾌한 책이며 가볍게 읽히는 책이다. 하지만 모든 철학책이 그러하듯 이 책을 덮고 나서 나는 굉장히 무거운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무거운 사람은 엉덩이 부피가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신빙성 있는 사실로 인정하며 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후기를 가장한 이 글은 책을 읽고 단 10분 만에 작성했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한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글이라 정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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