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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Sep 16. 2021

완벽한 문장과 완벽한 절망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읽고

작가는 텅 빈 공간 자체다. 그 공간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그 백지상태에서는 시간만 무심하게 흐를 뿐이다. 그 공간을 인지하는 것은 물론 작가 자신이다. 작가라는 존재만이 그 앞에서 멍하니 한 곳을 관망할 수 있다. 텅 비어 있다는 것은 적어도 가능성 한 가지를 내포할 테지만, 작가에게 그런 희망 따위는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


텅 빈 공간을 인식하는 순간 허무가 찾아온다. 아무리 발악을 하며 애를 써봤자,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그것은 가설이 아니다. 나는 그저 어느 곳이든 기웃거리는 존재에 불과하다. 하루키는 그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첫 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이라고. 이 문장 역시 나에겐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텅 비어 있고 그곳엔 무엇을 채워야 할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그래, 이 문장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완벽하게.


그런 무지, 한계 따위를 인식했으니까 ‘어쩌면 미래는 조금 나아질 거야’,라고 말한다면 그런 근거 없는 의미에 들뜨는 시기는 이미 훌쩍 지나가버렸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훌쩍 커버렸다. 나의 모자란 지각은 여전히 텅 빈 세계만을 감각할 뿐이니까. 물론 텅 빈 공간이라는 명제가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가능성은 가능성 자체로서 놓아두는 편이 역시 이롭겠지만…


텅 빈 공간은 채워진다. 무엇으로 채워질까. 주로 원석들이다.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결정체로서의 물질들이다. 그것들은 공간을 채우는 것으로 역할을 다하고 소멸한다. 삶은 그런 것들을 지금까지 계속 채워왔다. 텅 비어 있다고 믿은 것은 순수한 착각에 불과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적잖이 소비됐다.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은 무수하게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희생된 원석들, 가공되지 못한 물질들이 꽉 찬 공간, 나는 그 공간의 일부이자 다수다. 나는 어떤 필요성을 절감한다. 유아기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완벽한 원석의 상태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생각, 아주 기초적인 상태로 복귀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득 찬다. 그리하여 텅 빈 공간엔 제법 많은 것들이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곤 나는 어떤 상태로 변화된다. 이제 그것들, 불순물이 가득 찬 그것들, 거칠고 더러운 표면을 매끄러운 것으로 가공해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텅 빈 공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 활동은 물론 내가 주도해야 한다. 나는 참여자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한다. 불순물 덩어리를 손에 든다. 그리고 그것을 깎는다. 어떤 미래를 그리며 완벽한 모습을 상상하며 깎고 다듬는 작업에 몰두한다. 그 과정이 글쓰기라고 강조하는 유치한 짓거리는 굳이 강조하고 싶지 않다. 말하지 않아도 은유적으로 표현해도 나는 그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나는 덜 완벽한 형태, 아니 아예 모양이 갖춰있지 않은 상태에서 완벽한 형태로 변모해간다는 사실을 더러 인식 중이니까.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그래서 완벽한 곳으로 갈 자격을 갖춰나갈 수 있다. 오늘도 그 낙관 하나에 기대어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 값어치가 없는 문장, 완벽과는 거리가 먼 문장을 양산한다. 그것들은 불충분하다. 체계도 없다. 오직 모순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는 오른쪽으로 아래로 달려 나간다. 어떤 대단한 예술 작품 같은 것으로 내 활동을 승화시키겠다는 희망 따위는 없다. 오직 쓴다. 근거 없는 믿음 따위에 기대지도 않고, 쓰지 않아도 도달할 수 있는 세계 따위를 공상하지도 않고 망상 따위는 꿈꾸지도 않는다.


다만, 텅 빈 공간은 이제 바꿔나간다. 그럴만한 확률이 조금 높아진 것일 뿐이긴 하지만 나는 그 미미한 확률에 기대고 싶다. 얼마나 많은 고통과 노력이 배합된 시간이 투여될지 나는 모른다. 어쩌면 몰라서 쓸지도 모르겠다. 하루키의 말처럼 나는 배울 자세를 유지하고 싶다.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 사실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런 일은 쓰지 않기 때문에 이론이 아닌 현실이 된다. 나는 이 즐거운 작업을, 다소 힘든 이 작업을 계속하련다. 의미 따위는 쓰면 어떻게든 만들어질 테니까. 텅 빈 공간이 우물이 될지, 옥탑방이 될지, 망망대해가 될지, 내 작은방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는 기묘한 세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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