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Sep 01. 2021

멜로디처럼 맑게 흐르는 글이란

일상 에세이


거기


너는 거기서 기다린다

무엇을

어떤 순간에게, 너는

친절한 어깨에 기대어

하늘의 너머를 그려 본다


파랗게 빛나던 젊은 날의 눈부신 무지개들

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저마다의 검붉은 소용돌이

저마다의 잿빛 메아리

모두가 거기서 잠자코 기다린다


질문지에 까만 어둠을 담아

새벽 창가에 늘어놓는다

하얀 대답이 시름의 메아리를

혹은 트럼펫을 맑게 들려주려나


달빛 아래 놓인

어제의 긴긴밤처럼 젊은 새벽이

다가와 슬그머니 속삭일 때 너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떠다닌다고

말들이 바람처럼 너울거린다고

항해를 막 시작한 남자의 들뜬 목소리로 말하겠지


그런 모든 순간에도

비는 뿌려질 테고 너는

피아노 건반을 서서히 두드릴 테고

하루는 여전히 무거울 테다



코로나 소동


사무실 내, 코로나 밀접 접촉자는 음성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어젯밤의 작은 소동은 마무리되었다. 고통스러운 검사를 받을 필요도 작은 집에 틀어박혀 자가 격리할 이유도 사라졌다. 삶은 어느새 안정을 되찾았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여전히 버스와 지하철 사이의 크고 작은 거리, 공간들을 오고 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비는 서글프게 뿌려졌고 나는 어디에도 존재해야 했다. 모든 곳에 존재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내 능력 바깥에 서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한숨을 길게 쉬고 다시 방향을 찾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했다.


길은 기다랗고 사람들의 표정은 일순간 모두 똑같아졌고 그들의 손짓은 지극히 평행하게 획일적이다. 모두가 한 장면을 - 오직, 스마트폰 - 일관성 있게 바라보지만 그들과 나의 다른 면을 구분할 수 있는 어떤 특징적인 면들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서로 한배를 탄 셈이나 서로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피아식별을 하지 못한다. 그냥 같이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무덤덤하게 시작하고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마무리하는 것이다. 모두가 균일하게.


나는 그 사이를 구분 짓는 능력, 즉 분별력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이 보통 헛된 것으로 종결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에는 노고와 무엇보다 고귀한 시간이 투자된다. 잃으면 다시 찾을 수 없는 말하자면 시간이 더 지나면 더 분명 해지는 그 무엇을.


나는 여전히 그들과 같은 얼굴을 가졌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다. 어떤 제스처, 말투, 습관 이를테면 아침마다 카페에 들려, 1,500원짜리 혹은 4,100원짜리 커피를 왼손에 들고 익숙한 동작으로 도어를 살짝 밀어버리는 행위들. 


나 역시 반복하지만 나의 반복 속에는 다른 것들이 꿈틀거린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러니까 개인에게 고정된 패턴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보통 의식하지 않고 실행되는 편이다. 의식이 없으니 감정이 살아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나는 내 행동하는 순간과 결과를 놓고 감정의 개입 여부를 분석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복원하려고 애쓴다.


감정이란 글에서 양념의 역할을 맡지 않는다. 주재료, 그러니까 선장의 역할을 행사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 글에는 어떤 감정들이 살아 있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글까지 그래서는 곤란할 것이다. 나의 글이란 하나의 멜로디처럼 맑게 어디론가 누군가를 향해 지금도 흐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내가 가출했다 1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