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좋아요, 따봉 마니아
당신은 지금 내 글을 읽는 중이다. 다른 사실은 모두 불확실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왠지 족집게 도사가 된 기분이다. 꽤 설득력이 있지 않는가? 그렇긴 뭐가 그런가. 설득력 따위도 족집게 도사도 없으니 글이나 읽는 게 좋겠다. 자, 쓸데없는 잡담을 늘어놓았으니 바로 본론으로 달려가 보도록 할까?
당신은 이 글이 어떻게 전개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쩌다가 본문을 클릭했을 확률이 높다. 당신이 만약 내 구독자라면, 맙소사 발행하자마자 바로 달려온 셈이니, 순도 100%의 애독자일 확률이 아주 높겠지만... '사랑합니다. 구독자님~'이라고 고백해본다. 아, 닭살 돋는다. 그런데 당신은 어쩌면 꽤 까다로운 사람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근거는 없다 단지 그럴 것 같다는 기묘한 기운만 감지될 뿐이다. 그냥 그렇다고 하자. 추석도 다가왔으니. 설득력 있지 않는가?
요기까지 읽어 내려갔다면 당신은 꽤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다. 참을성도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 '라이킷'은 누를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그런 건 머리로서 하는 게 아니니까. 손가락이 하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박치기가 담당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까다로운 사람이 맞다면 '라이킷' 같은 하찮은 것은 저 밑에까지 다 읽은 후에, 커피 한 잔 마시고 공원에서 산책 한 바퀴 돌고, 서점에서 에세이 한 권을 천천히 고르고 난 뒤에 결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때까지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기분을 맛보면서 어떤 중대한 처분의 순간을 기다리겠지만… 당신에게 라이킷은 마치 김천에서만 판다는 고당도 샤인 머스켓 포도보다 더 값어치가 나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끼고 아껴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번쯤 맛보게 하려는 아주 사려 깊은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의도를 만약 조금이라도 가슴속에 숨기고 있다면, 제발 그런 마음은 이제 접어두도록 하자. 당신의 그런 아주 사소한 의도가, 또 당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또 다른 구독자들의 일련의 맞춤 행동이, 분명 사소하긴 할 테지만, 나처럼 독자의 라이킷을 먹고자라는 사람에겐 글을 써야 한다는 동기와 어떤 신성하게 써 내려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점점 물리치도록 만들 테니까. 제발 그런 생각이 있다면 그만두자.
나는 지금 이 순간, 꽤 솔직한 글을 쓰고 있다. 에세이가 솔직한 장르의 글이라지만, 솔직하게 나는 어디까지 내 정체를 까발려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솔직함에 충실하다고 믿는다. 차라리 이곳에 내 주민등록증이라도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뭐, 주민등록증 따위야 어디서든 쉽게 위조되는 세상이라지만. 나란 사람은 위조해도 거의 가치가 없는 사람이겠지만.
아무튼, 나는 오늘 '라이킷'이라는 너무가 가볍고 사소하고 도대체 이 주제가 꺼낼법한 화제가 될 것인지, 나조차도 설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러니까 음,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래, 나는 라이킷에 목마른 자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비행사가 사막에서 우물을 찾아 헤매듯이 나는 지금 라이킷을 찾아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를 누비는 중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어서 그런 거라고? X나 줘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 개의 명예를 차마 더럽히지 못하겠다. - 우물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내 손에 잡히지 않으면 그 우물은 우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거다. 우물이 존재한들 내 목 하나 축이지 못하는데 대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유튜브 영상을 볼 때마다, 그 영상의 주인공은 마지막에 늘 이렇게 강조한다.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라고. 글 쓰는 사람도 역시 똑같다. 그들과 우리는 매체의 형식만 다를 뿐, 어차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대동소이하다. 그들도 우리도 한 배를 탄 셈이다. 그러니 나도 라이킷에 목마르다. 대체 왜, 글을 읽어주고 라이킷을 유보하는 걸까? 글이 마음에 들지 않나? ‘대체 이런 글 따위는 왜 쓰는 거야?’라는 생각이라도 드나? 그렇다면 차라리 구독해지를 눌러달라(라고 쓰고 그렇게는 하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구걸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라이킷'이라는 화제를 계속 이어가련다. 글을 읽고 최소한 '이따위 글은 왜 쓰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라이킷은 눌러줬으면 좋겠다. 라이킷, 그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라이킷 하나가 작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 같나? 나는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내 직업은 코드를 다루는, 그래 개발자다. 나는 IT 개발자로 25년 가까이 복무 중이다. 복무라고 하니 마치 여전히 군대에 있는 기분이지만…
군대와 같은 직장에서 나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곳은 꽤나 안정적인 편이다. 내가 사표를 내지 않는다면 아마도 잘리지는 않을 것 같다. 왠지 그럴 것 같다. 나만의 영역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음, 나가라고 하면 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안정적인 직업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이 오백 원짜리 동전 한 개 안 들어오는 일을... 말하자면 글쓰기는 취미? 딴짓? 돈이 안 되는 부업 같은 거라고 해두자. 글쓰기는 순수한 측면으로 봤을 때, 돈이 안된다. 2차적, 3차적으로 파생되는 분야는 논외로 친다. 브런치에서든 블로그에서든 글 쓴다고 돈이 들어지는 않는다. 나는 오직 순수하게 글이 좋아서 쓰는 거다. 하지만, 그런 글쓰기에도 독자의 응원은 작가에게 어마어마한 힘이 된다. 계속적으로 쓰는 힘을 만들어준다. 돈이 안 들어와도 좋다. 콘텐츠를 만들지 않아도 좋다. 응원은 작가를 살린다. 아니, 공심을 살린다. 만약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그의 글이 단 1%라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다면, 제발 그 라이킷 누르는 일에 인색하지 말자.
위에도 언급했듯이 라이킷은 작가에게 강력한 힘이 된다. 돈을 들이지 않고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작가를 격려하는 일이요, 칭찬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요, 작가를 응원하는 구체적인 길이요, 작가가 계속적으로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일이요, 무엇보다 작가와 소통하는 단 하나의 수단이 된다. 의미 없이 쓰는 게 아닌, 즉 현타가 오지 않도록 예방하는 그런 코로나 예방주사 같은 거다.
이런 구차하게 라이킷을 바라는 글을 썼다만, 나 역시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그러니까 독자의 라이킷을 이슬처럼 먹고사는 인간이기에, 마침 추석이라는 명절을 이용해서 나약한 글을 써봤다. 지금의 시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 테니까. 이 글을 읽고서도 만약 라이킷을 누르지 않았다면 당신의 취향을 이해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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