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쓰지 않는다는 내 주장에 ‘난 지금 쓰고 있는데?’라고 따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쓰지 않는다'는 문장엔 대충 한 번 써보고 잘 써지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문장까지 의미가 확대된다.
글은 쓰기 쉽지 않다. 어쩌면 영어회화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게 글쓰기다. 게다가 한두 번 써봤자 아웃풋은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아주 지루하고 고단하고 재미없는 작업이 바로 글쓰기 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써야 잘 쓰게 될지 모른다. 그런 건 사람마다 너무나 상대적이다. 동시에 출발해도 당신은 여전히 출발선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경쟁자는 저만치 달려가는 중인데.
당신은 아마 호기심이 생겨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블로그 이웃이 쓰길래 꽤 멋있어 보여서 그냥 따라 써봤을지도 모른다.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이 열린다길래 게다가 무료라서 그냥 신청했다. 친구가 간다면 하데스 신이 관장하는 저승의 스틱스 강도 건널 태세다. 그렇게 일단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써보니 영 재미도 없고 진도도 영 나가지 않는다. 열심히 생각하는데 딱히 글감이 될만한 소재도 찾기 힘들다. 고민 고민하다 몇 가지를 겨우 떠올려봤는데, 사람들이 이 주제를 과연 공감해줄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서 때려치운다. 영 자신도 없고 계산도 서지 않는다. 안 하면 편하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아무런 결과도 없다. 지금까지 고민한 시간도, 글감을 찾아내려 애쓴 시간도, 몇 글자 써보겠다고 소비한 시간조차 모두 공중에서 분해되고 마는 것이다.
글쓰기는 물론 매력적이다. 잘 쓰면 사람이 더 빛나 보인다. 잘 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글 쓰는 사람이 매력적인 이유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의미는 글쓰기가 스스로를 가꾸게 만든다는 얘기다. 골방에 방치하던 나를 세상에 내놓게 하는 게 글쓰기이며 내가 알던 나와는 다른 면을 찾아주는 게 바로 글쓰기다. 미지의 영역, 내면에 숨겨진 성역을 건드는 게 바로 글쓰기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 사랑하는 것까지 찾게 만든다. 쓰면 그런 걸 알게 되니까.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니까 그래서 쓰는 것이다.
근데 너무 쉽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적어도 1년 이상은 꾸준하게 써야 한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이 바닥에는 기웃거리지도 않는 게 좋다. 곰처럼 100일을 견딜 자신이 없으면 아예 동굴 입구에서 발길을 돌리는 게 낫다.
뭐, 이런저런 에세이류를 뒤적거리다 보면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쓸 수 있겠는걸?’ 하고 만만하게 생각하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면 단 한 줄도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뭐 이렇게 쓰는 게 어렵단 말이야? 그냥 머릿속의 생각을 옮겨 적으면 되는 일 아니야? 간단한 일인데, 뭐가 이렇게 힘든 거야. 에라이, 때려 치자, 이건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아. 그냥 유튜브 먹방이나 보자고. 요즘 천뚱이가 잘 나간다던데 말이야. 아니야, 햄지 먹방이 최고지.’라고 나름의 위안의 말도 남길 것이다. 결국 포기한 자신을 소심하게 칭찬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글쓰기는 어렵다. 아니, 지독하게 어렵다. 하루 이틀 써 봤자, 달라지는 건 둘째치고 성장하는 것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을 써도 달라지지 않는다. 문장력이 너무나 형편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문장력이 좋아질지 발견하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좋은 글을 볼 줄 아는 눈이 없다는 데 있다. 시력이 문제가 아니다. 책을 전혀 읽지 않으니 좋은 글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맨날 블로그에 혼자서 끄적거려봤자 글은 절대 안는다. 글쓰기 책 수십 권 독파하면 무엇하나. 좋은 글이 무엇인지 구별해낼 능력조차 없는데 말이다.
무서운 것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남이 전하는 아이디어를 그대로 따라 하는 것보다, 내가 그 분야에 직접 뛰어들어 뼛속까지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수치스러운 경험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뼈를 깎는 노력 없이는 아이디어는 물론 멋진 글감도 찾아오지 않는다. 지독한 싸움이 있어야 고난 끝에 열매 하나를 겨우 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글쓰기는 종합 행위 예술이다. 무대를 나 혼자서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 아무런 보조 장치도 특수 효과 따위의 지원도 없다. 또한 응원 부대도 없다. 오직 고독하게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다. 또한 변화한 게 무엇인지 체감하기도 힘들다. 그런 일은 몇 만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는다. 미래 없이 그냥 무작정 가야 하는 게 글쓰기다.
‘이 빈곤한 문장력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라고 한탄하며 땅을 쳐봤자 글쓰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쓰는 게 좋겠지만, 여전히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쓰지 않고 있다. 그리고 잘 쓰는 사람을 질투하고 시기한다.
글쓰기는 수학 공식 외우는 것보다 어렵다. 글쓰기는 암기의 영역이 아니다. 쓰지 않은 삶이 대부분을 차지할 텐데, 솔직히 잘 써지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한두 번 썼는데, 문학적인 감수성이 짙은 문장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까? 20분 만에 몇 천자의 글자를 마구마구 생산해내는 순간은 아무나 맛볼 수 없다. 만약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면, 그건 당신도 모르던 재능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은 천 명 중의, 아니 만 명 중의 한 명쯤일까? 그런 사람은 더 열심히 쓰면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글을 잘 못 쓴다. 하지만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다. 한 글자 써보고 곧바로 때려치운다.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다. 그런 사람은 작심삼일도 견뎌내지 못한다. 작심 하루 만에 신속하게 그만둔다. 그리곤 재능이 없다고 치부해버린다. 물론 살아남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한 달은 써보자고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결심한다. 그런데 그 결심은 역시 유효기간이 딱 한 달이다. 한 달 해보고 역시 안 되네?라고 판단한다. 그런 사람은 이런 뼈 때리는 글을 보고 바로 글쓰기를 포기할 것이다.
써 보니 딱히 재미도 없는 것 같다. 뭐 잘 써져야 재미라도 느끼지,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 보니 적어도 나 보다는 잘 쓰는 것 같다. 나만 형편없다는 걸 또다시 깨닫는다. 여기서 또 반이 나가떨어진다. 한 달이 또 지났다. 고통을 견딘 사람들은 여전히 쓰고 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여전히 갈피를 못 잡았지만, 모임 운영자가 커리큘럼을 주니까 따라 하기는 한다. 몇 달이 지나고 보니 블로그 이웃도 늘어나고 글쓰기 친구도 새로 생겼다. 나름 동기부여도 생겼다. 쓰는 용기도 생겼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 두게 된 것이다. 이제야 희망이 조금 생기려나?
잘 쓰고 싶으면 일단 곰이 동굴 속에서 100일을 견딘 것처럼 100일 동안이라도 매일 써보자. 100일 견딜 자신이 없다고? 변명만 늘어놓을 것 같다고? 그럼 쓰지 마라. 위에서 말했듯이 먹방이나 보든지 새로 나왔다는 디아블로 레저렉션이나 하는 게 차라리 낫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나? 이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언제까지 써야 잘 쓰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견적 없는 글쓰기보다 세상엔 너무나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