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의 <끌림>을 읽고...
나는 어떤 것에 마음이 끌리는 사람일까? 남성적인 매력이 아닌, 내적인 아름다움만으로 누군가를 끌어당길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누군가 나에게 다정히 다가설 수 있도록 자석처럼 은근한 끌림의 매력을 가진 사람이고 싶었다. 오랫동안 나의 가슴속을 누비고 다닌 것은 따뜻한 정에 약한 모습이었다. 보이진 않아도 그림자 같은 사랑을 슬며시 내미는 수줍은 사람, 드러내지 않아도 내면의 따스한 잔향이 은은히 퍼지는 사람, 자리에 있는 것은 드러나지 않아도 없으면 아쉬운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에게 서툴렀고, 나의 존재감은 다른 사람에게 선명하지 못했다. 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것에 인색했다. 내 마음을 들킬까 봐... 감정의 주도권을 넘길까 봐... 설렘의 출사표를 던지며 다가가려 했지만, 섣부르게 다가섰다가 도리어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뒤로 살짝 물러선 채 아쉬움에 떨었던 순간이 있었다. 나의 따뜻한 내면이 나약함으로 비치는 것이 두려워, 나는 겉모습을 날카로움으로 포장했다. 사람과 함께 호흡을 나누고, 공감의 깊이를 함께 재는 것이 두려워 냉혹한 이미지를 외부로 발산하려 했다. 결국 나는 다가서기 힘든 사람이 되었고, 더욱 냉정한 이미지를 나의 고유한 특성으로 굳혀가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아내와 서점 데이트를 즐기러 나갔다. 그리고 여행 코너에 놓인 이병률의 책으로 본능적인 끌림에 화답을 해야 했다. <끌림>은 내가 접한 이병률의 두 번째 책이다. <끌림>은 시인 이병률이 세계 여행을 통하여 얻은 느낌을 산문 형태로 꾸민 것이다. 이 책이 독특한 것은 시인의 감성을 약간 긴 문장으로, 보다 세세하게 기록했다는 것이고, 짧은 시로는 만족하지 못할 나의 감성을 더 세밀하게 두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여행지에서 시인 이병률이 직접 경험한 소담소담한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가까운 정경까지 차분히 빠져들 수 있도록 오글오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병률은 시인이다. 이병률은 그의 솔직한 감정을 특유의 함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노래한다. 그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 중 가장 사람 같은 향기를 풍기는 리듬의 유희에 능한 '언어의 선율가'다. <끌림>은 산문 형식을 띄고 있지만, 시적인 분위기에 훨씬 깊게 다가섰다. 내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도록 들쭉날쭉 허락도 없이 심장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두근거리게 했고, 잔잔한 일상에 거친 파도와 같은 일렁임을 던지고 사라졌다.
사람이 취하는 것은 달달한 술에만 국한된 것일까? 나는 시인 이병률이 노래하는 음률에 취하고, 나의 곁에 오롯이 다가선 그의 따스한 감성에 녹아들었고, 그의 가슴 친절한 다가섬에 젖어들었다. 그는 여행지에서 이방인이 아니었다. 처음 방문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그는 익숙함이었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형이었고, 귀여운 동생이었으며, 오래된 연인이었다. 사람들을 좋아한 나머지 처음 보는 사람들마저 의심하지 않았고, 믿음 때문에 사기를 당할지언정 자신이 가진걸 내어주는 친절에 인색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여행을 떠나며 늘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걸어온 길이 아름다워 보일 때까지 난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정해져 있는 일정대로 시간을 주워 챙기기 바빴다. 그렇게 차곡차곡 준비한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특별할 것 같았다. 평범한 시간을 거쳐 이국에 도착한 내가 각별해 보였고, 그만큼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그저 잊히기엔 아쉬운 존재들이었으며,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밖으로 내뱉는 말들이 더 사라진 나는, 그 순간의 기억을 회복하기 위한 카메라에 깊이 매몰될 뿐이었다. 길을 걷고 있어도 길은 보이지 않고, 먼 곳에 시선을 뺏길 뿐이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라보고 이미지를 그리고, 다시 저장 하기도 전에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하기만 했다.
혼자 떠나지 못한 탓이었을까? 내가 사람을 경계하는 습관을 떠올렸다. 이병률은 출발할 때, 한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 낯선이와 만나고 대화할 때, 능숙하고 사람 사귀는 것에 재주가 있었던 그는 혼자였지만, 곧 둘이 되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있기만 해도 든든한 사람, 옆에 숨 쉬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여행은 당신의 그런 사소한 취향을 다려 펴주는 대신 크고도, 굵직한 취향만 남게 할 테니.
평상시 내가 의미를 두는 습관이나 특별한 집착 같은 것들이 있다. 특별히 맑은 날에는 강렬한 햇살을 오롯이 받아들이기 위하여 어두운 색깔의 옷을 즐겨 입는다던지, 비 오는 날을 대비하여 우산을 반드시 챙긴다던지, 하루에 한벌씩 갈아입기 위한 속옷을 챙겨간다던지, 이런 사소한 여행의 취향들은 무시해도 될 정도로 문젯거리들이 아니었다. 사소한 취향은 굵고 선명한 기억의 편린으로 지워질 수밖에 없는 것의 여행의 참 매력이다.
뭔가 빠진 듯 허전하고 익숙하지 않던 여행에서 가슴속의 독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이병률은 여행지에서 어느 순간 가슴속의 독이 빠져나가는 듯한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꼈다. 가슴속의 해악(害惡)쯤은 누구나 하나씩 달고 살지 않을까? 나에게 스트레스를 안기는 주범은 도처에서 우리들을 노린다. 직장에서 생존해야 한다는 숙명에 시달리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슴속에 품은 독이 어디 하나뿐일까? 누군가를 향한 끝없는 시기와 질투,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독기 어린 복수, 뛰어넘고 싶은 경쟁심, 이러한 독기를 품은 감정조차 여행지에서는 모두 소멸되어 버린다. 나는 이병률과 비슷한 감정을 올해 싱가포르 여행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여행이란 나의 정체된 존재를 돌려받기 위함이며, 내면에서 찼을 수 없었던 삶의 의미를 바깥세상에서라도 꼭 찾겠다며 떠나는 것이 여행의 본질이다. 잃어버린 '내'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진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어, 떠난 곳을 다시 찾는 사람이 이병률이었다. 인생의 뒤안길로 접어든 내가, 그의 산문집에 듬쑥한 열광을 전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극히 줄어든 우리의 허전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예민한 감수성을 추구한다. 감수성을 깊이 건드리는 글을 좋아한다. 이 세상은 억지 감동으로 가득 찼다. 사람의 생각이 풍기는 묘한 냄새가 사라진 세상이다. 나는 순수한 글로 사람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시를 사랑한다.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시인을 사랑하며, 시인이 쓰는 긴 산문은 더욱 사랑한다. 사람 간의 대화가 사라진 시대에 왜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고 그를 찾아 헤매는지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은 내가 찾아야 한다.
사람의 이야기, 낯선 여행지에서 이야기가 그리운 사람에게 <끌림>을 추천한다. 끝으로 이병률의 여행에 관한 짧은 명언을 남긴다.
여행은 120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 일 - 이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