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이 처음에 있었다
그림자 우물도 친구처럼 같이
그곳에 머물렀다
아무도 존재한 적이 없는 삶이란
무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모두가 존재하지 않은 날은
거의 없다
나는 오래도록 이 땅에 살았다 내 영혼은
물론 이 차갑고 물이 마른 곳에 누워있다
살아서
죽어서
죽지 못한 백여덟 가지의 이유 탓에
숱한 변명의 축성을 쌓아왔으니
이제 보란 듯이 사라지려 한다
나는 증거할 수 없는
말하자면
저승과 이승의 경계를 여행하며
산 자와 죽은 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매개체로 이곳에 거주해왔지만
나는 지금 백지에 불과하다
죽음이 동그랗게 굴러떨어져서
여백에 글자를 남겼다
다만, 한 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