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더 깊은 검은 어둠을 삼킨다

산문인 듯 시인 듯

기차는 비틀비틀 질서를 바쁘게 어지럽히는 중이다. 기차 바퀴에서, 유리로 각인된 창문 안쪽과 바깥쪽에서, 천장에서, 선로에 접착할 때 터지는 공간에서 소음은 태어난다. 그 소음은 물론 이곳에 거의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그 소음은 오직 자신의 존재를 빛내고 싶은 것이다. 모두에게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녀석의 질서를 무시한다. 오직 나에게만 다가선다고 그래서 소음은 굉장히 질투가 심한 녀석이라고 오해하고 만다.


소음이란 원래 그런 불평등한 성질을 갖고 있다.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그러니까 외딴 유형지에 유배된 오랜 사형수의 자격을 취득한 것과 비슷하달까. 소음은 불규칙한 외형으로 지금 나에게 의문의 해석을 요구한다.


창밖엔 검은 안개만이 고요하고 낮은 음성으로 누군가를 부를 뿐이다. 소음이 없는 세계, 소음이 격리된 세계, 고유성이란 명찰이 붙은 세계가 바닥으로 떨어져 조각조각 흩어진다. 그것들이 저 바깥에서 외롭다고 내 목을 죄어왔다가 조급하게 사라진다.


상자갑처럼 생긴 건물이 나타나고 그 옆엔 무질서적인 형상의 외피를 걸친 건물들이 일정하게 고개를 들었다가 일순간 풀려나기를 거듭한다. 탄생과 소멸. 타의적인 괴멸적 흐름이 내 눈앞에서 끈질기게 고집을 피운다.


나는 목격자다. 어둠의 포섭자다. 어둠의 막을 찢어버리는 외계의 종결자다. 어쩌면 그 무엇도 아닐 것이다.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게 평화를 누리다 생을 다하는 길이 아닐까. 그런 거짓 믿음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잿빛에게 끊임없이 고백을 당하고 또 영원히 그것을 거부하는 길이 아닌가.


창밖으로 고개를 슬며시 돌린다. 어둠의 사위가 차분하게 흐르고 있다. 빛은 자신의 꼬리를 자른다. 통증은 없다. 상처는 외곽으로 더 깊은 외곽의 경계로 달아나는 중이다. 그곳에 검은 산등성이가 붉은 울음과 승부를 벌이고 있다. 분명히 나에겐 그렇게 보인다. 검은 것은 오랜 신비를 품은 세계로 나아간다. 포도주로 목을 축이듯 갈증을 기도 밑으로 부드럽게 넘긴다. 내 목을 살리는 포도주 한 방울이 혈관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한다.


콘크리트로 채색된 인공적인 길이 다가온다. 그 길 끝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1 미터 앞을 예측할 수 없다. 거기는 이미 변칙적인 모양새로 더럽혀져 있다. 나는 그 세계를 이해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곳에 속해 있지 않다. 그러니 여행을 떠나는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나는 방관자에서 단 1%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뿐이다. 세계라는 것은 언제나 저물어가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그늘처럼 그곳에 검푸르게 우거져 있다. 저조도의 빛, 빛이 함락된 그곳에서 숲은 오래 잠들 것이다.


교란된 세계가 가까이 있다. 잠들어버린 빛의 자식들이 내 눈망울 속으로 침투한다. 눈부신 고요함과 함께. 이제 어둠은 급격하게 빛을 받아들인다. 빛은 스스로를 품지 않는다. 존재와 빛은 서로 갈 길이 다르다. 빛은 거의 어둠에게 점령되어간다. 점령군은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모든 걸 유린한다. 유린된 세상은 더 완벽하게 강한 것에게 자신의 인생을 찬탈당하는 것이다.


내 영혼은 지금 어딘가로 경도당한다. 강제로 이동되는 것이다. 내가 원한 것은 지금 하나도 없다. 나는 그저 세계가 선호하는 규칙대로 일정한 속도도 강제로 진보하는 것뿐이다. 진보는 어두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결속을 애써 외면한다. 어둠과 본질은 근본적으로 같이 갈 수 없는 사이다. 같은 공간에 거주할 수 없는 천적 사이다.


이제 빛은 완전히 떠나버렸다. 나는 이 외로운 급행열차에 홀로 남았다. 아직 서울역은 멀다. 나는 달리는 중일까? 멈춰 있는 걸까? 급행열차를 타고 외곽에서 또 다른 외곽으로 떠나는 내 신분처럼 빛은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다. 그래서일까. 빛은 마지막인 듯 붉은 육성을 토해낸다. 그것은 잔물결처럼 차분하게 공기를 감싸며 고독함으로 포장된 건반을 두드린다. 붉음은 생명인가, 죽음인가. 나에게 또 묻는다.


나는 이상한 시인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은 내 귀에 강하게 붙들려있다. 바깥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지만, 나는 오래전에 태어난 냄새의 자취를 훑고 있다. 그것은 나의 냄새, 세계가 사멸하면서 남긴 타자의 냄새, 폐허가 남긴 잔혹함의 냄새다. 나는 그 냄새에 포위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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