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하얗게 빛나는 검은 비닐 옷장
수양버들처럼 생긴 너의 봄날들
나뭇가지 끝에 걸려 중얼중얼 거리는
그 속엔 검고 어둡고 영원을 그리는
오래 살아온 그러나 유통기한이 지난 목소리
그리워, 보고 싶어, 이런 해묵은 발성
혼자서 연습하다, 고개를 벽에 부딪혀
스며들고 아득해지는
너는 가버렸고 나는
벽의 형체만 남은 이곳에 멀리 버려져
또 하나의 낙원을
생명의 신비를 찾고 있건만
옷장에 우두커니 앉아서
이곳엔 암흑뿐이더라도 네가
혼자서 슬픔을 쓰다듬거나
외딴섬에 유배되는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거짓 다짐에 기대
과연 그런 일이 우리가 사는 곳에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소란 거려 볼까 봐
발자국이 그러면 수군수군 돌아와
도란도란, 그리움으로 포장된 수신호를 던지고
교란된 차원의 꿈들
옷장 속으로 날아온 옛 면적
부피를 논할 때 재생되는 라디오 주파수
희생 하나라면 죽은 안테나가 일어나
너의 물길을 몰래 건드려줄지도
세상 일은 그래서 모르는 일
쿵, 하고 옷장 끄트머리에 머리를 찧어
열리는 소리, 세계를 포괄하는 소리,
부옇게 아우성치는 소리
문은 문 속에서 문을 열어
꼬리를 핥아도 문은 열리고
희미한 열쇠는 꼬리가 잘려 나가지
보이지 않는
찾아갈 수 없는
암흑 속에서도 거울은
미지의 세계를 더듬고
빛만큼이나 서럽게 다가와
나는 옷장 안쪽의 세상에서
나는 네 얼굴을 보드랍게 쓰다듬는
바깥쪽의 미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