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pr 16. 2022

되살려낼 수 없는 꿈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아버지는 어떤 모습일까 가끔 생각하기는 한다. 그 생각은 그냥 생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아버지라는 상을 한 번 떠올리지만 그 상은 상으로서의 역할만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새벽녘에 짧지만 아주 생생한 꿈을 하나 꿨다. 나는 보통,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이 들어서 그런 패턴은 더욱 짙어지고 자주 반복된다. 꿈을 꾸지만 호주머니에 담긴 동전을 떨구는 것처럼 꿈을 금세 잃어버린다. 꿈은 그저 잠시의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일 뿐이다.


하지만 그 꿈은 지워지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그 꿈은 오히려 더 강렬해졌다. 왜 그런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꿈속에서 나는 강 건너편에 서 있었다. 어쩌면 그곳은 강이 아니라 바다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물이 맹렬하게 흘러갔다는 것만 기억한다. 강이든 바다든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아이들이 보였다. 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된 적이 없었으므로 그럴 일은 꿈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물 위에 가까스로 떠 있었지만 언제 가라앉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아이 앞에는 어떤 구조물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지탱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물속으로 점점 파고들었다. 힘을 잃고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양으로 아이들은 하릴없이 물속으로 사라지려 했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은 꿈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내가 아버지가 아니지만 꿈속에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꿈속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그곳엔 제약사항이 없다. 둥둥 물 위에 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결국 나는 물속으로 몸을 던지기로 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몇 사람과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잠시 후 우리는 물살을 가르며 헤엄했다. 나는 마치 올림픽 수영 선수가 된 것처럼 아주 빠르게 나아갔다. 거친 물살이든 퍼런 깊이든 상관없었다. 나는 물 위에서 가볍게 유영했고 급격하게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몇몇의 아이들을 물속에서 구출했다. 거의 실신하다시피 기절했던 아이들을 물속으로 끌어올렸다. 아이들은 참은 숨을 기다랗게 토해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게 내 꿈의 끝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4월 16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아니다.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였을 그 무렵에 내가 이르렀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아니다. 나는 영원히 아버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의 위치가 무엇일까, 자꾸만 아버지로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잃어버린 아이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잃어버린 아이의 어떤 과거의 흔적들을 생각한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능력과 상상으로 꿈을 억지로 표현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꿈이든 그날 잃어버린 아이들이든,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참하게 기억을 잃는다. 망각 때문에 오늘도 미소 지으며 살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무엇이든 잊어버리고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나 자신을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내가 티브이에서 걱정하던 모습으로 지켜보던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아마도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서, 아버지가 영원히 될 수 없으므로 그 아이들, 사랑스럽고 애처롭고 누군가의 눈물방울 같은 그 고운 아이들의 얼굴은 그저 꿈속에서나 겨우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무의식의 세계, 어쩌면 내 마음속에 깃든 망각의 세계들을 되살려내려고 분투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어른으로서 책임져야 할 마땅한 세계가 아닐까. 꿈이든 현실이든 그러니 나는 헤엄을 쳐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절망은 하루키의 말처럼 시작이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