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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11. 2022

마지막 퇴사가 다가 오고 있을까?


나는 가끔 어떤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이를테면, 블로그에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의미 따위에 대해서.


그런 의미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치부 사항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회사를 퇴사하겠다는 즉흥적인 결심이나, 진로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블로그는 꽤 자유스러운 영역에 속한다. (브런치는 다소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음) 제한도 없고 제약 사항도 없다.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지껄이면 그만이다. 책임을 질 필요도, 주목받지 못한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이 개인적인 공간에 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것일까? 특별한 이유 따위는 없다. 단지 내가 쓰고 싶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건의 이해 당사자가 이 글을 읽을 때 나타나는 불상사에 대해서 책임질 자신이 있다면, 어떤 글이든 과감하게 써 내려가면 된다. 내 마음을 위해서, 나를 위로하는 수단이 글쓰기가 된다면 나는 그 무엇이든 쓰는 방법으로 내 의사를 표현할 자격이 있다.


그제는 회식이 있었다. 회식이라 하면 자동적으로 떠올려지는 문화가 있다. 먹고 마시고 그리고 무엇이든 바깥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나에게는 주로 말들이다. 주로 원성, 원망, 불만 같은 의미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표현들 말이다. 비인격적인 의미를 담은 말들을 최대한 인격적으로 표현한다.


5월 중순이면 계약이 만료된다. 즉 나는 자유 계약 신분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현재 자유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나는 어느 집단이든 나갈 권리가 있고 그런 주장을 내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자유는 의무와 책임의 귀속을 받는다. 겉으로만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회사는 들어가는 것보다 사실 나가는 게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계약 만료 시점에서 나는 내 권리를 주장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예측한 것처럼 근로자의 권리는 연봉 상승이다. 동결은 사실상 주저앉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물론 나는 인상을 요구했다. 대략적으로 20% 내외의 획기적인 인상 폭이다. 여기에 근거 데이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언제나 데이터를 근거로 상대방을 몰아간다. 그리고 주장을 일축시켜 버린다.


나는 개발자이지만 때로 마케터로서 시장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예지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 본분을 벗어버리고 아이디어를 사업화시키는 일에 뛰어든다. 기꺼이, 스스럼없이, 과감하게. 개발자가 아닌 비즈니스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다룰 자신이 있다.


그래서 과제를 따냈다. 남들은 10번 도전해서 매번 탈락한다는 그 과제를 나는 이번에도 성공했다. 50% 이상의 확률이다. 마치 블랙박스처럼 생겨먹은 남들에겐 탐지 곤란한 세계를 나는 요리하듯이 주물러댔다. 그것은 노하우일까. 경험의 집약체일까, 아니면 나만의 재능일까. 아무튼 모르겠다. 몇 억을 따냈으니 어쩌면 나는 몇 년 치의 시간을 번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20%의 연봉 상승을 요청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 대표에게 들은 이야기는 내가 의도된 시나리오의 흐름과는 너무 달랐다. 회사의 사정상 모든 임원의 연봉은 동결하기로 결정됐다고. 결정이라, 나는 결정됐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적도, 그런 사실을 회식자리에서 들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의식 없이 혹은 의문 없이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하지 못한다. 예전처럼 대표가 지시하면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멍청이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연봉이 동결됐다는 것은 사실상 나가라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라고 나는 이 문장과 한치의 다름없이 대표에게 불만을 토해냈다. 최대한 인격적인 어투로. 말이란 마음속에 감춰두면 반드시 병으로 변질한다. 말은 묵힐수록 더 나쁜 것으로 변해간다. 그러니 나는 그 불만을 바로 토해낸 것이다. 하지만 대표는 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답변했다. 원론적, 형평성, 전체주의적인 발언만 반복했다.


하지만 나는 시스템의 허점을 쉽게 간파한다. 동결인데, 승진한 임원은 무엇인가. 동결이라면 사전에 충분히 상황을 전달했어야 한다. 그리고 연말에 지급할 인센티브는 그때 얘기다. 내가 연말에 회사에 남아있을지 누가 아는가. 조기에 퇴사한다고 하면 연말에 받을 인센티브를 퇴사하는 시점에서 지급하는가. 그런 의문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대표는 자신의 입장만 전달할 뿐이었다. 앵무새처럼.


나는 대표의 발언을 협상 테이블을 부수겠다는 의도로 해석했다. 나는 박차고 자리에서 당장 일어나야 했다. 뇌는 그렇게 주문하고 있었다. 경솔한 판단이 아닌 신속한 판단이 필요할 때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나, "그럼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선포하고 다소 이른 시각인 7시에 고기 파티에서 나와버렸다.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회사는 이제 퇴사해야겠다고.


그날 즉시 나는 매니지먼트에 퇴사 절차를 물었다. 단지 절차를 묻기만 했을 뿐인데, 나로부터 시작된 질문이 나비가 되어 전사로 전파되어갔다. 이것이 나비 효과일까? 어쨌든 나는 퇴사를 작심했고 이후 진행되는 프로세스는 나를 어딘가로 몰아갈 것이다. 그 길이 벼랑 끝이 될지, 새로운 벽이 될지, 새로운 희망이 될지, 나는 예측할 수 없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흥미진진해진다. 나는 이제 상황을 즐기려고 한다. 물론 아쉬울 것은 하나도 없다. 상황은 내가 리드하고 있고 키도 내가 쥐고 있다. 나이와 전혀 상관이 없다.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거나 테이블을 박살 낼 위치에는 내가 올라서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인생을 살아왔다. 협상에서 언제나 주도적이며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 그것이 내 오랜 직장 생활에서 얻은 검험의 결과다.


퇴사하게 되어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게 될지, 아니면 나에게 유리한 조건 몇 가지를 들어보고 수락할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렸다. 무엇이든 나에게 유리한 대로 판단하면 된다. 남 신경을 쓸 필요도, 남의 처지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방향에서 내 가치관대로 살아가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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