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18. 2022

글자들이 일으킨 파문

“와, 젊으시네요. 아직 날이 쌀쌀한데, 아침부터 아이스커피를 드시네요. 역시 젊으십니다.”
“아... 제가 그다지 젊진 않았어요.”


물론, 그 말이 썩 듣기에 나쁘진 않았다. 어쩌면 매우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모가 아닌, 빈 컵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커피 머신에 그 컵을 밀어 넣는 행위가 내 젊음을 대신한다고 하니, 원인모를 냉기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다. 오늘도 온 좋게 살아 있어서, 생생한 젊음의 맛을 체험하는 중이다. 젊음은 비교적 갓 잡은 생선회와 비슷하다. 유효기간이 짧다. 살아 있다고 해도 곧 풀이 죽고 만다.


커다란 종이컵에, 불순물이라고는 전혀 담기지 않은 흰 여백만 가득인 빈 컵에 역시 흰색과 거의 유사한 빛깔의 투명한 얼음 덩어리들을 채우고, 그것을 커피 머신 밑에 슬며시 밀어둔다.


잠시 말을 잊고, 어쩌면 말이란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안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그런 신분 없는 말들은 고요한 곳에 방치해 둔다. 말은 침묵에 휩싸여 있다. 저 빈 컵에 가득 찬 얼음 덩어리들의 빈 소란처럼 내 말은 거처 없이 어디엔가 꽉꽉 들어차려고 노력 중이지만, 자신의 숨을 아끼고 있다. 보란 듯이 어떤 순간, 어떤 때를 기다리며 몸은 기회를 도모하고 있다.


얼음 위에 뜨거운 커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가만히 목격하며 나는 생각이란 것을 잠시 내 주변에서 거둬들였다. 빨랫줄에서 잘 마른 옷감을 탈탈 털어내듯이 나는 생각에서 먼지 같은 불순물들을 덜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분리되지 않는 말 그대로 여과되지 못하는 존재였다. 불순물과 순도 높은 물질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내 안, 어딘가에 하루키가 말한 중핵이라는 것이 위치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믿음이 바라보는 관점이지만, 과거에 믿음에 기대지 않고 어떤 본능적인 행위에 따라 살아온 나로서는 믿음의 깊이를 헤아리지 않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진실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 사이에 있다고 믿기에, 이제 믿음이란 순응도 거부도 할 수 없는 마음속, 표층 밑에 가라앉아 있는 순수한 세계라고 믿는다.


중핵은 말 그대로 중심이다. 중심이지만 어디가 중심인지 나는 손을 더듬어도 알 수 없다. 기묘하지만 그 핵이란 것이 내가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측면에서 중심부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이해한다. 아니, 그것은 이해의 측면이 아니다. 순수하게 이미지를 받아들일 뿐이다.


이런 쓸데없는 망상, 혹은 생각이라 말하기 곤란한 어쩌면 불법적일지도 모르는 공상 끝에 기묘한 결론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지금 얼음을 뚫고 컵 밑바닥 속으로 침투하는 커피 분자들의 아우성 때문일지는 모르겠다. 아우성은 요란하게 조각들을 분쇄시키고 더 작은 조각들로 자신을 해체하는 중이지만, 나는 아우성을 장면이 아닌 소리로서 이해하려고 애쓴다.


얼음은 작은 단위로, 어쩌면 아주 미세한 소리로 나눠졌을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자신의 존재성을 잃어버리고 또 다른 어떤 형체로 분화한다. 나는 변화된 형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표면 위에서 찰랑거리는 작은 소리로 변신한 얼음과, 커피 알갱이, 그리고 표면의 물결처럼 생긴 파문을 본다.


내가 지금 써 내려가는 글자들은 컵 위에서 파문을 일으키는 커피 분자와 물 분자의 뒤섞임과 같다. 그것들은 규칙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어떤 체계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의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려고 또한 의탁하기 싫어서 가끔 제 몸을 흔들거릴 뿐이다.


글자들은 표면 위에 얇게 걸쳐진, 그러니까 비닐처럼 생긴 막을 지녔다. 한쪽 끝을 잡고 끌어올리면 얇고 투명한 글자 하나가 내 손톱에 이끌려 몸을 추켜세운다. 아니, 억지로 끌려 오는 걸지도 모른다. 한 글자가 따라오면 그것에 붙들린 나머지 글자들도 순응한다. 어떤 글자들은 갈 길을 잃는다. 그곳엔 어떤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색무취의, 경계가 없는 그저 붙투명하지 않은, 심도가 비교적 낮은 형체들의 연속적인 끌림 뿐이다.


글자들은 저마다 숨을 쉰다. 기다랗게 혹은 짧게 어떤 녀석들은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끌려 나오기 싫어서 억지로 표면에 더 강하게 흡착하려고 한다. 흡수되지 않는, 혹은 어쩔 수 없이 본래의 빛깔을 잃고 다른 경계에 흡수되고야 마는, 두 가지 운명을 가진 글자들은 나의 미래와 어쩌면 유사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어디론가 끌려가는 중이다. 나는 제 빛깔을 잃어가는 것일지도, 내 형체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을지도, 그 끝에 내 존재가 세상에 완벽하게 희석되어서 언제 존재했었는지 그 증거를 찾을 수 없다 해도 나는 엄연히 한때 분명했던 어떤 물질에서 또 다른 물질로 변해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맞을 운명인 것은 분명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지막 퇴사가 다가 오고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