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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24. 2022

버스 왼 편 너머에는 먼 산이 있었다

퇴근을  때마다  산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끔가끔 징검다리를 뛰어넘듯 버스 왼쪽  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의식 잃은 나를 발견하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왼편, 왕복 8차선 도로 건너편으로 남은 의식까지 몽땅 보내버리고 만다.​


왼편 끝엔 늘 먼 산이 홀로 서 있다. 먼 산 앞에는 이름 없는 도로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옆엔 이름 없는 전신주 몇 개가 시골 마을의 죽은 장승처럼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아무도 모르는 열병식이 매일 밤마다 펼쳐지는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열병식이란 말인가.

아니, 엄밀히 말한다면 그 산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기다랗게 누워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녀석은 어쩌면 모두가 잠들어버린 자정 이후, 무덤덤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어물정 걸어 다닐지도 모른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어둠 속에서  어두운 늪과 같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지 않는다고 누가 규정할  있을까. 어둠을 진실을 포섭한다. 진실 속에서는  어둠이 은폐되어 있다. 진실과 어둠은 씨앗을 나눈 형제다.​


나는  산을 지긋이, 말하자면 의식을 내려 놓고 마치 모든 욕망을 포기한 사람처럼 그들과  패거리가 되겠다고 결정하지만, 그런 다짐은 무의식과 함께 쓰러지고 만다.​


먼 산은 말 그대로 먼 산이다. 설령 이름이 있다고 해도 그 산은 그저 먼 산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존재감이란 까만 밤 홀로 존재하는 나노 사이즈의 먼지만큼 만 할뿐이다.

나는 인간의 세계에서는 절대 번역하지 못할 말을 부옇게 차창에 그려 놓는다. 그리고 차창과 멀리 떨어진  산을 흐린 눈으로 바라본다.  산에서는 듬성듬성 붉은 빛깔이 감돈다. 어둠 속에서 소리 하나가 외롭게 손짓이라도 하는  같달까.​


나는 그런 어둠 속에서 어떤 존재감 없는 존재가 자신의 존재하지도 않았던 존재를 과시하려고 애써 동작 중이라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감지한다.​


어둠은 어둠 속에서도 어둠처럼 낮게 엎드려있다. 어둠은 겸손한   밑에서 납작하게 웅크린  웅성 거린다. 나는  말을 번역할 자신이 없다. 아니 번역하려고 노력한 적조차 없다. 그저 들을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어둠은 마치 경쟁하듯이  어두운 광채들에게 존재감을 내어준다. 어둠은 서로를 감싸며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칼을 쓰다듬듯 그렇게 저쪽에서 이쪽으로 물결치듯 쓸려 내려간다.​


나 역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뒤쪽에서 앞쪽으로 정지된 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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