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할 때마다 먼 산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끔가끔 징검다리를 뛰어넘듯 버스 왼쪽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의식 잃은 나를 발견하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왼편, 왕복 8차선 도로 건너편으로 남은 의식까지 몽땅 보내버리고 만다.
왼편 끝엔 늘 먼 산이 홀로 서 있다. 먼 산 앞에는 이름 없는 도로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옆엔 이름 없는 전신주 몇 개가 시골 마을의 죽은 장승처럼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아무도 모르는 열병식이 매일 밤마다 펼쳐지는 것이다. 대체 누구를 위한 열병식이란 말인가.
아니, 엄밀히 말한다면 그 산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기다랗게 누워있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녀석은 어쩌면 모두가 잠들어버린 자정 이후, 무덤덤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어물정 걸어 다닐지도 모른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어둠 속에서 더 어두운 늪과 같은 어둠 속으로 침잠하지 않는다고 누가 규정할 수 있을까. 어둠을 진실을 포섭한다. 진실 속에서는 늘 어둠이 은폐되어 있다. 진실과 어둠은 씨앗을 나눈 형제다.
나는 먼 산을 지긋이, 말하자면 의식을 내려 놓고 마치 모든 욕망을 포기한 사람처럼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되겠다고 결정하지만, 그런 다짐은 무의식과 함께 쓰러지고 만다.
먼 산은 말 그대로 먼 산이다. 설령 이름이 있다고 해도 그 산은 그저 먼 산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존재감이란 까만 밤 홀로 존재하는 나노 사이즈의 먼지만큼 만 할뿐이다.
나는 인간의 세계에서는 절대 번역하지 못할 말을 부옇게 차창에 그려 놓는다. 그리고 차창과 멀리 떨어진 먼 산을 흐린 눈으로 바라본다. 먼 산에서는 듬성듬성 붉은 빛깔이 감돈다. 어둠 속에서 소리 하나가 외롭게 손짓이라도 하는 것 같달까.
나는 그런 어둠 속에서 어떤 존재감 없는 존재가 자신의 존재하지도 않았던 존재를 과시하려고 애써 동작 중이라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감지한다.
어둠은 어둠 속에서도 어둠처럼 낮게 엎드려있다. 어둠은 겸손한 밤 달 밑에서 납작하게 웅크린 채 웅성 거린다. 나는 그 말을 번역할 자신이 없다. 아니 번역하려고 노력한 적조차 없다. 그저 들을 수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어둠은 마치 경쟁하듯이 더 어두운 광채들에게 존재감을 내어준다. 어둠은 서로를 감싸며 마치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칼을 쓰다듬듯 그렇게 저쪽에서 이쪽으로 물결치듯 쓸려 내려간다.
나 역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뒤쪽에서 앞쪽으로 정지된 채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