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오늘은 추석 당일인데 나는 화단 앞을 걷고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어떤 목적성을 지니고 이 갈색 나무판자로 구성되어 있는 화단 주변을 둥그렇게 배회하는 걸까. 물론 거기엔 어떤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적성이 결여되어있다.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단지 내 마음 어딘가에서 화단 주위를 돌고 싶다는 단순한 동기가 일어났을 뿐이다. 거창한 목적이나 이유 따위는 붙일 생각은 없다.
돌고 돈다. 나는 기다란 원을 그리며 돈다. 지구와 같은 방향으로 도는 건지, 반대방향으로 도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돈다. 하지만 돈다고 해도 그것은 원의 형태라고 정의하기 곤란하다. 위에서 보면 구불구불하고 한쪽은 찌그러져 있다. 그리 아름답지 않은 곡선을 제멋대로 그려대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화단을 왜곡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완벽한 원을 그릴 생각도 없다. 화단을 따라 그것이 만들어진 형태대로 말하자면 팽이처럼 회전한다고 믿으며 걸으면 그만이다.
어쩌면 나는 제자리에서 내 몸을 회전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건 착각에 불과하다. 거대한 원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야 말로 상상에 불과하다. 상상은 경계가 없고 그 너머를 쉽게 넘나들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생각한다. 생각이야 말로 상상의 끝판이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생각할 자격이 없다. 자격을 갖추고도 생각할 줄 모르는 게 인간이다. 하루키는 그런 말을 했다. 대부분은 머리를 장식으로 두고 있다고. 머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하는 게 지금 이 화단을 돌고 돌아가는 행위에 어떤 보탬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은 생각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내 머리는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엔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의 내 동작을 운동이라 정의해야 할까, 산책이라 정의해야 할까. 아, 생각하지 않고 걷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생각에 유혹당하고 말았다. 음악을 듣자! 무심하게 음악이 전하는 박자와 멜로디에, 알아듣지도 못하는 가사에 심취해서 걷다 보면 분명 무엇이든 놓아버릴 수 있을 거다. 생각에 대한 강한 집착, 관성적인 체념 현상, 모순적이지만 의무라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모든 외압을 물리쳐버리자, 추석 당일날엔 어딘가에서 차례상을 올려두고, 형식적인 절을 하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숭배하는 일 따위, 음식을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장면에서 잠시나마 멀어지자. 떨어지자, 돌고 돌다 보면 무엇이든 내가 그리는 이 단단한 원 안으로 침범하지 않을 거다. 말하자면 이 구불구불하고 불규칙적이며 원이라 인정할 수 없는 둥그스름하지만 그리 안정하지 못한 이 원 안쪽으로 어떤 불협화음도, 내가 만든 개념이 아닌 것들이 내 것으로 취급당하지 말도록 노력하자.
양팔을 흔들고 허벅지를 앞뒤로 당겨가며 심장을 안쪽에 둔 채 걷는다. 아니 회전한다. 제자리가 아닌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돈다고 생각을 왜곡시킨다. 생각은 이렇게 편향되고 한쪽으로만 치우쳐버린다. 믿음은 버린다. 운명도 버린다. 의무는 이미 원을 그리기도 전에 화단 안쪽 잔디 위에 버려두고 왔다. 잔디 앞엔 표지판이 서 있다. '잔디를 보호해 주세요.' 나는 보호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른다. 보호한다는 말은 방치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을 압축하고 그것에서 뭔가를 발라낸다. 끄집어낸다. 내버려 둬, 그냥 그대로 제멋대로 살아가게 놔둬. 그런데 돌연히 나타난 너는 그 경고를 무시한다. 아무렇지 않게 잔디 위에 올라서서 그 위를 누빈다. 잔디 밟기라도 하는 거니?
화단엔 오직 나뿐이었다. 강한 햇살이 높은 곳에서 아래쪽, 화단으로 한가득 기울어졌지만, 그 높고 넓은 기운 가운데에서도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너는 어느 순간 내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말하자면 너는 내 기운을 방해한 것이다. 네가 누구인지, 나는 너의 마스크 뒤에 숨겨진 표정과 그 비열한 표정 뒤에 숨은 너의 본질을 알 수 없다. 너를 방해꾼이라고 정의하련다.
너의 왼손엔 기묘한 것이 묶여 있었다. 그것은 검은 물체라고 정의해두자.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협소하게나마 내 주관에 의지한다면 검은 비닐이라고 더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다. 왜 손목에 검은 비닐을 칭칭 휘감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역할을 맡았을 거라 짐작한다. 나는 너의 손목에 담긴 검은 비닐의 용도에 대해서 오직 너의 손목에만 시각을 집중시켰으므로 그것이 어디에서 유용한 역할을 해낼지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할 줄 안다. 하루키가 말한 어리석은 인간들의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너의 오른손에 붙은 또 다른 연결고리로 의식을 전환한다. 그것은 기다란 하나의 끈이다. 끈은 길이를 가졌다. 길이는 꽤 상대적이다. 탱탱한가? 탄력적인가? 탄탄하게 긴장되어 있는가. 그 끝에는 무엇이 달려 있는가. 그래, 나는 너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한다. 화단을 돌면서 무심하게 앞을 관망하는 척하면서 나는 너의 동작을 세밀하게 하나씩 하나씩 조목조목 관찰하며 머릿속에 뜯어놓는다. 언젠가 써먹을 순간이 찾아올 거라고.
너의 오른손 끝엔 줄이 달려 있고 나는 그것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나머지 끝엔 동물이 낚싯줄에 달린 것처럼 끌려온다고 믿는다. 그 동물은 하얗고 앙증맞게 생겼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귀여움의 상징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형체를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선사시대로부터 그 녀석은 우리에게 오랜 친구가 됐다. 가축에서 이제 한 집안에서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인생의 동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친구를 왜 목줄에 휘어 감았는가. 그 작은 원은 어떤 목적을 구가하는가. 너는 왜 그 가족이라 칭할 수 있는 녀석의 목에 팽팽한 긴장을 조성하는가.
이런 상상을 하며 나는 녀석의 주인인 너의 행동을 계속 관찰한다. 너희는 아무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지역으로 출몰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처럼 이 화단을 원을 그려가며 나의 행렬에 동참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규칙을 통렬하게 위배했다. 금지하는 것을 어긴 셈이다. 그렇게 잔디를 활보하며 절대 운동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을 너희는 시작했다. 너의 반려동물인 녀석은 어떤 분명한, 확증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것은 생리적인 것이고 심리적으로 불완전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바꾸려는 행위였다. 말하자면 하루에 반드시 한 번쯤은 거쳐야 하는 중대한 외부의 행사였던 것이다. 다만 장소가 문제였다. 너희 집 안방이라면 그 행위는 용서받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너희는 안방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공간을 너희의 안방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따로 할 말이 없다. 너희의 믿음의 영역인걸, 너희가 그어놓은 빗금을 내가 어찌 침범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 영역은 퍼블릭한 것이다. 너뿐만 아니라 나도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자 미지의 영역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 안방은 너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속하는 거라고 진단을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안방이라면, 그 화단 안쪽 잔디밭이 너희에게 안방으로 작용한다면 너희는 그러한 행위를 결코 해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당연히 지탄을 받을만한 일이었다. 물론 반려동물인 녀석의 행동에 윤리의식이 결여되어있다고 해서 녀석을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너의 행동은 다른 취급을 받는다. 너는 너의 가족인 반려동물의 행위에 마땅한 책임을 진다. 너는 녀석이 생산해낸 검고, 원숭이 바나나처럼 생긴 물건, 갓 잉태한 욕망의 잔해를 버려두고 떠났다. 너는 잔디밭 위에서 그 주변을 온통 검은 물건들로 도배한 채 도주한 것이다. 나는 설마 네가 사회인으로서 아파트라는 공동구역에 거주하는 구성원으로서 그런 짓거리를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너는 현장을 유유히 떠나갔고 아무런 증거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장에 남은 녀석의 부유물, 그것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통해서 나는 그것이 갓 생산해낸 악의 총체라고 결정한 것이다. 물론 이 따위는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상상의 범주가 되지도 못한다. 나는 그래서 분노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치밀어 오르는 역한 혐오 의식을 주체할 수 없어서, 추석 당일날에 차례도 지내지 않고 이렇게 산책인지 운동인지 분간할 수 없는 활동에 진심인 나 자신에게 굉장한 실망을 하고 너의 책임 없는 행위에 대해 강력한 책망을 가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잔디밭에 굴러다니는 검은 형체와 그것에 맛을 알고 방금 날아든 투명하고 작은 날개를 지닌 또 다른 생명체의 환대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사라진 너를 찾으려고 한다. 이 안정한 화단의 원을 떠나서 나는 너에게 죄를 묻는 심판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찾아내서 너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반려동물 목에 묵인 그 끈을 끊어버릴 것이며, 너의 왼손에 들린 검은 비닐의 용도에 대해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