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자스민은 여행 중이었으며 게다가 한국은 최초의 방문이었다. 자스민에겐 공부가 필요했으며 무엇보다 자상한 관광 가이드가 필요했다. 하지만 자스민은 가이드이자 엄마이며 아내의 역할을 이곳 한국에서 혼자 해내야 했다. 그럼에도 자스민은 잔뜩 기대에 부푼 나머지, 호텔에 가까스로 요금을 치르고 나와서도 따갑고 빈틈없는 햇살의 지배를 당하던 고국 이라크의 시뻘건 태양과 황량한 사막을 잊은지 오래였다. 9월의 청명한 바람과 높디높은 하얀 구름 그리고 따스하게 히잡을 감싸는 한국의 파란 하늘에 연신 감탄사를 베풀어대고 있었다.
“멋지구나. 아름답지 않아? 예술이야 예술. 여기서 주욱 살고 싶지 않아?” 자스민은 예술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국의 가을이 예술의 경지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들인 라이한은 아까부터 불만 투성이었다. 친구 녀석들과의 여행이 취소되어 갑자기 낯선 한국에 찾아오게 된 것도 달갑지 않았고 이른 아침부터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이곳저곳을 따라나서는 것도 불만이었으며 하얀 마스크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숨도 쉬지 못한 채 방황하듯 걸어 다니는 것도 짜증 났다. 게다가 라이한의 동생인 파티마는 유모차 위에서 돌고래 같은 비명을 연신 질러대고 있었으니…
한국엔 가을이 존재했다. 이라크에는 없는 깨끗한 가을 하늘이.
이곳의 하늘은 꽤 높은 곳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중이었다. 두 팔을 뻗어서 그만큼의 팔을 두 배로 더하고 한껏 가슴을 펼쳐도 닿지 않을 하늘에 하얀 구름이, 솜사탕처럼 생긴 조각구름이 둥실둥실 돛단배처럼 떠다녔다. 라이한은 나무젓가락으로 그것을 한 움큼 떼어내어 맛보고 싶었다.
“목이 말라요. 엄마.”
동생 파티마는 계속 칭얼거렸다. “파티마 좀 봐요 엄마. 목이 마르다잖아요.” 라이한은 파티마를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멍하게 정면을 바라보며 엄마의 치마를 잡아당기며 투정을 부렸다.
“조금만 기다려봐. 우리에겐 기다린다는 게 너무나 소중하단다 얘들아.” 자스민이 말했다.
“우린 기다리고 싶지 않다고요. 이 마스크 좀 벗으면 안 돼요? 난 물이 필요해요. 여긴 이라크의 사막과 똑같다고요.”
대답은 대답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대답이 없다는 것, 무음이 단조롭게 유지된다는 것은 무엇이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타날 뿐이었다. 자스민은 유모차를 밀었고 하늘을 쳐다보고 자신을 구경하는 인파들 사이를 외롭게 뚫고 다녔다. 자스민에게선 싸구려 향수 냄새가 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물원의 원숭이들인 양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구경했다. 그녀의 히잡이 오늘따라 유난히 오후 2시 햇살 아래에서 반짝거렸으나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 히잡을 불쑥 잡아채고 낚아갈 것만 같았다. 라이한은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엄마, 히잡 벗어도 되지 않아요? 여기서까지 꼭 그래야 해요?”
“이건 율법이란다. 이슬람 선지자의 거룩하고 냉엄한 계시지. 우리에겐 모세의 계시보다 더 확고하단다. 그분은 이 먼 한국 땅에서도 우리를 늘 지켜보고 계신단다. 주의를 게을리하면 안 돼. 네가 가는 모든 거처에서 그분은 너를 쳐다보고 계셔. 그러니 너는 너의 길을 지켜야 한단다.”
“그분은 눈을 많이 갖고 계시나 봐요. 저 높은 하늘을 아무리 쏘아 봐도, 눈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요. 그분은 호루스의 눈 같은 거라도 가지고 계신 건가요?"
“일단 좀 참아보자. 이집트 신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어. 일단, 오늘 우리는 꼭 가야 할 곳이 있어.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꺄아아악. 히우우웅” 고주파 찢어지는 소리, 바이올린 현이 찢어지는 소리, 세상의 모든 짜증과 원성을 가득 품어낸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마치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세차게 뿌려졌다. 버스정류장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자비 없이 평등하게 말이다.
“저 버스야. 라이한 먼저 올라타서 엄마를 좀 도와주련.”
버스가 앞에 섰다. 앞문이 열리자마자, 라이한이 무뚝뚝하게 올라서서 맨 앞자리에 앉았다. 라이한은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자스민은 아이가 앉은 유모차를 두 손으로 들고 열려있는 앞문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버둥거리고 뒤뚱거렸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초조한 시간만 애타게 흘러갔다. 다행인 점은 버스에 승객이 없었다는 점이다. 버스 기사는 자스민을 응원하고 있었다. 도와줄까? 말까? 헬로우? 메이 아이 헬프… 낯선 철자들이 입술 끝에서 자연스럽게 배출되었지만 나머지 말들은 온기가 없었다.
유모차의 앞바퀴가 시야에 먼저 나타났고 곧이어 가느다란 두 개의 나약한 팔이 나타났고 히잡이 슬쩍 부상하기도 했지만 뒤로 슬쩍 물러서기도 했다. 죽느냐, 사느냐, 마치 햄릿의 대사처럼, 여행객은 버스에 오르는 것에 대해 심대한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나지막한 한숨에 마지막 힘이 더해지고 버스 엔진과 비슷하게 생긴 멜로디와 박자가 부르르 떨더니 겨우 승차에 성공했다. 그리곤 버스 안에 싸구려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하우 마치?”
“얼마? 얼마냐고? 얼마냐는 거지요. 잠시만요. 초등학생 1명에… 이 아이는 3살쯤 됐네요? 그럼 유아 한 명에.. 성인 한 명이니까. 내가 계산 좀 해볼게요. 기다려봐요. 거 앞에 일단 앉아요 출발하게.”
자스민은 지갑을 열고 만 원 짜리 두어 장을 꺼냈다. “아냐아냐 노오노우. 만 원 노노, 천원 오케이 오케이” 기사가 신나서 떠들었다. 자스민은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를 구분할 줄 몰랐다.
“아… 한국 처음이에요? 퍼스트 타임 인 코리아? 하하. 천원 한 개, 오케이 오케이” 기사는 천 원짜리를 감탄사처럼 반복했다.
“이거? 천원 맞아요?” 자스민이 종이 조각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래요. 천원 한 개, 여기에 밀어 넣어요.” 기사가 웃으며 말했다.
천 원 짜리 한 장이 돈 박스에 쑥 굴러들어갔다. 복사지처럼, 살포시. 그리고 기사는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웨어? 아유? 어디로 어디로 가요?”
자스민은 말이 없다. 라이한은 뾰로통한 얼굴로 앞자리에 혼자 앉아 있다. 그녀는 불안하게 유모차를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뭔가를 입력하며 찾고 있다. 파티마는 계속 돌고래처럼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파티마에게 결국 아이패드가 한 대 주어졌다. 아이의 특권이다. 돌고래와의 원만한 합의를 위한 그녀의 영리한 전략이었다.
자스민은 스마트폰으로 어딘가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지금 가야 한다고 기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기사가 알아듣던 그렇지 못하던, 난데없이 낮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지각이 환기된 사람처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이라크 말인지 이슬람 언어인지 알 수 없는, 히잡에 얼굴을 감춘 채로…
“남편을 찾고 있어요. 남자를 찾아서 저는 이라크에서 한국으로 왔어요. 말하자면 귀국한 셈이죠. 오자마자 일주일 호텔에 격리되어 있었고 오늘 겨우 풀려났죠. 그래서 청량리의 작은 모텔, 허름한 방을 하나 잡았죠. 그리고 오래간만에 편안한 밤을 맞았어요. 어젯밤이었죠. 정말 꿀같은 밤이었어요. 남편은 없었지만… 그래도 들떠서 행복했고 기다릴 수 있어서 더 행복했죠. 오늘 남편을 만나는 날이거든요. 물론 남편은 내가 여기 오는 걸 모르죠. 깜짝 쇼는 언제 어디서나 먹히잖아요. 한국에서도 그런 거 통하죠? 이라크에서는 최고로 먹히는데… 아무튼 난 한국에 남편을 찾아왔어요. 기나긴 여행이었죠. 두 명의 아이와 함께요. 그래요. 눈치챘겠지만, 이 아이는 남편의 씨앗들이죠. 남편은 자신이 광화문 A 빌딩에 근무한다고 늘 말했어요. 여기 명함이 있어요 명함 보이죠? 전 여기로 찾아가서 남편을 만나야 해요. 전화 따위로 미리 알리지는 않아요. 남편이 놀랠 거 아니에요. 예보 없이 찾아가서 축하해 줘야죠. 여기 우리의 만남을 기념할 조그만 케이크도 하나 샀어요. 그의 팀원들에게 축하를 부탁해야죠. 사진도 꼭 찍고요. 우리의 새날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생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요? 이라크에서의 지나치게 단조롭고 따분했던 생활도 이제 청산이에요. 이 시끌벅적하고 야단법석스러운 한국에서 인생을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죠. 그러니 저를 좀 도와주시겠어요? 제가 A 빌딩을 찾아가야 해서요. 그 빌딩은 광화문 근처에 있다고 했어요. 이 버스가 거길 가는 거 맞죠? 저 아이들을 좀 보세요. 돌고래처럼 끝없이 노래를 부르는 파티마와 반항심에 빠진 라이한을 보라고요.”
기사는 자스민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의 높낮이, 두 팔의 어설픈 애원 그리고 무엇보다 히잡 속에 감추어진 그녀의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버스는 원래 주어진 임무였던 동대문을 통과하여 금호동으로 운행하려던 계획을 대폭 수정하여 그녀가 원하던 광화문으로 직행하기로 결정했다. 기사는 한없이 푸근하고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버스는 2시의 태양과 파란 가을 하늘 밑으로 온화한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