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소설 에피소드 4
힘을 잃은 채, 어쩌면 태초부터 힘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근거지를 분간할 수 없는 원죄의 기억만 남은, 환원되지 않은 힘을 되찾겠다는 각오만 남아서, 내 작은 집, 어둡기도 하고 간혹 빛의 은총이 내려지기도 하는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빛조차 틈을 내주지 않을 내 방랑의 거처로 돌아갔다. 억울했지만, 어느 대상에게 억울함을 공표해야 할지 저항할 수 없는 무력감에 도취된 나머지 그래서 더욱 억울했지만, 가까스로 집 앞에 서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나는 문 앞에 가만히 서서, 어둠에 온몸으로 맞서서, 불청객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뼈진 나머지 슬금슬금 언제라도 도망칠 자세를 취하곤 현관을 열고 안쪽까지 진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고개를 틀었을 때, 멀리 블라인드가 집안 곳곳에 내려져있었고 어둠은 낮인데도 모든 공간을 태연하게 유린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 대해 긍정을 하면서도 무력하게 긍정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러워서 다시 부정적인 의견으로 돌아서야 했다. 나는 아무런 권한도 없고 아무것도 선택할 수도 없는 무위의 상태, 어떤 역할도 나에겐 타인에 불과했다. 그렇다, 나는 그저 나 자신조차 용서하지 못하고서 타인의 인격을 나 자신으로 신격화하는 방법으로, 점점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질 요긴한 방법, 나를 타인으로 붙잡아둘 궁리에만 집착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집을 피울수록 그녀의 존재는 더욱 강렬해졌고 그녀의 공감대 속으로 자꾸만 편입되려고만 하는 나의 의지는 속절없이 고개를 숙이고 마는 것이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체념이다. 나를 향한 고결한 체념인 동시에 타인으로서의 완벽한 단념, 모든 인간의 형태이기를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취해야 할 마땅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결정을 고심 끝에 내리고 언제 어디에서부터 행동을 취할 것인가, 나름의 긍정적인 활동을 펼치려는 차에 소파 위, 잔뜩 구겨진 쿠션 밑에 하얀 천 쪼가리 같은 것이 살짝 보였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쿠션이 표시하려는 어떤 미약한 항거의 의미, 불편함을 표현하려는 의사일 거라 착각했다. 하지만 쿠션이 어찌 자신의 감정을 외부에 표출한단 말인가. 표현이라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고유의 특권이자 수단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세상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을 의인화시키는 시적인 활동에 몰입한다고 해도 그것은 상상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그런 기묘하게 물질과 내면이 뒤섞인 세계와 그에 속한 더 미세한 물질의 세계가 언어학적인 활동과 그에 수반하는 육체적인 활동을 동시에 취한다는 것은 인간의 권리를 넘어서는 일종의 신적인 지위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나는 이제 모든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쇠약해지고 심지어는 시야까지 왜곡되는 지경에 이르렀구나,라는 판단과 게다가 사물이 나타내는 하나의 단순한 모양새에까지 의미를 대입하고 증거를 찾고 있었구나,라는 끔찍한 결론에 이르러, 어쩌면 정신이 지나치게 고양된 상태, 폭증된 상태가 되어, 인간으로서의 생기를 잃는 건 아닌지 나로서는 심각한 진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쿠션의 끝단, 밑바닥에 가까이 다가서서 안경을 고쳐 쓰고 가다듬어서 차분하게 바라보니 그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분명한 형태, 그러니까 하나의 인공적인 역사의 조형물, 편지봉투 따위로 판명된 것이었다. 편지봉투? 나는 그런 물건 따위를 소파 아래에 깔려둔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정체불명의 봉투를 조심스럽게 확인하곤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놀라게 된 이유는 뒤집은 봉투 한쪽 끝에 명료하게 인쇄된 내 이름 세 글자와 그 옆에 대문짝만 하게 찍힌 ‘청첩장’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청첩장? 누가? 어느 존재가, 어느 몹쓸 배달부가 나에게 이런 물건을 증여했다는 말인가. 나는 마치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주인공이 달빛을 향해 자신이 극렬하게 사랑했던 대상을 격렬하게 저주하는 대사처럼, 청첩장의 예기치 않을 방문을 저주하고, 그와 만나게 된 나의 선택을 저주하고, 그것을 남몰래 남겨두고 말없이 떠났을 존재를 원망하는 대사를 공기 중에 살포했다.
내가 가련한 비극의 주인공이라도 되어야 그것을 전송한 대상은 안식이라도 갖게 되는 걸까. 물론 그 대상은 뉴욕으로 떠나겠다고 선포한 그녀가 분명했다. 대체 그녀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불온한 선전물을 두고 떠나겠는가. 나는 허탈하게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도 듣지 않겠지만 누구라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만히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냐, 이것은 실존할 수 없어. 고양된 내 정신이 만들어낸 허상임이 분명해. 이런 물건을 두고 그냥 떠나갈 그녀가 아니라고, 아무리 이렇게 모든 결과가 허위에 불과하다고 자위해 봤자, 내 살갗에 남은 청첩장의 감촉은 절대 무뎌질 수 없었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부정하고 외면하고 과거로 돌이키려고 해도 오히려 더 선명한 실존의 숙제로 다가왔달까. 그래, 그냥 인정하는 길뿐이다. 읽지 말자, 그냥 지우자, 지우개로 벅벅 지워버리자, 차라리 지워 버리자, 조각조각... 그런 행위라면 글자든 기억이든 아무리 멋진 작품이라 할지 다로 지극히 사소한 것으로 간주시킬 수 있으리라.
결국, 나는 청첩장에 현혹되고 만다. 그것을 들고 눈으로 혹은 몸으로 읽는다. 그녀는 나에게 또박또박 흐트러짐 없이 말하고 있다. 뉴욕, 센트럴파크, 몇 월 며칠, 그리고 시간까지. 그녀는 소식을 알리고 있다. 청첩장이라는 그녀만의 작품을 통해 나에게서 탈출에 성공했다는 자신감을 피력하고 있다. 나의 직관력으로는 무엇을 느끼고 깨달아야 할지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이 사실을 단순한 정보의 형태로서 이해하면 되는 걸까. 그녀의 이 간악한 계략, 간계, 정보는 무엇으로 해석이 될까. 설마, 내가 이 청첩장을 들고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축하의 인사를 내밀거나, 한 송이의 라일락 꽃이라도 선사했을 거라 기대했던 걸까, 그녀는? 대체?
나는 배신의 최고봉을 맛본 기분이었다. 청첩장을 찢어버리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나는 그것을 원자 단위까지 분해하여 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그러니까 빅뱅과 함께 시작된 순수한 원자의 세계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내 머릿속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 그녀와 한때 보람된 시절을 보냈던 기억, 그녀와 꿈꾸었던 과거를 그렸던 그때의 기억으로 돌아가, 하나도 빠짐없이 그것들을 소환한 다음, 모조리 불태우고 양자화시킬 수만 있다면…
청첩장은 나의 패망과 굴욕을 상징했다. 은유로서의 소임. 거대한 메타포로서의 기능을 기대했다면 그녀의 바람은 성취되었다. 나는 파멸 직전, 모멸감의 끝을 맛보는 중이었으니까, 내가 어떻게 했을 거라고 당신은 생각하고 있나? 그래, 나는 어리석게도 뉴욕으로 향하는 항공권을 발권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존재를 저주하고 한 손끝으로는 복수를 꾀하는, 정신과 행동이 따로 노는 그런 기묘한 순간을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