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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별

단편 소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그는 그만 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물론 그가 별을 소유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건 낭설에 불과하다. 그가 떠올리는 별에 대한 상상 모두는 역사적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다만 그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게 전부다. 그래서 그는 미치게 괴로웠다. 잃어버렸으나 소유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 그를 절망적인 슬픔에 빠지게 방치했다.


그는 5분 전처럼 똑같이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나 별은 그곳에 없었다. 아니 없다는 것보다는 점점 달아나고 있다. 여전히 상실된 상태 그대로. 구름 뒤에도 노란 달 뒤편에도 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별을 찾아서 강원도 인제 끝 서화리라는 곳까지 찾아왔다. 직접 그의 3022년식 지프를 몰고 산을 넘고 터널을 통과해서 그리고 끝이 없는 장대교량을 거쳐서. 회사에는 마지막 남은 연차까지 소진하고 차가운 밤공기를 약수 대신 마셔가며 찾아왔더랬다. 그러나 거짓 정보였다. 제보한 사람은 부끄러운지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하지만 그는 추적을 포기했다.


하늘은 높은 곳에 가만히 누워서 검은색의 광채를 띠었고 검은 날개를 단 그림자들이 날갯짓을 치며, 암흑을 수놓고 다녔다. 별은 이미 1세기 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별은 역사로만 존재하게 됐다. 별이 사라졌으니 인간은 이제 꿈을 꾸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어린 왕자도, 레이 브래디버리의 별을 꿈꾼 소년도 없다. 우리 모두는 어른이다. 다 그런 것이다.


그는 직경 50센티미터의 망원경을 배낭에서 꺼내 들곤 안드로메다 성운 쪽으로 그것을 조심스럽게 펼쳐놓았다. 아픈 주사를 안 아프게 놓는 숙련된 내과의사처럼 하늘에 구석구석 뾰족한 것을 체계적으로 찔러댔다. 하지만 하늘에선 배고픈 자의 허기만이, 공허한 메아리만이, 거대한 대포가 지나간 후에 찾아온 안타까운 정적만이 서럽게 되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지프에서 오래되고 낡은 오크나무로 만든 보석함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붉은 씰로 1세기가 넘게 봉인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개봉을, 끝끝내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는 아끼고 보살피던 보석함에서 씰을 제거하고 자그만 열쇠를 호주머니에서 꺼내곤 구멍에 끼워 넣고 돌렸다. 끼익, 푸슝 하고 마치 튜브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마치 짐승이 숨을 오랫동안 참다가 낮고 기다랗게 숨을 토해내고 세상을 향해서 마지막으로 포효하는 것처럼…


그는 보석함에 코를 지긋이 대고 냄새를 맡았다. 고대의 유적지에 담긴,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된 것 같은 그런 유황과 안료가 섞인 먼지 냄새가 피어 올라왔다. 편안했다. 증오가 가득한 세상, 별의 추억이 사라진, 알퐁스 도테마저 영영 잊힌 그런 엄혹한 시대에서 그는 과거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눈을 감고 그는 냄새에게 몰두했다. 냄새는 고향이었고 애처로움의 상징이었으며 꿈을 간직한 옛 가수의 정겨운 무대였다. 그렇다, 냄새는 별의 기억을 품고 있었다.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그런 아스라한 추억 같은 것들을.


먼 과거, 그들의 선조는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의 후예들은 별이 있으나 별이 없는 밤을 살게 될 거라고, 존재하지만 그리워만 할 수 있는 그런 폐허와 같은 세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각자를 그리워하며 살게 될 거라고." 존재했다는 사실을 이미 잃어버린 시대에게 구원은 없다. 우린 꿈을 꿀 자격이 없다.


하지만 과학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적으로 그리고 범우주적으로 진보했다. 다만 인간의 감수성이 그만큼 퇴보했다는 게 문제였지만… 마치 스마트폰을 접는 폴딩 기술처럼 먼 조상의 후예들은 과거에서 착상된 아이디어를 통해 우주를 접는 기술을 개발했다. 어디든 원하는 두 곳을 설정해놓고 그 중간쯤을 계산해서 접으면 그만이었다. 그런 획기적이며 간단한 기술 덕분에 시속 30만 킬로미터로 팽창되는 우주의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고개를 들고 동경하던 것을 넘어서 그곳까지 순식간에 닿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제는 어두운 밤에, 나 홀로 산기슭에 자리를 잡아놓고 50센티미터 구경의 우주망원경을 말 없는 우주를 향해 배치해놓지 않아도 우린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과 아주 먼 별 너머의 생명체들과 교신할 수 있었다. 그 가까운 만남이라는 것은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낭만이 사라진 세상,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나들던 우리 선조의 개척 정신, 저먼 우주 별 어딘가에 B612를 향해서, 그들을 바라보고 또 그들이 우리를 관찰한다는 설정은 더 이상 따뜻한 이야기로 남지 않게 되었다. 모든 건 동화 속의 이야기일 뿐. 하나, 이제 아무도 동화를 읽지 않는다. 동화는 언제든 실현 가능한 테크놀로지, 거의 절대적인 신적인 능력, 저 파괴적인 태양의 완벽한 제어까지, 진보라는 가치에 흡수되었다. 우리는 무엇이든 파멸시키고 생성할 수 있는 기술력을 획득하게 되었으니…


별이 없는 시대에 그는 별을 동경하며 별의 자취를 더듬으며 여전히 살고 있다. 소원을 빌어줄 저 먼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의 애달픈 사랑이 담긴 거문고자리며, 헤라클레스에게 밟혀 죽은 게자리며 등대 없어도 능히 길을 찾아가게 도와주는 정답던 우리의 별자리는 이제 이 검은 하늘에서 영영 찾아볼 수 없다. 그리하여 바라고 바라볼수록 더 검은 그을림만 그곳에 새겨질 뿐이다.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사랑, 바라볼수록 멀어져만 가는 사랑에게 무릎을 꿇고 영혼을 애무했던 옛 기억 들은 점점 더 시야에서 물러나는 중이다.


그는 보석함을 암흑뿐인 세상 가운데 내려놓았다. 이제 냄새는 거의 사라졌다. 그 냄새를 기억하려고 애써봐도 도무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아득히 먼 곳으로,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달아나는 별들과 함께 나란히 평행선을 그리며 여행 중이었을지도.


그는 한 손을 저었다. 별자리들이 오랫동안 거쳐왔을 흔적을 손가락으로 그려가며, 그렇게 별자리들을 더듬었다. 그는 봉사가 된 기분이었다. 눈뜬 봉사, 단지 저기에 있었을, 1세기 전의 기억을 억지로 되감아내듯 그렇게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우주를 관장하려 했다. 노련한 몸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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