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방황

평범한 개발자의 독립 일대기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남자가 사라지자, 나도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남자처럼 요란스러운 장비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보다 동작이 훨씬 굼뜨고 느렸다. 어쩌면 나는 이미 무거운 장비 따위들을 몸에 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이 때로 보이는 것들보다 더 무게가 나간다.


일단 스타벅스에서 탈출하긴 했는데, 딱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의식 없이, 목적 없이 구천을 배회하는 원혼처럼 여기저기를 떠돌고 싶었다. 일단, 르네상스 사거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압구정동까지 터벅터벅 걸어보기로 했다. 왜 압구정동까지 걸어가야 하는지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여기에서 거기까지 직선이었기 때문에, 지름길을 찾아야 하는 수고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 옆길로 새는 것보다는 덜 고단할 것이라는 어떤 낙관적 전망에 동화되어 간 것이다.


몇 번 언덕을 넘고 몇 번의 사거리를 지나쳐 압구정역 주변에 도착했다. 분명히 직선이었고 시간상으로 따지면 1시간 내외가 소요되어야 마땅하지만, 나는 의도대로 직진하지 못했다. 가다가 나도 모르게 옆길로 빠져들어서 부자들이 사는 언덕 높고 담장도 지나치게 높은 골목길을 지나다녔다.


시간을 보니 거의 3시간이 지났다. 3시간 동안 나는 강남 일대의 주택가와 넓고 좁은 골목길을 누비고 다녔지만 머릿속에 남은 게 하나도 없어서 나는 마치 진공 속을 걸어 다닌 기분이었다. 지금 현재 텅 비어 있는 내 삶처럼 나는 어딘가에 좌초하고 있었으며, 끊임없는 방황의 수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구체적으로 방향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지극히 우뇌적이고 즉흥적이며 직관적인 감성을 지닌 인물로서, 목적을 미리 세워두고 그것에 따라 충실하게 삶의 추상적인 것들을 구체화시키는 형태, 즉 충분히 예측이 되는 전형적인 생활을 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내 본성이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철학이자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그 삶의 방식을 무시당했다. 녀석은 나를 고의적으로 유린하려 했다. 단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목에 내가 서 있었다는 거 자체로 나는 장애물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 나는 녀석의 의도된 행위대로 그 길목에서 치워졌다. 그저 빗자루질 한 방에 나는 길에서 원래 없던 존재가 된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자정을 넘어선 모양이었다. 그런 시간 따위는 원래 나의 의사 없이 제멋대로 흘러간다.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러니 나는 시간 따위를 붙들려할 의지도 그것에 예속될 의사도 없다. 어디로 가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가면 되는 것이다.


성수대교 남단 쪽으로 방향을 서서히 틀었다. 어느 순간 나는 내 운명에서 다소 멀어진 기분이 들었다. 분명 내가 나를 통제하고 있는 걸까. 삶은 이렇게 불확실한 것으로 계속 변화의 탈피를 벗고 있는데, 나는 그 흐름에 맞게 적응은 하고 있는 걸까. 삶이 나를 통제하는 걸까. 내가 삶을 통제하는 걸까. 이렇게 성수대교를 오로지 내 힘만으로 건너가려는 행위엔 의도된 그 연출이 존재할까, 단순한 변칙성에 불과할까.


나는 성수대교 남단에 올라 좁은 난간을 옆에 끼고 걸었다. 자정이 넘은 한강은 참으로 침착해 보였으나 잔잔함 밑에는 어떤 난폭한 고요가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 등을 살짝 건들면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 온갖 짜증을 부려대는 분노에 찬 사내처럼, 한강은 내 발밑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지만 언제든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두가 폭풍 속의 전야제 속에 숨어 있었다.


그렇게 잔잔하게 잠들어버린 한강 위의 수면을 바라보다, 또 왼쪽으로 맹렬하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오고 가는 폭력적인 흐름을 지켜보며 우두커니 앞쪽으로 걷다가, 몇 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인간의 형체를 목격했다. 그 사람은 난간에 허리를 바짝 들이대고 허리를 난간 위에 포갠 채, 마치 시소처럼 위태로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몸을 앞으로 때로 뒤로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에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 사람의 오른쪽 얼굴은 대충 어떤 표정을 지을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 표정이란 것에는 어떤 목적성, 그러니까 삶의 의미 같은 소중한 것이 완벽하게 소거된 상태였다. 사람의 실루엣이 분명하지만 어쩌면 허깨비라고 정의할 수도, 혹은 사람이지만 곧 사람이 아닌 형상으로 변해갈 그 무엇의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위태롭게 흔들흔들거리다 그 사람은 그대로 강물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시소의 균형은 에너지가 줄어들수록 안정화된다. 에너지가 더 가열될수록 시소는 균형을 잃고 더 심각하게 에너지가 집중되면 지지대를 무너뜨리고 몰락을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그 인간의 에너지는 몰락을 알면서도 그쪽으로 폭주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한강의 검은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뤄진 일이었다. 한강 다리를 건너가다 무심하게 걸음을 멈추곤, 어떤 희망적인 생각에 가슴이 부푼 나머지, 흘러가는 강물을 감격스럽게 구경하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흔히 목격되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에 나는 목격자 혹은 조연이 되고 어떤 사람은 주연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한강의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주위는 지나치게 적막했다. 더 큰 규모의 고요가 더 작은 고요를 삼켜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강물의 일렁임조차 없었다. 작은 소용돌이도 일지 않았다. 다이빙 선수가 완벽한 자세로 수면 아래로 조용히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그 사람도 존재감을 어느 순간 놓아버린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인간이란 건 어느 순간 쉽게 내가 존재하던 세상과 이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새삼 직감했다. 생과 사가 한 순간에 결정된다는 것, 그것을 타의적인 게 아니라 자의적인 것으로 결정짓는 중대한 행위가, 인간이 내릴 수 있는 궁극적인 선택에 있어서 가장 유효한 것이 아닌가 싶은…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난간에 쓰여 있는 긴급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여기 성수대교 북단 어디선가, 어떤 사람이 한강에 뛰어들었다고 신고했다. 신고받은 사람은 일단 허위신고인지 판단했고 한강에서 매일 뛰어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려고만 했다. 죽음이란 이렇게 매일 벌어지는 일일 행사 같은 것인가.




"신고하시는 분 인적 사항 간단하게 불러주시겠습니까?" 그는 내 신분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그러니까 허위 신고가 아닌지 형식적인 절차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매뉴얼대로 행동했던 것이다. 나는 누구누구라고 어느 정도까지 자세히 설명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름과 나이와 같은 누가 알아도 상관없는 그런 의미 없는 것들을 불러줬다. 그는 "감사합니다. 곧 관계자가 출동할 겁니다.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성수 대교 중간쯤에 서서 내가 정말로 실제상황을 목격한 것인지 내 머릿속을 다시 한번 정돈했다. 나는 '어떤 기이한 환영이 비춘 미러 같은 정보를 잠시 엿본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본 것은 과거 어느 순간, 난간 어딘가에 각인된 잔상이 아주 우연하게 영사기에서 재상영된 것처럼, 그렇게 분사된 형태가 아니었을까.' 라고.


그 환영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장면적 우연에 불과했을까. 나도 낯선 그 혹은 그녀처럼 똑같은 방식의 미래가 주어질 거라는 어떤 필연적인, 혹은 비관적인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있다고 그 파도에 순응하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 같은 것이었을까.


한강은 역시 유유히 그리고 마치 수면 상태에 접어든 거인처럼 커다란 숨을 가다듬더니 조심스럽게 흘렀다. 아니 어쩌면 시간은 정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리라. 나는 오래도록 고개를 처박고 난간 끝에 지탱해서 역사의 짧은 페이지 같은 것을 지켜봤다.


그때 순찰차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혹시 이곳에서 자살을 목격했다고 신고하신 분인가요?”그는 앞창을 반만 내린 채로 물어봤다. 그리고 불안한 눈으로 혹시 내가 미리 신고하고 한강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아닌지 의심하는 태도로 의미 없는 질문들을 계속 던졌다.


“이 시간에 한강을 건너가는 사람은 드문 편이죠. 보통 이 시간이라면 한강은 분명한 목적성을 지니기 마련이거든요.” 라고. 나는 그런 불행한 목적 따위는 애초에 설정해 두지 않았다. 나는 물론 변칙적인 상황을 선호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방금 목격한 그런 사건을 반긴다는 건 아니다.


순찰차에서 경찰 한 명이 내렸다. 그의 오른쪽 허리에는 권총이 달린 지갑이 두툼하게 걸쳐져 있었다. 그 경찰은 자신의 허리에 각별한 신경을 쓰며 난간 옆 그러니까 내가 서 있는 곳에까지 다소 주춤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이런 날, 특히 밤안개가 낮게 깔리는 날은 더 인명사고가 잦은 편이에요. 사람들이 기분 나쁜 선택을 즉흥적으로 하는 편이라는 거죠. 늘 순찰을 돌긴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고가 터진다니까요.” 그는 늘 긴장 속에 산다고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오늘 같은 날은 오늘이 아니어도 언제나 있겠죠. 이유야 언제나 적당하게 갖다 붙이고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실행하면 그뿐이니까요. 나는 내 정신을 어딘가에 유배당하고 출타한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은 시꺼먼 강물 아래쪽은 애써 외면하며, 이곳에 떨어진다면 도저히 수영으로는 헤어 나올 가망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리곤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실눈으로 강물을 쳐다봤다.


“신고가 들어갔으니 해난 구조대가 곧 출동할 겁니다. 하지만 그 사람을 산 채로 발견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하류로 떠밀려와서 운 좋게 찾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저 아래 수초에 발이 붙들려 더 깊은 바닥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비참한 결말이죠. 죽고 나서도 발견되지 않을 확률이 0%에 수렴하니까요. 결국 신원불상, 죽더라도 그 죽음을 증거 할 방법이 전혀 없는 셈이 됩니다. 불행한 죽음, 불행한 결말이죠.” 경찰은 그런 죽음을 무수하게 자주 겪어봤다는 투로 억양 없이 말했다.


“그렇군요. 저는 그럼 갈길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경찰은 “혹시 선생님도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건 아니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 시간에 한강을 도보로 건너가는 사람은 특별한 목적이 없는 경우는 없는 편이거든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렇게 강한 심장을 소유한 인간도 아니고, 수초에 발이 묶이고 싶은 심정도 아니거든요. 게다가 비참하게 고기밥이 되고 싶지도 않고요. 저는 그만 이만…”


나는 단문을 경찰에게 남기고 길을 떠났다. 걸어가면서도 속으로 한강으로 몸을 던진 사람이 상상 내의 일인지 아니면 상상 바깥에서 발생한 일인지 의심이 들었다. 요즘 들어서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지속적으로 내 경계 바깥에서 안 쪽으로 파고들고 있다. 김대리는 내 삶을 무너뜨렸고 그 일 때문에 오늘만 하더라도 나는 녀석(김대리)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서 한동안 그의 집을 조사라도 하듯이 이리저리 들추고 다녔다. 그리고 김대리와 믿었던 길박사의 은밀한 협력까지 듣고 말았다.


믿을만한 사람이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직 나만이 믿을 대상인데, 내가 보고 느끼는 것까지 과연 진실된 것인지 믿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온통 의혹투성이가 아닌가.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입력되어서 그랬을까.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다리 한가운데에는 버스 정류장도 없고 택시를 불러 세울 수도 없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저 끝쪽을 향해서 무던하게 걸어가는 일뿐이다.


성수대교 북단쯤 도착했을 때, 강렬한 바람이 상류 쪽에서 불어왔다. 나는 바람에 쓸려 날아가는 존재감을 상실한 나뭇잎처럼 맥아리 없이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삶은 이어져야 한다. 힘없이 누군가의 외압에 피폭당하고 살아갈 의지를 상실하더라도, 또한 방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꾸준하게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일 테니.


한강을 오로지 다리에 의지해서 건너고 다시 자양동까지 걸어갔다. 자양동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쯤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혹시 누군가 내 집에 침입이라고 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어, 손잡이를 괜히 좌우로 흔들어봤다. 어쩌면 김대리가 내 거실에 앉아서 두 눈을 부릅뜨고 나의 도착을 학수고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방어태세에 대해 생각하면서 만에 하나라도 김대리가 안쪽에서 튀어나올 경우, 그것을 막아내려면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좋을지 잠시 상상해봤다. 하지만 문을 돌렸을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형국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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