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만남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나는 티켓에 적힌 숫자를 수십 번은 확인하곤, 버스 통로를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방황 끝에 찾은 내 자리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뻔뻔하게 앉아 있었다. 검은색 안경을 쓴 젊은 여자는 안경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꺼풀까지 굳게 닫아버리고, 사실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검은색 안경 뒤로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젊고 꽤 미인일 거라고 추측되는 그 여자는 머리를 좌석 시트에 기대고 눈은 감고 시선은 창밖에 던져둔 채, 자신의 만행을 다소곳하게 정당화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잠을 자는 것인지 심각한 사유에 빠져 있는 것인지 그 여자의 시공간을 방해하는 기분이 들어서 여자에게 말도 걸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그만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아버렸다. 그리곤 주변에 널린 언짢은 공기를 치워버리기 위해,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노트북을 꺼내곤 전원을 연결할만한 구석을(콘센트) 찾아봤지만, 단 한 가지도 그럴만한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했다. 하지만 그것도 곧바로 수긍해야 했다. 남해 끝단으로 떠나는 버스가 아닌가. 그리고 80년 대적인 풍경이 차랑거리는 공간이 아닌가. 현대적인 문명은 이곳에서 오직 기능적인 가능성만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 내가 앉은 이곳으로 걸어와 ‘이 자리는 내 자리입니다. 제발 저리로 꺼져주세요. 당신 자리를 찾아 떠나세요’라고 클레임을 걸어도, 나는 아무런 군말 없이 이곳에서 쫓겨나야 할 처지가 아닌가. 결국 내 자리에 앉은 저 여자는 계속 평화로운 인간으로 남아있을 테고, 나는 내 자리에서 늘 쫓겨 다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김대리에게 배신당한 것처럼 내 운명은 언제나 그런 얄궂은 흐름이다.


그때 갑자기 옆자리에서 그 여자가 뜬금없이 고개를 획 돌리더니 검은 안경을 코 밑으로 살짝 밀어내곤 “미안해요”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네?” 라고 아주 짧았지만 영문을 모를 그러니까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시그널을 그 여자에게 보냈다. 그 여자를 가만히 관찰해보니 꽤 미인이다. 아니 꽤 정도가 아니라 지나가는 남자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눈길을 던질만한 그런 예쁜 여자다. 그 젊고 예쁜 여자는 “아까 키오스크에서 순서를 제가 가로챘잖아요. 미안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이 젊고 예쁜 여자가 내 자리를 빼앗은 행위에 대해 사과하려는 것으로 짐작했으나, 그곳엔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포괄적인 의도가 숨어있었다.


젊고 예쁜 여자와 나는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나중엔 결국 연인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기막힌 우연의 작용으로 재회를 하게 됐다. 우리는 소설가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그저 우연이라는 단어로 우리의 만남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전형적인 소설적인 만남이었다.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그런 순서적인 것들이야 가끔 생략될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우리 뒤엔 아무도 없었고, 제가 신세를 지은 부분도 있었으니까요.” 내가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자, 그 젊고 예쁜 여자는 “네? 어떤 신세를요?”라고 동그랗게 커져버린 눈과 뾰족하게 말려버린 입술로 말했고 나는 다시,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개념적으로요.” 라고 많은 것들이 감춰진 모호한 문장으로 대답했다.


“시적인 거네요. 많은 부분들이 생략되어 있거나 진실은 때로 거짓으로 포장되죠. 시인이신가 봅니다.” 젊고 예쁜 여자가 호기심을 품은 말로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저는 시인이 아니에요. 시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시를 쓰겠다고 사과 하나를 쟁반 위에 올려놓고 몇 시간 이상 관찰해본 적도 없어요. 안도현 시인의 시를 낭독해본 경험은 있지만, 그것도 오래전 교양과목 시 쓰기 시간에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낭독해본 게 전부죠. 저에겐 시인이라는 가능성이 단 1%도 내재되어 있지 않아요” “그런가요? 저는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삶엔 많은 분들이 가려져 있고 그것들은 언젠가 자신의 진가를 시라는 형태로 가열되죠. 지금은 지극히 작은 마침표에 불과할지라도 그게 얼마나 큰 느낌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시가 가진 가능성을 참 좋아해요.”


“네. 시인님의 이론 잘 들었어요. 근데 그건 그렇고 티켓 혹시 14번 이신가요?” 라고 내가 묻자, “아 제 거요? 맞아요 저 14번이에요. 왜요? 제가 14번인 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젊고 예쁜 여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말했다. 나는 “제 번호는 13번이고요. 제 자리를 탐욕스럽게 차지하고 계셔서요.” 나는 감춰둔 진실을 고백하는 사람이지만 감정은 다소 억누른 채로, 최대한 유머스럽게 젊고 예쁜 여자에게 말했다.


“아. 저는 14번이 창가인 줄 알았어요. 이거 또 미안하다고 말씀드려야겠네요. 자리를 바꿔드릴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진실이 밝혀졌으니…” “네 뭐라고요? 진실?” “아닙니다. 저 혼잣말입니다.” 단문으로 여러 말을 젊고 예쁜 여자와 주고받다가, 우린 다시 어색한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80년 대적인 깐깐하고 촌스러운 침묵이었다. 길고도 긴, 기약 없이 먼 여행을 떠나는, 혹은 어디론가 도피를 선택한 불륜의 남녀 주인공처럼 우린 말을 생략하고 오직 정면을 바라본 채 침만 꿀꺽 삼켰다.


버스는 어느새 고속도로에 진입했고 그 속에서 존재감 없이 한가로운 오후의 독수리처럼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양쪽으로 자동차들이 부지런하게 제한속도를 넘어서곤 했는데, 그것은 흡사 자신의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려는 나름의 강렬한 메시지의 한 형태였다. 끝없이 새로운 마을들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전신주와 빨간 벽돌로 만든 주택들과 논과 밭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수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성격이 급한 동화 속의 마귀할멈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며 빨리 감기를 돌리듯 다시 생명이 태어났다가 급속하게 꺼지는 패턴이 반복됐다.


나는 조금 멀리 앉아서 그러니까 편안하게 앉아서 삶이 태어나고 무너지는 걸 관망했다. 안전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세계의 몰락을 구경하는 관찰자가 된듯했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사라지는 것들의 연속적인 상영뿐이었다. 그래서 삶에는 몰락이 대세인가 라고 나는 질문을 던져봤지만, 대답은 정의 내리기 곤란했다. 오직 질문만 존재하고 대답은 저세상에서나 찾을 수 있으려나.


지루한 나머지, 나는 노트북을 꺼내곤 넷플릭스에 접속하려 했다. 와이파이, 그래 나에게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리고 촘촘한 연결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구현할 수 없다. 연결이 되어야 나는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는 80년 대적인 시시한 풍경뿐이다. 목가적이고 평화롭지만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냉철한 공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교차되어 있고 불규칙적으로 들쭉날쭉 편집된다. 그래서 나는 연결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넷플릭스를 켜고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틀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양쪽 귀에 끼고 조용하게 영화에 빠져들려고 했다. 그런데 옆 자리에 앉은 젊고 예쁜 여자가 계속 신경 쓰였다. 좀비가 튀어나올 때마다, 그러니까 다소 역겹고 잔혹한 살인 장면, 인간이 인간 자신을 먹어치우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는 경악스러워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지독하게 그런 장면에 중독됐고 적응해버린 탓이었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여자(이제 젊고 예쁜, 이라는 수식은 사용하지 않기로 한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화면에 나오는 좀비의 행동과 특성을 분석했다. 좀비의 행동 패턴은 언제나 내 예측에서 한치의 틈도 벗어나지 않는다. 늘 길모퉁이 끝에 식인 본능을 감추고 있다가, '기다려봐, 놀라게 할 거야, 그럴 거야, 이제 화들짝 놀라가 될 거야',라고 숨을 몰아쉬다가 결국 불쑥 튀어나오거나, 혹은 자동차 뒷자리에 몰래 누워있다가 보조석 쪽으로 시뻘겋게 충혈된 두 눈과 피맛을 잔뜩 본 혀, 그리고 온통 충치로 뒤덮여버린 이빨을 쑥 내밀어버린다. 그게 아니면 작은 방 침대 밑에 엎드려 있다가 잠시 낮잠이라도 즐기려는 주인공을 낚아채며 휴식을 방해해 버린다. 좀비란 그런 존재다.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는, 말하자면 그 세계에서는 나름 강력한 돌발 변수인 그 무엇.


“앗, 아악!” 나는 그만 옆자리에서 터져 나온 다급한 비명소리에 심각하게 놀란 나머지 엉덩이에 붙은 허벅지를 들썩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소리의 진앙지는 다행히도 내가 아니었다. 망신살 뻗칠 뻔한 것이다. 그 충격으로 노트북이 거의 바닥에 추락할 뻔했지만, 다행히 그런 사건은 멀쩡한 양팔과 나의 노련한 대응력 덕분에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가슴을 잠시 쓸어내리며 좀비가 튀어나오는 장면보다 더 심각한 충격을 입힌 대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사건의 발생 원인은 옆자리 티켓 14번에게 있었다. 예쁜 얼굴은 모든 걸 용서하나 보다.


14번 티켓을 든 여자는 아마도 아까부터 내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나 보다. 음, 한국 사람은 역시 좀비 영화를 즐기는 게 분명하다. 14번 티켓을 든 여자도 그러한 유형에서 결국 어긋나지 않는 걸까?


“대체 그런 좀비 영화는 왜 보는 거예요?” 그 여자는 이렇게 또박또박하게 그리고 그 말속엔 조심스러운 염려와 걱정거리를 잔뜩 버무려놓은 투로, 마치 식당에서 기다리는 음식이 대체 언제 나오냐고 짜증 내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 좀비 영화를 보고 안 보고는 개인의 취향과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옆자리 당신, 14번 티켓을 든 여자는 버스 티켓을 구매했지 현재 상영 중인 내 영화의 티켓을 구매한 사실이 없다. 이건 저작권적인 문제가 아닌가. 그저 내 자리였어야 하는 자리에 앉아서 단지 내 옆자리라는 이유만으로 남의 노트북 화면을 훔쳐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무섭다고요. 다른 영화 보면 안 돼요?” 14번 티켓을 든 여자는 조금 더 앞쪽으로 전진하고 있다. 허락도 없이 남의 부지에 진입해놓고 이제는 그 위에 놓인 소유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참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 안의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쪽의 질문에 대해 답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아까처럼 조용히 눈을 감고 계시든지, 몰래 보시는 건 제가 말릴 수 없는 상황이나, 관심은 좀 꺼두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내가 나름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여자는 어떤 말을 하려다가 “그래도 그건 좀. 제가 좀비 영화를 워낙 싫어해서요” “그렇습니까? 댁이 좀비 영화를 혐오하니까 저는 여기 댁의 옆자리에 앉은 잘못으로 좀비 영화 따위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형편이 된 셈이로군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나는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할 필요까지 있겠어’라는 생각 때문에 “딱히 볼 만한 게 없어서요”라고 자신 없게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는 “노트북 이리 줘봐요”라고 말하며 내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트북을 강탈해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 소유물이 분명했던 것이 어떤 불손한 의도로 잠시 옆 집으로 별안간 소유권이 이전되어버리는 상황과 엇비슷해다. 나는 저것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내가 볼만한 것들을 좀 찾아볼게요. 기다려봐요.”라고 여자는 말했다. 그리고 하얗고 투명한 손을 내 귀로 뻗어 얌전히 귓속에 감춰져 있던 이어폰 한 개를 쓱 뽑더니 그대로 뺏어가 버리고 말았다. "잠시 빌려갈게요" 두 번째 강탈이었다. 모든 일이 단숨에 숨 쉴 틈도 없이 벌어졌다. 좀비가 튀어나오는 상황은 얼마든지 예측이 가능했으나, 지금 옆 자리에 앉은 14번 티켓을 든 여자가 행동하는 패턴은 예상 범주 바깥에 속하는 일종의 강력 범죄류의 사건이었다. 나는 이런 긴급한 사건에 대해 어떤 반응을 펼쳐야 할지 예측하지 못한다. 그저 얼음처럼 경직된 채로 상대방에게 모든 걸 맡기는 수밖에.


“혹시 우리들의 블루스 보셨어요? 넷플릭스에 있지 않나요? 노희경 작가 각본이라잖아요?” “드라마는 잘 안 봅니다.”라고 내가 단조롭게 대답했다. “드라마를 잘 안 본다고요? 왜요? 무슨 이유 때문에 드라마를 안 봐요? 혹시 나의 아저씨도 그럼 안 봤어요? 분명 안 봤다고 그리고 볼 생각도 없다고 퉁명스럽게 얘기하겠죠? 원래 그렇게 불만이 가득한 사람처럼 말하는 편이에요?”


나는 원래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의도적인 공작에 뜻하지 않게 휘말려버린 바람에 내 인생이 갑자기 뒤틀어져버렸다고, 그 사건 탓에 내가 이런 욕구불만 투성이의 인간으로 변신하고 말았다고 실토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 앞에서 내 인생에 대해 이렇고 저렇다 토로해봤자 무슨 소용이랴.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여자 앞에서는 솔직해져야만 할 것 같았다. 왜 그래야 했을까? 그 여자와 나 사이에는 어떤 필연적인 막장의 기류라도 조심조심 흘러가는 걸까? 심상찮은 그리고 예고 없는 변주가 시작되려 한다. 3막의 연극 중에서 이제 막 1막이 열리고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댐을 손으로 막아 네덜란드를 구한 소년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부피를 확장해나가는 불길한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절대 한치의 틈이라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나는 완벽하게 모든 변수들을 다루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나는 예측하지 못한 일상 바깥의 일들을 할 일 목록에 올려두고 당장은 처리 못하더라도 언젠가 그것을 봉합시키겠다는 외과 의사처럼 무엇이든 꿰매려 했다.


“이건 내 노트북이고 내 넷플릭스입니다. 선택은 오로시 나에게 있어요. 14번 티켓을 들고 당당하게 앉아 계신 당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소 못생겨 보이는 여자(그 순간 분명 그렇게 보였다)에게서 노트북을 돌려받고 다시 받침대 위에 단단하게 붙들어두었다. 그런데 넷플릭스도 좀비 영화도 내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맑은 날에 태풍이 찾아왔다가 홀연히 떠나가는 것처럼.... 내가 대체 어느 장면을 놓쳤고 어디까지 진행했는지 아무런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죄송해요”라고 여자가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가 너무 모기의 날갯짓만큼 들려서 거의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자의 표정과 난처한 손동작으로 판단했을 때, 분명 자신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 일종의 사과를 하려는 것이라고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뭐, 그게 사과까지 할 일인가요? 죄송해할 필요는 없습니다.”라고 말하자 그 여자는 기다렸다는 덧이 “그렇죠? 제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죠? 그렇다니까요. 좀비 영화는 그만보고 우리들의 블루스 같이 봐요 총 20편인데요. 혹시 어디까지 가세요?” “저요? 남해까지 갑니다만” “오! 그래요? 잘됐네요. 저도 남해까지 가는데, 그럼 적어도 5편은 볼 수 있겠어요. 우리 같이 봐요. 이런 드라마는 혼자 보는 것보다 나란히 같이 앉아서 보는 게 딱이라니까요. 여기 먹을 것도 있어요 여기 감자칩 드실래요? 이거 신상이래요. 통감자가 들어 있어서 살도 안 찌고요. 이거 맛있어요 하나 먹어봐요 자 아,”라고 말하며 내 입속에 칩 하나를 꽂아 넣고, 다시 한쪽 귀에 꽂은 내 블루투스 이어폰을 마치 자기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단히 귀에 고정해두는 것이다. 나는 강한 자석에 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고 말았다.




그러다 나는 내 노트북을 아예 여자 쪽으로 밀쳐버렸다. “이 노트북 가져요 가져. 당근에 팔던지 중고딩나라에 내놓든지 맘대로 해요. 저는 한숨 잘 거니까요. 우리들의 블루스인지, 환장 블루스인지 실컷 보세요.”라고 귀찮은 듯이 말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팔짱을 걸어두고 축축해진 등을 시트에 구겨 넣었다. 나는 잠을 잘 필요가 있었으니까.


눈을 감으니 최근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재생됐다. 먼저 한 달 전, 회사에서는 안이사에게 제안서 작업 지시를 받았으나, 태생적인 게으름 탓에 또한 제안서 작업 따위는 전혀 해보고 싶지 않아서 그 일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기한 내에 해내지 못했으며 친한 동료인 김대리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오히려 믿었던 그에게 배신을 당했다.


김대리는 내가 맡은 일을 남몰래 그리고 용의주도하게 백업이라고 가장하며 용의주도하게 작업을 펼쳐나갔으며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나와 연관을 맺고 있던 사람들을 포섭하고 그들도 따라 공범이 되었다. 나는 결과적으로 제안서 작업 프로젝트에서 고의적으로 배제되었고 그 실패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회사까지 그만둬야 했다.


그리고 김대리에게 복수하겠다고 우연히 그의 집에 침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나와야 했고 집에 돌아오는 길, 성수대교에서는 누군가 자살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파괴된 살림살이를 목격하며 절망했고 그 때문에 어디로든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


곧이어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해로 향하는 버스에 앉았고 옆자리에는 제멋대로 불쑥 나대는, 마치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옆구리를 찔러대는 젊고 예쁜 여자가 애인처럼 내 노트북을 차지하고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배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점점 닳고 있다.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 아닌가.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존재가 점점 타인의 것이 되어간다. 지금 그것이 내가 속해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주도권 싸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같이 봐요. 잠도 안 오면서 눈 감고 있는 척하지 말고요. 다 알아요. 지금 실눈 뜨고 이쪽 힐끔거리고 있죠?”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입술 표면이 지나치게 까끌거려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옳았을지도 모른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건 달라지진 않아요 세상은 우리가 관찰하건 그렇지 않건 똑같다고요.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아요? 오래전에 죽어있지만 동시에 살아있기도 한, 그 고양이 말이에요. 관심의 대상과는 상관없어요. 어쩌면 우리가 없어도 이 세상은 보란 듯이 잘 살아갈 거예요. 그러니까 현재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미래에서는 벌어질 만한 일들이 아무런 연관성을 갖지 않은 채 실행된다는 거예요.”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 관찰? 슈뢰딩거의 고양이? 관련이 없다? 이 여자 혹시 사이비 종교 단체에 몸담은 자가 아닐지 의심스럽다. 현재와 미래는 어떤 교각으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런 다리는 세상이 무수하게 많다. 쉽게 건설되고 쉽게 무너져 내린다. 그런 이야기는 나도 안다. 그렇다면 여자가 말한 것처럼 내 삶이 어느 순간 급격히 무너져 버린 것은 불가피하게 벌어진 어떤 필연적인 원인이라는 건가, 우연의 공작이라는 건가? 그 필연에 포함된 것들, 혹은 우연적인 순간들의 중첩, 거기에서 결여된 것들은 무엇일까. 그것을 해석할 능력이 나에게 있을까.


“저는 드라마를 즐겨 봐요, 왜냐고요? 삶은 밋밋하고 따분하니까요. 강바닥에 떠다니는 수초들의 생태계와 같죠. 이리로 저리로 의지 없이 떠다니기만 해요. 반면에 드라마에는 탱탱하고 쫀득한 삶이 녹아 있어요. 드라마는 삶을 모방한 예술이지만 우리의 삶을 능가하는 또 다른 세계의 삶이 있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런 말을 했죠 아마도? 삶은 예술보다 사실 더 드라마틱하고. 위대한 작가는 삶을 모방하고 우리는 작가를 모방하죠. 누굴 담기 위해서요? 작가를? 작가의 위대한 생애를? 작가가 모방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세계를?”


“하지만 예술과 삶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죠. 서로의 존재를 부정해도 어쩔 수 없이 연결된 원수지간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 예술과 삶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을 불살라가면서 그쪽에 있던 세계를 예술로 옮겨가려고 애썼죠. 어떤 예술가는 그것을 죽어서 구현했고 어떤 예술가는 어떤 지점에도 미치지 못하고 사라졌어요. 이 드라마는 어떤까요? 내가 지금 당신 노트북을 마치 내 것처럼 다루며 내 안방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드라마를 즐기고 있다면 이 행위는 예술에 해당될까요? 아니면 삶의 또 다른 치욕적인 연장에 불과할까요?”


“이런 어려운 이야기는 원한다면 태양의 열이 차갑게 식어버릴 때까지 지겹게 들려줄 수 있어요. 그러니 심각한 표정도 불만족스러운 자세도 모두 저리 치워버리고 옆으로 좀 가까이 와봐요. 이 드라마나 같이 보자니까요. 노희경이잖아요. 노희경의 드라마를 외면할 이유 백만 가지 이상을 댈 수 있으면, 당신을 용서해줄게요”


나는 그렇게 여자가 분위기를 조성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어떤 강력한 기운에 이끌려 여자 앞에 놓인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여자의 왼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밀착했다. 나는 이어폰으로 노트북의 소리보다 내 왼쪽에서 들려오는 고동소리에 더 예민해졌다. 이 여자와 나는 어쩌면 애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감각이.


내 귓속에선 여자의 목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드라마와 예술의 관계, 드라마를 만들었던 위대한 극작가들의 비참한 생애, 그들이 왜 비극에 그토록 삶을 불태워버렸는지 나는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내 삶은 지극히 드라마의 작은 장치이거나 1막과 3막 사이를 잠시 통과하는 소품 같은 거라고 생각하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비극들이 내 페이지에 기록될지 예측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생각만 들뿐이었다.


“연희라고 해요. 김연희.”

“저는 홍대리, 아, 민석이라고 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정보를 발설했다.


“저는 글을 쓰고 있어요. 아, 그렇다고 작가 뭐 그런 건 아니고요. 조그만 잡지 회사에서 기자일을 하고 있어요”

“……”


여자는 내 대답을 멀뚱하게 앉아서 듣고는 지우개로 슥슥 지우는 것 같은 눈치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저는 한 달 전까지 IT 회사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잘 나가는 개발자였지만 뜻하지 않는 변수가 생겨서 현재는 백수로 지내고 있답니다. 그런데 백수도 여의치 않아서 이렇게 목적 없는 여행을 등 떠밀리듯 선택하고 말았네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저는 코드를 쓰고 있어요”라고 나름 여자의 말에 라임을 붙여야 할 것 같아서 나름 형식을 갖춰서 말했지만, 오히려 그 표현이 여자의 기운을 빼놓은 건 아닐지 걱정이 들었다. “아 그래요? 개발자이신가 봅니다. 제 주변에 개발자 분들이 많아서 나름 친숙하긴 하네요.”라고 오히려 여자는 반갑게 되물었지만…


버스는 서울에서 출발한 지 어느덧 2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다. 지금쯤 버스는 아마도 대전 어디쯤을 동과 중인 것 같다. 창밖으로는 성급한 여름 바람이 기다림에 지쳤다는 듯, 커다란 기운이 감싼 채 막 움트려 하고 있다. 나는 막연한 기대감을 꽉 막혀버린 차창 바깥으로 띄워 보내고 싶었지만, 그런 감정은 현재 나에게 어울리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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