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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13. 2022

참호에서의 삶이란?

넷플릭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영화 한 편 감상하는데 보통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2시간이면 책은 보통 200페이지 내외를 읽는다. 소설책 한 권이 300페이지라고 가정한다면 온전히 책 한 권을 읽어낼 시간으로는 다소 역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약 1시간 가까이를 추가로 투자해야만 책 한 권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다.


소설과 영화가 다른 점은 시간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책은 참으로 수고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 모든 게 적극적이고 자의적이며 강한 결속력과 의지를 요구한다. 손으로 재질을 느끼고 종이의 냄새를 맡고 글자 하나하나를 차례차례 훑어내기까지, 어쩌면 들리지 않는 소리와 맛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독서의 힘인데, 영화는 그렇지 않은 편이다. 


그저 현란하게 지나가버리는 장면을 정신없이 지켜봐야 한다는 문제, 그런 동적인 면이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그것이 더 깊게 느끼고 사유하는 작용을 방해한다고 할까.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도 무엇을 느꼈는지 때로는 쉽게 잊는 경우가 많다. 뭔가 실컷 구경하긴 했는데, 어쩌면 실컷 도망 다녔는지, 누군가를 내내 추격했는지, 결국 내가 뭘 소비했는지 잘 모르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분명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소진되긴 했는데…


그럼에도 영화만이 가능한 세계가 있다. 책이 여러 장을 걸쳐서 묘사해야 겨우 연출이 가능한 부분을 영화에서는 장면 하나만으로 그걸 극복해낼 수 있다. 연출력의 힘이다. 그래서 가끔은 느린 독서를 지향하면서도 시각적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다만 중독되지 않기 위해 아주 가끔만 즐기는 편이다. 책 읽는 시간까지 뺏길까 봐 영화는 최대한 자제하자고.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이 영화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 통 접속하지 않던 넷플릭스를 찾아가서 고민하지 않고 재생 버튼을 클릭. 2시간 30분이 휙 지나갔다. 무엇을 봤을까? 그래, 수없이 많은 죽음들, 의미 없이 죽어간 젊은 생명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봤다. 참호, 진흙, 대포, 탱크, 라이플, 시체 그리고 시체 수백, 수천 구의 말 없는 시체들. 나는 관찰자 혹은 구경꾼에 불과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만 3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호 하나를 두고 양측이 의미 없는 전진과 후퇴 끝에,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라의 명예를 위해 전선에 투입된 젊음이 단 총알 한 방에, 포화에, 기관총 연발에 연거푸 쓰러져갔다. 심지어 휴전 15분을 앞두고 돌격 개시를 명령하는 미친 광기까지.


나는 전쟁영화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내가 폭력을 선호한다거나 파괴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다. 솔직히 변명처럼 들린다. 어쩌면 한 인간은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기 위해, 죽어간 몇 천만 명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전쟁영화를 보는 게 아닐까? 지금은 평화로운 시대다. 전쟁은 너무나 멀리 있어서 내 34인치 작은 스크린 내에서만 구현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현실과 이격 되어 있다. 나는 현실 바깥에 앉아서 과거의 기억 속으로 회고하지만, 나는 안전하다. 전쟁에 뛰어들어서 나라의 명예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허언을 떨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내가 안방에 안락하게 앉아서 넷플릭스 따위에 접속해서 볼만한 영화가 없을까, 뒤적거리다가 누군가가 추천한 영화를 따라가면서 갑자기 숭고한 죽음이니,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자신이 왜 전쟁에 참전했는지 이유조차 모르고 사라졌을 저 수백만의 주검을 기억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것이 전쟁을 막기 위해, 또 전쟁에서 사라져간 청춘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며, 미래의 또 다른 전쟁을 막을 방법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반인에 불과하고 현대는 전쟁과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서 넷플릭스가 추천한 콘텐츠나 좌우로 슬라이딩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닌가. 전쟁은 과거고 잊힌 목숨, 그들의 군번줄은 이미 땅속에 깊이 묻혀있을 테니.


영화가 끝나고 나는 교보문고에 접속했다. 1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 위해서. 몇 번의 클릭을 통해서 나는 또 누군가의 추천에 따라 '1차 세계대전사'라는 책을 찾았다. 왠지 그런 책이 한 권쯤 존재하겠지?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역시 누군가 깔끔하게 정리한 자료가 존재했다.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다른 어떤 책보다 우선순위 위쪽에 올려두었다. 그것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시청하고 나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쉽고도 의미 있는 행동, 말하자면 역사의 바통을 다음 세대로 이어나가기 위한, 작고도 비범한 행동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일요일 밤은 고요하게 저물어가고 있다. 내일은 월차를 냈다. 물론 영화의 충격 때문에 안정을 찾으려고 휴가를 낸 것은 아니다. 그저, 22년에 남은 연차를 소진하기 위해서, 단순한 그 이유가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태연하게 앉아서 좌측 모니터엔 넷플릭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화면을 띄워놓고 영화의 한 장면과 글을 교차해가면서 글을 쓰고 있다. 


글은 쓰고 싶을 때 쓰고 싫을 땐 관둔다. 전적으로 내 의지에 따르는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후기를 그럴듯하게 써야겠다는 욕심 같은 건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금세 사라질 감정 따위를 붙잡아두고 싶은 게 전부라고, 그것이 현재의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멍청하게 앉아있지 않고 이렇게 실행하라고 게으르고 태만한 나의 신병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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