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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남자 1

단편 소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내가 그 남자를 마주친 것은 자정이 넘은 무렵이었다. 그 시간에 나는 어디론가 목적 없이 떠도는 중이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은 그 시간이라면 당연히 그의 집, 널찍한 서재에 앉아 책을 읽거나 안방 침대에 얌전하게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일반적인 가정의 형태다. 하지만 나는 비극적이게도 그렇지 못했다. 나는 마치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자정만 되면, 단 1분도 잠들 수 없는 신분이 되어서 결국 저주받은 집에서 회피하려 했다. 오랜 불면증 탓에 불안감에 심각하게 도취된 나머지,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싶은 자살 충동에 휩싸이곤 하는데, 그것을 진정시킬 유일한 방법은 주차장에서 은색 그랜저를 끌고 어디로든 드라이브라도 나서는 것이었다.


그 행차엔 위에서 말했듯이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지극히 우연하고도 지독한 습관 따위에 속하는 측면이 거의 개입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그 몹쓸 행동, 시동을 걸고 기어를 올린 다음 액셀을 밟고 핸들로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도로를 달리는 것, 그 움직임은 경솔한 나의 자아가 저지를지도 모를 어떤 어리석은 짓으로부터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매일 반복하던 그 지루하고도 지겨운 행위 속에서 거의 나는 혼자 버려졌다. 나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길에 어울리는 외톨이가 아닌가. 심지어 가로등도 야심한 시간에는 작동을 멈춘다. 아마도 전력을 아끼려는 지방 공무원의 알뜰한 전략이라고 추측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공무원의 철두철미한 절약정신을 증오했다. 아무리 시골의 일상이 대부분 무미건조하고, 농사일은 대낮에 벌어지는 편이라고 간주해도 밤은 낮에 비해서 너무나 심각한 차별을 당하고 있었다. 나의 하루는 어쩌면 자정 무렵에 시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 권리는 거의 보장을 받지 못한 셈이었다. 나의 환한 밤을 되돌려 달라고 고함을 쳐대고 싶었다.


나는 그날도 신경이 꽤 예민해 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벌써 몇 달째 계속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이고, 겨우 잠에 들었다가도 악몽을 꾸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더욱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은 유달리 기존의 모든 사소한 분노를 잠재울만한 가장 거대한 분노가 최대 정점에 올라서서, 나는 짜증에 취해서 짜증을 표출하지 못해서 클랙슨을 더 거세게 시끄럽게 텅텅 눌러댔던 것이다. 신경질적인 움직임에 따라 동네의 개들이 모두 깨어나서 그들끼리 신호라도 열띠게 주고받는 것 같았지만, 그런 잡종들의 반상회 따위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단지, 나는 이 짜증 나는 불면증, 어쩌면 가수면의 상태로부터 어떻게 하면 잠시라도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오직 그 명제만이 편도체에 주입된 상태였으니까.


그러다, 그 밤의 남자를 만났다. 그 남자는 가로등조차 자취를 지워버린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에서, 차 한 대도 지나다니지 않는 어둑한 길을 혼자 의지하며 그림자처럼 걷고 있었다. 그 남자에게서는 알 수 없지만 엄숙하고도 차분한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나는 그 이유 때문에 그 남자에게 관심을 갖기 위해 보이지도 않는 정면을 주시하기보다는 시야를 오른쪽으로 틀어 그 남자를 뒤에서 따라가고 싶었다. 자정엔 사소한 관심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본능에 따르기로 했다. 따라서 나는 속도를 점차 줄였다. 아마도 시속 5킬로미터쯤? 액셀을 놓아버렸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래도 자동차는 그럭저럭 굴러간다, 달린다는 표현하는 것보다는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또한 나는 나에게서 존재하는 모든 소음을 감췄다. 핸들에 손바닥을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거의 방향만 살짝 틀기만 했고 전조등도 꺼버리고 미등만 켜 두었다. 게다가 나는 숨소리마저 거의 소거하려고 애썼다. 가능하다면 나 자체를 투명하게 만들고 싶었달까.


나는 그 남자의 5미터 정도 뒤에서 남자의 방향을 주시할 뿐이었다. 그 남자는 뒤에서 따라가는 마치 범인을 추적하는 차량처럼 생긴, 하지만 존재감이 거의 없는 자동차를 의식하지 않고 걷는 동작에만 충실했다. 나는 혹시 그 남자가 뒤를 돌아볼까 싶어, 긴장감에 빠졌고 그 감정은 나를 한껏 위험이라는 표지판이 꽂힌 곳까지 끌어올렸다. 말하자면 나는 단숨에 어느 지점, 낭떠러지 제일 꼭대기로 위태롭게 건져 올려진 것이다.


그 남자는 까만 어둠 속에서도 뒤통수가 은은한 빛을 냈다. 달빛을 받아 붉은색을 내기도 검붉은 빛깔을 내기도 했다. 빛을 냈기에 그 남자에게 머리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알려주고 있었달까.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저 남자는 머리가 없다. 머리통을 어딘가에 날려버리고 자신에게 머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것이다. 그래서 저 남자는 그저 배회하듯 걷는 것이다. 의식도 없이 생각을 잃어버린 채.


어쩌면 저 남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자아 속에 개념적으로 존재하든, 과거 어느 시점에 존재하다, 갑자기 시간이 개입되어 훌쩍 찢긴 시공간에게 휩쓸려버린 것이든, 저 남자는 실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자정이 넘은 왕복 2차선 도로 길가, 오직 어둠만이 전부인 이 공간에 저 남자는 이유 없이 기억을 잃은, 형체를 잃은 과거를 앓고 있는 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저 남자를 못 본다. 오직 나만이 저 남자를 볼뿐이다라고.


나는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 남자 옆으로 바짝 다가서 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래서 소음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액셀을 밟아 그 남자 옆에 슬며시 다가섰다. 바람에 흩날리던 그 남자의 검정 가죽 재킷이 백미러에 닿는 듯했다. 어쩌면 나는 남자를 오른쪽으로 밀어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한쪽 구석으로 몰아가서 논두렁 밑으로 처박히게 만들고 싶은, 이 시간에는 누구나 가끔 살인자가 될 수 있으니까. 나는 그 남자의 속도에 자동차를 맞췄다. 오른쪽 유리문을 아주 살짝 내리로 내리고 그 남자의 옆모습을 지켜봤다.


남자는 여전히 걷기만 했다. 분명히 어떤 의도를 갖고 자신의 반경에 침입한 구경꾼의 관심을 감지했음이 분명했을 텐데, 그 남자는 기묘하게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남자의 옆을 따라 꽤 많은 시간, 거의 몇십 분을 함께 보폭을 맞췄을 거라고 짐작했던 어느 순간, 이제 시간을 확인해 보려는 나의 방심, 그 찰나에 그 남자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갑자기 고개를 왼쪽으로 홱 돌렸다. 고개를 숙이며 오른팔을 사용하려 했다. 나는 그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뒷덜미에 소름이 쫙 끼쳤으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급정거를 했다. 차분한 속도였음에도 내 온몸이 앞쪽 유리창으로 덜컥 날아가는 듯했다. 충격은 충격이었다. 나는 그것을 몸으로 흡수하지 못했다.


내가 멈춤과 동시에 그 남자는 차 문을 벌컥 열었다. 물론 그 남자의 침입자 같은 불법적인 행위를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자정이 넘은 심각한 시간이 아닌가. 침입자가 차 문을 따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이 시간이라면 평범한 사람도 살인자로 돌변할 수 있다. 그도 나도 예외 없이.


나는 나름의 전략과 대비가 필요했다. 야행을 나올 때면 항상 차 문을 안전하게 잠가두었던 것이다. 그 남자는 재차 차 문을 열기 위해 거친 작업에 열중했다. 바깥쪽의 세계를 벗어나서 안쪽의 공기를 맛보려, 내부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집요하게 한 동작을 반복했다. 자신에게 장애물 따위는 아무런 방해공작을 펼칠 수 없다는 듯 보였다. 내 시야엔 그 남자의 손아귀에 붙은 단단한 굳은, 육식동물의 주름진 근육의 힘이 연상됐다. 강직하고도 오래되었으며 연마된 노동자의 튼튼한 악력, 그 남자는 이를 악물지도 않고 침착하고도 당당하게 마치 전혀 힘을 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눈, 그 검고 깊은 동공 속에서는 짧은 협박음이 지속적으로 날아오는 듯했다. 물론 그 남자의 입은 내 자동차의 앞문보다 더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긴 했지만, 그 정도의 모양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게 아닌가. 그 남자의 눈, 그러니까 눈이 위치해야 할 그곳은 검은 구덩이처럼 텅 비어있었다. 텅 빈 암흑 구멍이 그 남자의 반복적인 행위에 힘을 얻어서 더 강렬하게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점점 확대되어 마치 자동차 한 대를 집어삼킬 것처럼 기세를 부리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고 싶었다. 그 남자의 행위에 압도되거나 경직되어 나도 모르게 빗장을 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남자는 체념했다. 언제 그랬다는 듯이 다시 정면으로 몸을 비틀었다. 남자는 언뜻 좀비처럼 걷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것은 순전히 내 공포심이 만들어낸 환영에 불과했다. 그 남자는 다시 5분 전처럼 앞쪽으로 이유 없이 땅바닥에 스치듯이 걸었고 나는 달팽이처럼 뒤를 따랐다. 그러다 잠시 꿈이라도 꾼 것일까? 요즘 들어 운전하다 깜빡 졸음에 빠지다, 환기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바로 그때도 그랬다. 정신줄을 갑자기 놓고 만 것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혹시 나도 모르게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건 아닐지 조바심에 빠지기도 하는데, 아마도 내 본능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나 보다. 문은 여전히 단단하게 내 주위에서 나를 보호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그때도 나는 잠시 정신을 놓쳤다가 번쩍 뭔가 성광처럼 날아가는 어떤 장면 때문에 다시 자동차 속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내 정신이 속개됐을 때, 그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남자는 그저 의식적인 존재였을까. 내 상상이, 내 공포심이, 내 저주스러운 심리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했던 걸까. 그 남자는 내 그림자였을까, 분신이었을까, 이런 고민에 빠질 무렵, 지붕 위에서 쿵쿵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처음에 그저 소음 정도로 치부될 뿐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 소리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콩콩, 쿵쿵, 쿠웅쿵, 퉁퉁, 둥둥, 텅텅, 점점 황소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북을 쳐대는 소리, 마을의 모든 사람들을 깨울듯한 그런 저음으로 천장을 두드렸다. 남자는 박수무당처럼 제자리에서 오직 한자리를 향해서 뛰어대는 게 분명했다. 한 곳이 우묵하게 살짝 찌그러지더니 그 울림이 거세지며 핸들에서 시작된 충격이 시트와 타이어에까지 모든 자동차의 신경 기관으로 퍼져나갔다.


무슨 일일까? 바깥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차 지붕 위로 우박이라도 떨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앞쪽과 옆쪽 어디에도 우박 자국은 없다. 게다가 우박이 지속적으로 한 곳만 노린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 지붕 위엔 균일하게 한 곳만 충격을 감당하고 있다. 외로운 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분노를 제어할 수 없었다. 나를 망가뜨리는 일은 허용해도 차에 손해를 입힌 행동은 용서할 수 없다. 아직 30개월 넘게 할부가 남은 차를 이렇게 작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자동차를 세웠다. 그리고 잠금장치를 풀어버렸다. 몇 초였을까, 몇 분이었을까 그 남자는 지붕 위에서 침착하게 땅바닥으로 척 뛰어 내려오더니 오른쪽 문을 열고 내부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자신이 원하던 소원이 성취된 셈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큰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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