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다. 그러므로 나는 책을 읽지 않고 빵을 먹는다. 도서관과 빵이 어떤 유사성을 갖느냐고 묻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나는 이렇게 선포한다.
‘대체 왜 도서관에서 빵을 먹지 않는 건데?’
나는 그저 반골주의자, 혹은 반동분자일 뿐이다.
나는 삐뚤어진 인간이다. 성미가 아주 못돼먹었고 돼먹지 않은 짓만 골라서 하는 인간이며 온갖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다. 남들보다 잘나지도 못했으면서 늘 튀려고 거들먹거리는 인간이며 특히 글을 잘 쓰는 인간은 증오하다 못해 경멸해 버리는 인간 말종이다. 한마디로 나는 좀팽이 같은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시립도서관에 찾아가서 쿨하게 클레임을 걸었다. ‘도서관에서 제발 빵 좀 먹게 해달라고! 빵을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돈내산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사서는 ‘뭐 저딴 인간이 다 있어’라고 말할 듯한 표정을 지었다가도 서비스 마인드 때문인지 금세 미소를 짓는 척했다.
나는 매일 도서관에 방문할 때마다. 대출할 다섯 권의 책과 함께 ‘빵을 먹게 해 달라’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쪽지를 내밀었고 그때마다 사서는 왼쪽 쓰레기통에 그 쪽지를 주먹으로 구겨버리며 던져 넣었다. 예의 그 영혼 없는 미소와 함께. 사서와 나의 사이는 한마디로 일방적인 관계였다. 요구하면 무시하고 재차 요구하면 역시 무시해 버리는…
나는 결국 마지막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소원수리 박스에 정성스러운 의견을 남기기로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도서관에서 빵을 먹게 해 달라는 것’ 그리고 의견 엽서 하단엔 만만한 사서 한 명을 싸잡아 고발했다. 그렇게 1년 넘게 나와 도서관의 싸움은 지루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소원이 드디어 수리가 됐다. 역사적인 날이었다. 도서관에서 빵을 먹을 수 있게 되다니!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이벤트로 특별하게 도서관 내부에서 책을 읽으며 간식거리를 먹을 수 있게 허락한다는 공지사항을 목격한 것이다. 아주 조촐한 형식으로… 아마도 신청자가 없을 거라는, 자그마한 메시지와 함께.
나는 직통 전화는 아니고… 평소 상습적으로 귀찮게 하던 사서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내가 1 빠가 아니었다. 오직 10 테이블만 신청받을 예정인데, 벌써 내가 7번째에 해당된다고. 굳이 7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대입하고 싶진 않다. 줄기차게 의견을 개진했던 일개 소시민의 요구를 시립도서관 측에서 귀담아들었다는 사실이 실로 더 중요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5월 가정의 달, 도서관 잔디밭에서는 백일장이, 정기간행물실 내부에서는 ‘책과 함께 간식을!’ 이벤트가 열렸다. 나는 당당하게 런던바게트에서 쿠폰을 주고 구입한 빵을 들고 입장했다. 다만 이상한 것은 입장할 때 서약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서류 따위는 검토하지 않는다. 시키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10개의 테이블이 한 곳에 마련됐다. 고무나무로 만든 쟁반 위에는 생수병 두 개와 유리컵 두 개가 사이좋게 놓여있었다. 분위기는 예상과 달리 얌전하다 못해 삼엄했다. 마치 철통 같은 보안 태세 속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고작 빵 한 덩어리 허락했다고 이거 너무 분위기 험악한 거 아냐?’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테이블 위에 간식을 올려놓았다. 런던바게트에서 구입한 찹쌀 도넛 1개, 시금치 베이글 1개를 올려두었고 냉장고에서 꺼내온 요구르트를 다소곳하게 올려두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하루키의 <이상한 도서관>을 펼쳤다.
옆쪽으로 시선을 슬슬 돌려보니, 신간코너 옆엔 줄무늬 티셔츠, 미니 스커트 그리고 헤어밴드를 착용한 뚱뚱한 허벅지를 소유한 소녀가 마치 문지기처럼 무뚜뚝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그 소녀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테이블 위엔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가 한 장 있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책과 함께 간식을’ 이벤트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고객 한 분의 요청 사항에 따라 특별한 이벤트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책도 읽고 간식도 먹는 일상의 여유로움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다만 유념할 사항이 하나 있으니 아래 사항은 반드시 지켜주셔야 합니다.
1. 쩝쩝 소리를 내며 먹지 말 것.
2. 혀 날름거리는 행위를 표출하지 말 것.
3. 테이블 보 위에는 음식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말 것.
4. 후루룩 거리는 소리 따위는 절대 내지 말 것.
5. 입 안의 음식이 바깥에서 훤하게 보이는 흉한 짓은 하지 말 것.
6. 단 한마디도 입 바깥으로 내미지 말 것.
7. 개인위생에 철저할 것.
8. 책은 빌린 그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
9. 가져온 음식은 반드시 다 먹고 갈 것.
10.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무음모드로 진행할 것.
* 만약 위의 사항에 대해 단 한 가지라도 지키지 못할 경우 그에 따르는 모든 책임은 참가자에게 있으며, 그에 합당한 처벌이 따를 예정이니 극히 주의하기 바랄 것.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위의 수칙을 따르겠다는 것이니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무조건 이의는 제기하지 않을 것.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세상에 여기가 카공족의 스터티 카페라도 되는 거야? 나는 속으로 어이없다고 생각했으나 처벌의 수위에 대해 상상할 수 없었으므로 최대한 조용히 빵만 먹고 떠나기로 했다.
나는 카메라를 무음 모드로 해놓고 빵 먹는 모습을 남겼다. 나중에 인스타에 흔적이라도 남겨야 했으니까.
그때였다. 옆 테이블에서 떡볶이를 먹던 남자가 '헉'하고 고함을 쉬었다. 국물 한 방울을 테이블 보에 흘리고 만 것이다. 그러자 신간코너 옆에 그 광경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거구의 소녀가 쿵쿵 바닥을 찧고 남자에게 다가오더니 오른팔을 번쩍 들었다. 소녀의 손끝에는 뭔가 기다랗고 납작한 것이 쥐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소녀의 굳은 손 끝에는 빳빳한 파리채가 하나 들려 있었던 것이다.
찰싹!
남자의 왼뺨이 부르르 요동하듯 떨었다. 그러더니 또 한 대 찰싹! 또 찰싹!
소녀는 이렇게 외쳤다.
1번 소음 수칙 위반, 한 대!
3번 국물 수칙 위반, 한 대!
7번 위생 수칙 위반, 한 대!
남자는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싼 채 부들부들 떨었지만, 사태가 무슨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파악하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다른 테이블에 앉은 가족들은 대충 분위기를 감지하는 듯했다. 어떤 가족은 돼지양념갈비를 챙겨 온 모양인데, 휴대용 버너를 꺼내놓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방치해두고 있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찹쌀도넛에서 설탕이 단 한 가루라도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얌전한 새색시처럼 오래오래 아주 야금야금 뜯어먹기 시작했다. 파리가 들러붙은 파리채에 따귀는 맞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
그 후 매해 가정의 달이 찾아오면 백일장 행사와 함께 도서관 어딘가에서는 쩌렁쩌렁한 소리가 오래도록 들려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