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 소설
이 이야기는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보고 들은 사실을 솔직하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여기에는 어떠한 거짓도 진실을 과장한 이야기도 없음을 미리 밝혀두고 본론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그는 배가 고프다. 며칠 동안 아니 거의 몇 달이 넘게 풀 한 포기조차 먹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가 일부러 음식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한 환경이 그를 막다른 곳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그만의 널따란 평원, 자애로운 대지 위에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 하늘에는 한낮의 태양이 대지를 위엄 있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따가운 대낮의 풍경이 쏜살같이 위에서 내려와 그의 잔털 위에 너울을 연속적으로 장식하고 있다. 넘실대는 금빛 물결이 숨을 죽인 채 끝없이 그를 자극하고 흘렀다.
그는 채식주의자다. 그 사실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온 세상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배가 너무 고팠다. 그에게 굶주림이란 이미 일상이 된지 오래였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에겐 통념을 부숴버릴 수 있는 용기, 혁명가만이 가슴에 품을 수 있는 불굴의 의지 같은 게 필요했다. 옆에 그를 따라 누운 아이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형질을 답습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하고 있다. 하지만 녀석은 금방 싫증을 느낀다. 아이란 원래 그런 게 아닌가. 참을성이라곤 거의 제로에….
나는 아까부터 그 광경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다. 나는 잠시 쉴 틈을 찾기 위해 여기 베트남을 찾았다.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나 한가로운 시골의 풍경을 넋을 놓고 지켜보며 코코넛 커피를 들이켜거나 의미 없는 공상을 하며 휴가를 즐기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를, 아니 삐쩍 말라비틀어져서 갈비만 남겨놓은 소라는 존재를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 위에서 언급한 그는 바로 소다. 베트남이건 한국이건 시골에서 흔히 구경할 수 있는, 논밭을 갈아대는 그 충실한 소.
내가 어떤 목적을 갖고 소를 지켜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멍하게 시선을 일정하게 한 곳에 고정하려고 의도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단란한 시골의 오후 풍경을 바라보며 베트남의 시골이란 무엇인가 공상에 빠져드는 참이었다. 일종의 멍 때리기라고 할까?
소는 너무 마르다. 갈비뼈 수십 개가 앙상하게 피부를 뚫고 나올 기세다. 주변에는 잡초들이 낮고 수북하게 깔려 있었으나 아마도 소는 더 이상 잡초 따위에는 싫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소는 배가 고파서 너무나 배가 고팠으니까, 뭔가를 씹는 것처럼, 어쩌면 한 달 전에 먹은 맛있는 음식들을 되새김질하는 것처럼 어떤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것 같았다.
옆에는 소의 자식, 그러니까 송아지가 철없이 엄마 소 주변을 배회했다. 녀석은 젖을 힘껏 빨았으나 아마도 엄마 소에게는 우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송아지는 송아지의 본능대로 엄마는 엄마의 본분에 맞게 행동하려 했으나 본능만 가지고 식량이 해결되진 않는다. 그런 기적은 절대 이 지구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엄마 소는 아이 소를 먹여 살려야 한다. 하지만 엄마가 먹어야 아이도 먹일 수 있다. 엄마 소 역시 배가 고프다. 엄마 소의 엄마는 이미 누군가의 식탁에 올랐을 것이다. 엄마 소는 잠시 자신의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공상하고 잠시 식은땀을 흘렸다.
엄마 소는 한숨을 쉰다. 멀리 차 안에 앉아서 엄마 소와 송아지는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엄마 소는 철없는 송아지를 책망이라도 하고 싶지만, 소는 동물이다. 그저 꼬리로 철썩 녀석의 등을 후리는 방법뿐이다. 그게 엄마 소가 할 수 있는 훈육의 전부다.
엄마 소 앞에는 허물어진 담벼락이 놓여있다. 아니 거의 쓰러져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허물어진 담벼락 앞에는 누가 사용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해먹이 축 늘어져 있고 주인 없는 바이크 몇 대가 간신히 바닥을 지탱하고 있다.
엄마 소는 연거푸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송아지로부터 시선을 거두어들인다.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의식은 없는 듯하다. 의식이 있어봤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이 끔찍한 허기를 달랠만한 방안은 없다.
그런데! 엄마 소 앞에 어떤 녀석이 나타났다. 살이 포동포동 오른 닭이라는 녀석이다. 녀석은 엄마 소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총총걸음으로 주변을 돌아다닌다. 고개를 빳빳이 세우다가도 바닥에서 목표를 발견하곤 그 즉시 날쌘 동작으로 고개를 바닥을 쪼아댄다. 아마도 개구리나 벌레 따위를 발견한 것이 아니겠는가.
소는 배가 고프다. 닭은 배가 부르다. 이건 뭔가 불평등한 일이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의지할 수도 없다. 인간 역시 굶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엄마 소는 잠시 어떤 유혹에 빠진다. 소는 채식을 한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소는 풀을 뜯어먹도록 만들어졌다. 그것은 신이 고안한 사항이지, 소 그 자신이 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소는 멍청하게도 태어났을 때부터 그 사실을 부인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엄마 습관을 그저 따라 했던 것이 전부다. 왜? 무엇 때문에? 나는 채식을 해야 하는가. 이 더럽게 맛도 없는, 잡초 따위를 씹어 먹어야 하는가.
엄마 소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도 두터운 입은 무언가를 씹는 것처럼 연신 위아래 이빨과 혀를 멈추지 않고 저작에 열중이다. 엄마 소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일어나서 꼬리를 두어 번 흔들며 파리를 내쫓는다. 간혹 아이 소가 엄마 소를 귀찮게 했으나 그럼에도 우유는 역시 생산되지 않는다.
건방진 닭이 담벼락 위에 올라섰다. 그 위에 곤고히 앉아서 녀석 역시 엄마 소를 바라본다. 닭과 소 사이에는 어떤 불안한 기류가 흐른다. 뭐랄까 서로 대치하는 것 같은? 하지만 닭과 소 사이에는 어떤 불길한 사건 따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엄마 소는 다시 한번 닭을 노려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소는 채식을 한다. 닭은 잡식이다. 육식과 채식 양쪽을 왔다 갔다 한다. 엄마 소는 그것이 불만이다. 엄마 소는 이제 결심을 굳힌 듯하다. 변화는 단 한 번의 예외로 시작한다.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번성하려면 아니 살아남으려면 선택이 필요하다. 따라서 엄마 소는 오늘부터 채식을 거부하기로 한다. 자신도 닭처럼 육식과 채식을 병행하기로 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다.
엄마 소는 친근하게 닭에게 접근한다. 닭과 소는 원래 우호적인 관계도 공생적인 관계도 아니다. 그저 서로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다. 엄마 소는 그 무관심을 노리기로 한다. 스스럼없이 그저 아무 관심이 없는 것처럼 엄마 소는 스르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어슬렁거리며 뭔가 입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몸을 오른쪽으로 비틀며 닭에게 우회적으로 접근한다. 그 포동포동 하게 살이 오른 닭은 담벼락 위에 앉아서 포근한 오후의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자신의 신변에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칠지 전혀 예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상대방을 제압하려면 적의가 없는 것처럼 슬슬 접근해서 단 한 방에 굴복시켜야 한다. 엄마 소는 그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엄마 소는 닭의 거의 옆까지 다가간다. 엄마 소는 닭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슬쩍 몸통을 돌린다. 그러니까 엄마 소의 하반신이 닭에게 가까이 위치했다는 거다. 엄마 손은 꼬리에 자신의 정신을 집중시킨다. 눈을 감고 오직 꼬리에 두 눈이 달린 것처럼 공상한다. 엄마 소의 머릿속엔 몇 달 동안 제대로 된 식사조차 하지 못한 불쌍한 아이 소의 눈망울이 보인다. 엄마 소는 정신을 집중한 채 꼬리가 마치 인간의 손이라도 된 듯이 오른쪽으로 크게 원을 돌려서 그러니까 원심력을 만드는 것처럼 꼬리를 크게 회전한 다음 다시 반대 방향으로 있는 힘껏 자신의 엄마 젖을 빨던 그 힘으로 닭에게 채찍을 휘두르듯 가격했다.
닭은 엄마 소의 예기치 못한 한방에 결국 제대로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닭은 정신을 잃은 채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편안하게 차 안에 앉아서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놀라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소는 침착하게 땅바닥에 떨어진 통통한 치킨, 프라이드치킨은 아니라도 어쨌든 치킨은 치킨이니까, 그것을 혀로 슬쩍 건드려본 다음 두 눈을 감고 꿀꺽 입속으로 집어삼켰다. 모든 일이 3초 안에 끝나버렸다! 그런데 엄마 소는 차마 닭을 씹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대로 산 채로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는 것 같았으니까.
소는 마치 ‘나라고 육식을 못할소냐!’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소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집어삼키더니 아무도 모르는 완벽한 범죄를 구현한 것처럼 포만감을 느끼며 뭐라고 외치는 듯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엄마 소가 뭐라고 외치는지 듣고 싶었다. 저 먼 곳, 들판 가운데에서는 소가… 엄마 소가… 이렇게 외쳤다.
‘음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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