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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Jun 15. 2023

그랩 드라이버

초단편 소설

내가 썬을 만난 것은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이동하는 택시 안이었다.


“저는 취미로 택시를 몬다니까요” 뿔테안경을 눈썹 쪽으로 능숙하게 밀어 올리며 썬이 말했다. 내가 만난 베트남의 거의 모든 그랩 드라이버는 여자를 유혹하며 그렇게 말한다.


썬은 마치 몇 만년 동안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저주에 사로잡힌 스핑크스처럼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장광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는 여기서 꽤 다양한 일을 하며 먹고살아요. 공장에서 크록스를 생산하는 처지이지만 그것 외에 한국 고깃집에서 삼겹살도 굽죠. 제가 나름 자부심을 가진 직업이 있는데 그건 제가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사람, 즉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나는 웬만하면 그런 기사들의 투정을 교묘하게 사실로 위장된 정교한 가짜라고 여기는 편이다. 이런 남자들은 거의 여자나 낚으려고 혈안이 된 사기꾼에 불과한 편이니까.


“뭐 하고 살아요?” 썬이 물었다.

“회사에 다녀요. 지금은 출장 왔고요.’라고 내가 짧게 대답했다.


"저는 영매랍니다. 사람과 저승을 이어주는 사람이죠"

“귀귀귀.신. 그러니까 영혼을 본다고요?” 내가 놀라며 말했다.


“왼손을 잠시만 내밀어 보실래요?”

썬은 내 왼손을 잡아채더니 눈을 감았다.


“아니 운전 중에 눈을 감으시면 어떡해요?” 내가 감전이라도 당한 듯이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손만 살짝 스쳐도 당신의 삶이 보여요. 나는 당신의 몸에 깃든 전기적 신호들 속에서 고통의 흔적을 찾아내고 내면의 특질까지 꽤 정확하게 포착해 냅니다. 일종의 엑스레이를 찍는 원리와 비슷해요. 다만 저는 치유를 전제로… 재미로 한 번 해봐요.” 썬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다시 끈적한 오른손을 내밀었다.


“돈은 안 받을 게요. 대신 손을 줘봐요” 6만 동 대신에 나는 왼손을 썬에게 다시 내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 마치 비행기가 착륙 유도등에 따라가듯 이 남자에게 끌린 것이다.


“자, 눈을 감아봐요. 당신은 손이 아니라 마음을 지금 내게 맡기는 거예요. 나는 당신의 눈동자 뒷면의 세계를 봅니다. 우린 파도 위에 함께 누워있는 겁니다. 파도 밑으로 흐르는 완만한 난류가 느껴지나요? 괜찮아요. 우린 안전해요. 자, 이렇게 생각해 봐요. 수면 위에서 흘러서 이제 다른 대륙을 향해서 여정을 시작합니다. 우린 먼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거예요. 잔잔한 바다에서 유영하다, 거친 물살을 만나고 태풍에 격하게 출렁거리기도 해요. 우리가 탄 보잘것없는 배는 난파하다 작은 섬에 겨우 닿아요. 우린 그곳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개척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우린…”


나는 그만 스르르 눈을 감고 말았다. 그리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현실로 되돌아오기엔 너무 늦었다. 나는 무인도에 그 남자와 함께 버려진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그 남자, 아니 영매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는 바다 위의 포근한 섬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어쩌면 지옥일지, 천국일지 모를 그 기묘한 섬에서, 그 섬이 내가 아는 현실의 전부라고 믿으며 그 섬이라는 감옥에 유형수로 수감되어, 아무리 발악해도 절대 그 남자의 영향권으로부터 빠져나올지 못할 거라는 믿음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그랩 드라이버였던 것이다. 나약한 여자의 영혼만 낚아채는 영혼 그랩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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