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글 뒤에 숨어 있다

짧은 에세이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이긴 하지만 어쨌든 출근이라는 행사에 뛰어든다. 이것은 뭐랄까 경향적인 것일까, 습관적인 것이라, 뭐라고 딱히 정의하기는 곤란하지만 규칙적인 행위에 속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INFP인 나로서는 딱히 계획적이며 정기적인 것을 선호하진 않지만, 출퇴근에 소요되는 거의 3시간 가까이를 낭비하기 싫어서 책장을 스캔하곤 한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기 위해서다. 책장은 나름 P 성향답지 않게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다. 그렇다고 인증 사진을 남기며 그것을 증명하고 싶진 않다! 하루키가 무려 3칸을 차지하고 도스토옙스키가 2칸을 그리고 베르나르가 한 칸 정도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질서 없이 그러니까 엔트로피가 최대로 팽창된 상태로 여기저기 두서없이 책들이 꽂혀 있다.


책 한 권을 고르기도 쉽지 않다. 서점 매대에서처럼 누군가 이걸 읽어봐,라고 딱 지목해 줬으면 좋겠지만 비교적 프라이빗 한 나의 공간에서 그런 걸 기대하기는… 그렇다고 내가 마치 다중인격자가 된 것처럼 '손님 이걸 한 번 읽어보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뻔뻔하게 따분한 서점 주인 코스프레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전적으로 내 취향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기 책장에 꽂힌 수 천 권의 책이 전부 내 취향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으니, 적당한 걸 쏙 빼버리면 되는 노릇인데,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나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오블리비언》과 같은 치명적 두께를 자랑하는 책을 초이스 할 수는 없다. 이건 거의 살인적인 무게와 두께를 자랑하지 않는가. 누군가의 뒤통수라도 날리는 날이면… 끔찍해서 상상하기도 싫다.


결국 나는 익숙한 하루키 코너로 향한다. 그리고 그의 에세이 중에서 비교적 가벼운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뽑아든다. 일단 가볍다. 무게도 이 책에 담긴 그의 감정도 출근길, 소중한 내감정에 치명적 내상을 입히지 않을 만큼 가볍다. 물론 내가 늘 가벼운 것만을 취급하는 사람은 아니다. 삶은 지나치게 무거운 감이 없지 않다. 하루키의 소설만 해도 대부분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에세이를 무거운 출근길에 택하는 이유는 일부러 사서 무거움을 체감하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게다가 두께도 적당하다. 양장이라서 가방에 넣더라도 구겨지지 않는다. 270페이지 정도 되니까 출근 시간에 100페이지, 퇴근 시간에 100페이지, 나머지 70페이지는 회사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을 책 읽는데 바치면 거뜬하게 한 권 정도는 완독할 수 있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지하철에 앉아서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 남자인 나는, 계획대로 100페이지를 읽어내지는 못했다. 영화의 대사처럼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삶을 내가 상상하는 범위 안에서 제멋대로 조율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런 건 미신이나 유사과학 따위와 거의 흡사한 수준이다. 그래서 89페이지 정도로 적당하게 타협을 한 이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뒤통수를 구경하면서, 그 바쁜 일상의 숨 쉴 수 없는 치열한 가운데에서도 그 일정한 질서에 규합돼야 하겠지만, 나는 조금이나마 가벼운 이 책을 한 손에 들고, 저절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도 한가롭게 하루키의 책을 읽는다. 아마도 한 페이지 정도는 읽어낼 수 있으리라.


오랜만에 에세이라는 걸 쓴다. 요즘은 에세이를 거의 쓰지 않는데, 아마도 식상한 탓일 것이다. 어쩌면 나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일이 싫어서 소설이라는 허구의 장르에 기대는 방식으로 나를 대신 표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에세이든 소설이든 어쨌든 글쓰기라는 공통적인 사실을 가지며, 그것은 나라는 인간을 표현하는 하나의 양식이다. 단지 나를 든든한 벽 하나에 세워 두고 그 뒤로 얼마나 내 몸을 가리느냐, 혹은 보여주느냐,라는 차이다.


결국 글쓰기는 나를 숨기기도 하지만 어떤 부분으로는 드러내는 형식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글에서 나를 드러내고 싶은 어떤 경향적인 이유 때문에, 출근 그리고 책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해서 슬쩍 나의 존재를 보여줬다. 아마도 이런 에세이는 어떤 욕구가 치밀어 올라야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런 감정이 자주 찾아와줄지는 나도 확신하기 힘들다. 다만, 그런 감정이 찾아왔을 때, 적당한 시공간을 찾아서 글을 써줘야 할 텐데, 그게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 오늘처럼 변칙적이면서도 주기적인 생활 양식, 즉 직장이라는 낯설고도 신기한 시공간의 충돌이 새로운 감정을 충전해 줄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글을 쓰기 위해서 출근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이래도 불편, 저래도 불편

어차피 불편하다면

'불편한 글쓰기'에서 불편하게 써봅시다!

'불편한 글쓰기'에서는 매달 불편 테마를 글감으로 드립니다.

7월 3일부터 시작합니다.

https://brunch.co.kr/@futurewave/156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방을 일하는 공간으로 꾸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