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발적 재택 감금 일지
하루키는 소설 《도쿄기담집》의 단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어떤 낯선 공간 혹은 환경에 처하게 되면 인간은 스스로 변화를 모색한다고. 여기서 변화는 생존을 뜻한다. 살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과 정면으로 맞설 필요가 있다. (물론 두려워하던 것과 맞서지 않는다고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얼간이는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단편의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위험한 곳 두 군데를 밧줄로 연결해놓고 외줄 타기를 감행한다. 그가 만난 것은 오직 바람뿐이다.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오직 자신의 두발을 밧줄 위에 디디고 완벽한 균형을 맞춘다. 그렇게 집중하며 세상을 개척하다 보면 두려움이건 공포이건 모두 사라진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두려움을 배제한 채 그저 용감하게 뛰어들다 보면 그 일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논리였다.
공간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만약, 역설적으로 변화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즉 정들고 편안한 그곳, 그러니까 익숙한 여러분의 침대 위에서 똑같은 패턴만 반복한다면 된다는 결론을 맺게 된다. 변화는 극히 위험하니까, 변화는 번잡한 공포를 불러오니까, 변화는 끔찍한 용기를 수반하니까, 바이러스 같은 변화는 결코 우리에게 필요 없을 테다.
하지만 변태적으로 변화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종족이 그렇다. 나는 변화에 익숙하다. 아니 변화를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30년 가까운 직장 생활 동안 수없이 많은 회사들을 거쳐갔나 보다. 이렇게 사회 부적응자가 변화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한다. 여러분은 자기 합리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목덜미가 뜨끈뜨끈해진다.
아무튼 변화를 지리하게 언급한 이유는 재택근무를 꺼내기 위해서인데, 재택근무는 바로 공간의 변신을 원했기 때문이다. 사실 재택근무가 시작된다고 해서 늘 해오던 일 자체가 바뀌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분도 잘 알고 있다. 원래 했던 일은 바뀌지 않는다. 변화라는 건, 오직 프로젝트가 달라져서 발주처 담당자가 바뀔 때 느낀다는 사실뿐인데, 애석하게도 발주처, 즉 갑들은 언제나 슈퍼 갑질에 능하다. 따라서 딱히 특별한 전략도 대비태세도 필요 없다. 이전에 했던 매뉴얼 대로 대응하면 그만이다.
재택근무를 시작했던 이유는 회사의 오피스라는 어떤 정형스러움이 싫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형스러움에 싫증을 느낀 것은 직장 생활이 시작됨과 동시에 찾아오긴 했지만……. 대체 어떻게 30년이라는 세월을 버텨왔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진부함과 나태함에서 탈피하기 위해 나에게는 보다 충격적인 처방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바로 재택근무가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환경에서 재택근무를 내 의지대로 실현하는 명제였다.
어쨌든 재택근무는 어쩌다 보니 현실이 됐다. 어떻게 재택근무를 실현했는지 궁금한 분들이라면 이전에 발행한 글을 읽어보면 되겠지만, 아마도 단 한 명도 내 과거 글을 들춰보는 수고스러움을 무릅쓸 사람을 없을 거라고 본다. 이거 솔직히 약간 웃프다.
재택근무를 결정하면서 내가 먼저 공상했던 것은 공간의 변화다. 재택근무의 최적 주거 환경은 아마도 내방이 될 공산이 컸다. 내 방은 이전까지 그저 몇 십 권의 책들과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곳에 불과했는데, 나는 그 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었다. 말하자면 놀거나 쉬는 공간이 아닌 일 하는 공간으로 완전히 탈피할 필요성이 있다는 거였다. 오직 일만 생각할 수 있는, 일벌레로 변신하기에 안성맞춤인 그러니까 카프카적인 공간(일벌레로 일하다 실제 벌레로 변신한)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감하게 비용을 투자하기로 했다. 물론 '내돈내산'이 아닌 순수하게 회사의 자본을 통해서 말이다. 곧바로 나는 이기적인 공작에 나섰다. 재택근무를 위해서 몇 가지(?) 장비가 필요하다고 회사 중역에게 1차적으로 구두보고를 하고 그룹웨어에 기안을 용의주도하게 올렸다. 거부 사인을 할 수 없는 철저한 논리로! 그리고 도면을 펼쳐놓고 공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심도 있는 대화에 나섰다. 바로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나 자신과!
내가 새로 구입한 장비들(회사 지원과 개인 구비)
32인치 커브드 와이드 모니터 1대
더블 모니터 암(모니터의 튼튼한 설치를 위해)
세로 모니터(2k를 지원하는 저렴한? 것으로)
인체공학적인 로지텍 버티컬 마우스(손목 보호)
키크론 K8 Pro 기계식 키보드(코딩을 위해서 이왕이면 청축으로)
14인치 M1 맥북프로 1대
드레텍 타이머(업무 집중을 위한)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오디오 엔진의 HD6 스피커(업무 집중을 위해 음악도 중요하다.)
아담한 책상과 작은 협탁
편안하지만 앤티크 한 분위기의 의자
슬라이딩 책장(업무용 IT 책을 감춰놓기? 위한 용도)
뭐 대충 업무를 위해 새로 구입한 장비들과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장비들을 늘어놓았다. 회사 입장에서도 개인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지출이다. 뭐 그렇다고 가세를 흔들 정도로 막대한 규모의 볼륨은 아니다. 딱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릴만한 그런 평범한 장비들이다.(개인적 취향이니 이해해 달라.)
공간에 새로운 가구와 장비가 들어서면서 배치의 변화를 꾀했다. 벽면 한쪽에 슬라이딩 책장과 기존 책장이 나란히 들어서면서 바벨탑처럼 성벽을 이루던 책들이 제자리를 찾았고 회사에서 공수해온 IT 책들도 착착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모니터 암을 설치하면서 작은 책상임에도 불구하고 두 대의 모니터가 조화롭게 배치되었다.(보라 저 늠름한 사진을!)
공간은 쉼이라는 목적에서 일하는 곳이라는 목적으로 설정이 바뀌었다. 공간이 바뀌면 사람의 마음가짐도 덩달아 변화를 시도한다. 나는 사랑의 첫 장을 넘기듯 변화의 시작과 함께 일과 사랑에 빠져야겠다고 결심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처하면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누군가처럼 마음도 변화를 인지한다. 나는 그래서 그토록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에서 일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카프카적인 변신이긴 하지만, 절망적인 쪽이 아니라 보다 긍정적인 쪽으로 의식이 변화된 것이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이거 어디선가 베낀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아마도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본 문구 같다. 아무튼 공간은 사람을 벌레로 바꾸지는 않아도 일벌레로는 만들었다. 그러니까 억지로 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스트레스를 겪지 않아도 저절로 나는 일하는 사람으로 변화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내 방은 판옵티콘처럼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죄수방은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내방을 창조했고 나는 그 방에서 일하는 생산성이 꽤 높아진 똑똑한 사피엔스가 되었다. 모든 결정은 자발적이었고 단 하나도 타인의 의도가 개입된 것은 없었다. 나는 공간에게 명령을 하달했고 공간은 그것에 부응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몇 장 첨부해 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지만 다 늙은(?) 자의 공간을 소개하는 일이 얼마나 이 글에 조회 수를 높이는 데 일조할지 예측할 수 없어서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가, 글만 떡 하니 내놓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서 사진도 같이 공개한다.
부끄럽지만, 재택근무자의 생활을 보여주는 하나의 작은 단면이라고 이해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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