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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28. 2024

차이코프스키의 비창(悲悼)에 투영된 나의 감정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나는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다. 나는 감정이라는 지하에서 사는 인간이다. 감정은 나를 늘 지배하는 편이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그 방향으로 서사하는 것인지, 감정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감정에 충실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고 있다. 감정을 주도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때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침울함의 늪에 깊이 빠져들곤 한다. 한 번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그 블랙홀 같은 공간에서, 나는 내 존재를 지워버리려 애쓴다. 눈을 감고 생각의 심연 속으로 깊이 침잠한다. 눈을 감은 그 세계엔 빛과 어둠의 박자가 불규칙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 어느 것도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마빈스키의 지휘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Pathétique)을 들으면, 유난히 음울하고 무거운 감정이 밀려온다. 차이코프스키는 비창을 작곡하고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는 비창이 그의 유서라는 견해도 있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음울하고 무거운 감정이 다가온다. 그 감정의 근원을 무엇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차이코프스키의 감정에 공명할 수 있을까? 그의 감정은 얼마나 나에게 깊이 진동을 하고 있을까?


비창은 1893년에 작곡되어 그 해에 초연했다. 1악장은 느리게 시작되며 기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1악장은 깊고 어둡지만, 기운을 차리려는 의지가 어렴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1악장 4분 20초 경의 러시아 특유의 애잔한 정서는 나에게 익숙하기만 하다.


2악장은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연출이 가득하다. 비록 밝지만 역설적으로 슬픔이 잠재한다는 사실이 아득한 현실의 세계를 동경하는 듯하다. 


우울감으로 가득한 생애를 보냈다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3악장은 예상과 달리 활기차고 리듬감이 넘친다. 러시아의 전통적인 민속 춤곡을 담았다는 3악장은 차이코프스키가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강렬한 생에 대한 의지를 남기려는 듯하다. 공연 때 사람들은 3악장이 끝나고 어이없게 박수를 치기도 한다.


4악장은 비창의 클라이맥스다. 현악기의 낮은음으로 시작되어 점점 격한 감정의 폭발로 이어진다. 가장 암울하고 가장 슬픈 감정이 끝도 없이 계속된다. 선율이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렸음이 분명하다. 분명 그의 감정과 비슷하게 진동한 것 같다. 절망과 슬픔의 비창, 작곡가의 비참한 생애가 불타올랐다가 절규를 하듯 마침표를 찍는다. 악장은 마지막에 강렬하게 절정으로 치달았다가 서서히 소멸되어 간다. 차이코프스키의 감정을 실은 마지막 악장이, 아니 그의 어두운 삶이, 더 깊은 곳으로 무너진다. 4악장의 막이 내리면 내 음울함도 조금은 씻길 수 있을까.


차이코프스키는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사인은 조카를 사랑한 동성애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가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거라는 것.


러시아는 유달리 한국과 정서가 잘 맞는 것 같다.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한 러시아 음악과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러시아 소설도 나에게 영감을 준다. 


때로는 굳이 음울함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참 생각의 수면 밑에서 헤엄을 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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