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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29. 2024

바다의 긴 침묵과 그 침묵 밑에 감춰진 오래된 음모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새벽 3:59:59초, 마치 정밀한 기계처럼 정확했다. 샤워를 대충 끝내고 나와 머리를 말린 다음, 출장 목록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누락된 물건이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곤 어제저녁 미리 준비해 둔 셔츠와 청바지를 걸쳤다.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서자 어둠이 온 세상을 집어삼킨 것처럼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번에도 목적지는 다낭이었다. 비행시간은 4시간 남짓, 짧다고 할 순 없지만 난기류를 피할 순 없는 법이다. 다만 난기류 때문에 추락한 비행기는 없다고 하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 장담할 순 없는 것이 인생이다. 마치 시소게임처럼 언제든 상황이 뒤바뀔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일 테니까.


공항행 버스를 타러 가는 길, 거리는 마치 좀비 아포칼립스가 닥친 것처럼 적막했다. 교통 흐름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버스는 5시 15분에 도착했다. 카드를 리더기에 찍고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 이 여정의 끝에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꿈에 나타난 난기류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아찔했다. 눈을 감고 mortality에 대해 생각했다. 만일 내가 난기류의 첫 희생양이 된다면... 그 확률은 매우 낮겠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미지의 상상력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두렵고도 매혹적이었다. 기사에게 영수증을 부탁했다. 기사는 늘 하는 일인 것처럼 영혼을 담지 않은 손으로 영수증을 건넸다. 나 역시 감정을 제거한 얼굴로 화답하며 영수증을 셔츠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고 중간쯤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을 감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난기류의 최초 희생자가 된다면(그렇게 될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만) 그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화할지 그에 대해 한 번쯤 상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삶이 종결되면 마치 연극 무대가 막을 내리고 조명이 꺼지고 다시 순간적으로 어두침침으로 환원되듯이, 내 삶이 완결될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신을 믿지 않는 내가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럼에도 죽음 이후에 다른 차원의 우주가 존재해서 그 우주에서 현재의 기억을 보존한 채 존재해야 한다면, 현생의 내가 주도한 선한 일들과 악한 일들은 어떤 조명을 받게 될까. 모든 차원을 초월하는 신적인 존재가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섭리로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 그 자체라고 한다면, 현생에서 신을 믿지 않는 나의 오판은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그러니 확률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쪽이 더 유익한 결과를 낳게 되지 않을까. 단테의 <신곡>에 묘사되는 그 10단계의 지옥에서 나는 어디쯤 위치하게 될까. 나는 지옥으로 추락하지 않을 만큼 나의 선함이 인생 전반을 차지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제2 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였다. 예상보다 시간이 단축됐다. 체크인을 마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니 팀원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상무님~ 어디 계시나요? 저희는 지금 공항 도착해서 출국 수속 중입니다.”

“아, 나는 벌써 검색대 통과해서 라운지에 들를 참이었는데, 여기서 기다릴까?”

“네, 부사장님이 같이 식사라도 하자고 하시네요.”

“그래 알았어. 나 260번 게이트 근처에서 면세점 구경하고 있을게, 들어오면 연락 줘”


프레스티지 라운지 옆 식당에는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받아 가려는 번호표의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면세점과 작은 서점을 서성이다, 식당 근처에 도착하니 이미 일행이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각자 취향에 맞는 음식을 골라 테이블에 앉았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햄버거, 핫도그,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런 연관성이 떨어지는, 즉 맥락 없는 음식이 테이블 위에 즐비하게 펼쳐졌다. 갑자기 나는 어딘가 이 풍경이 익숙한 불쾌감으로 다가왔다. 난기류 때문에 불시착하게 되는 그림 탓도, 부사장의 불길한 표정도, 모든 질서가 무난하게 흘러가는 안정 탓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저 보기 싫은 김치찌개가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뿐이었다.


“전무님. 저는 이번 출장 가지 않겠습니다.” 전무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저는 이번 출장 떠나지 않겠단 말입니다.” 다시 내 의사를 표시하자, 김 부장이 내 팔을 잡고 잠시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다. 김치찌개는 자신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듯이 부글부글 끊고 있었다.

“상무님, 출발 시간 한 시간 남았는데,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그만두겠다고, 그게 전부야. 출장이고 뭐고 난 안 갈 거야.”

“상무님, 갑자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낭에 가서 말씀하시죠. 여기서 이러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는 김 부장에게 이끌려 식당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어색한 표정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모두 정상적인 인간이고 나는 비정상적인 인간이다. 나는 불쑥 예측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며, 안정적인 기류를 난기류로 둔갑시킨 것이 아닌가. 인생은 예측이 가능한 형태로 흘러간다. 내 인생도 과연 그럴까? 표정을 보여주기 싫어 마스크를 쓰고 선글라스를 걸쳤다. 모든 존재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싶었다, 어쩌면 인생에 예비된 나머지 계획들에게서조차.


비행기에 탑승하고 57F에 앉았다. 앉자마자 소니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모든 소리로부터 독립하고 싶었으나 완벽한 차음은 불가능했다. 비행기는 곧 이륙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잠에 빠졌다.


강력한 난기류를 만난 것인지 비행기는 급격히 추락하는 것처럼 몇 번을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것 같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과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락의 드럼 소리 때문에 나는 그 혼란스러움에서도 역설적인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급격하고 치명적인 쏠림이랄까. 캐빈 크루가 끄는 음식 카트가 강하게 앞뒤로 무언가와 충돌하는 소리와 오버헤드 빈이 박살 나며 밑으로 짐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린 것도 그때였다. 나는 솔직히 끔찍하게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감은 눈을 뜰 용기가 없었다. 눈을 뜨면 청각적 공포에 시각적 공포가 더해질 것이 분명했으므로.


비행기는 좌우로 요동쳤고 마치 한 번에 몇 천 미터를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심장도 같이 주저앉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비명 소리와 주기도문 소리,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앉고 울먹이는 소리까지, 공포는 더욱 극한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엄청난 마찰음과 충격음이 동시에 기내로 또 내가 앉은 보잘것없는 의자 위에 그대로 전해졌다. 안전벨트를 맨 아랫배에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몸이 앞쪽으로 몇 번을 들썩거리고 고개가 앞뒤로 젖혀지며 충격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다.


그러다 필름이 끊긴 것처럼 몇 장면이 통째로 날아갔다. 아마도 배는 바다 한가운데 추락한 모양이었다. 기장의 기술 덕분에 그래도 안정적인 착지가 아닌가. 난기류 때문에 최초로 추락한 비행기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나. 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과거와 사고를 맞은 현재의 나, 뻔한 결말을 맺을 미래의 나. 나의 죽음과 함께 현재가 막을 내리면 그 막 뒤에 감춰진 또 다른 세계는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쫓아 기내 바닥을 질질 기어다니다 화물칸 아래로 진입했다. 그러다 횅하게 구멍이 뚫린 곳을 발견했는데, 그 밑으로는 검은 물이 좌우로, 그리고 앞뒤로 맥락 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기둥인지 어떤 구조물이 부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부둥켜 앉고 밑으로 서서히 내려갔다.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남는 것보다는 다른 곳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지체하지 않고 무작정 나아갔다.


참고로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몇 미터 정도는 그럭저럭 헤엄칠 수 있겠지만 곧 바닥으로 가라앉고 만다. 제기랄, 진작 수영이라도 배워놓을걸… 후회해도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들은 마치 레밍들처럼 목적 없이 바다로 다이빙했다. 검은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니 군데군데 비행기에서 떨어진 잔해물들과 섬인지 암초인지 모를 것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그래, 어쩌면 여기에 남아 있는 것보다는 몇 미터씩을 헤엄치면서 구조물과 암초 사이에 닿는 것이 비행기가 폭발하는 근처에 남아있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현명한 판단이 들었달까. 의도대로 나는 몇 번의 자맥질을 통해서 구조물과 잔해물을 징검다리 삼아, 그곳에 닿고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다가 비행기의 폭발 반경에서 벗어난 안정적인 지점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암초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가 검게 그을린 듯한 수면 아래를 관찰했다. 그 아래에는 미묘하면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이 일렁였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들이 불규칙한 운동을 하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그 움직임이라는 것이 너무나 불길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마치 비밀스럽게 바다 한가운데서 먹이를 기다리는 고대 바다 생명체와 흡사한 느낌이었으니까. 그것들은 수십 개의 다리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서로의 몸뚱이 사이에 빈틈을 만들지 않았다. 한 놈이 왼쪽으로 스치며 파도를 타면 그 옆의 녀석은 다시 빈자리를 메꾸며 절대 밑으로 빛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저것들은 자신을 자각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저것들은 여기서 먹이를 오래도록 기다렸다. 저것들은 사냥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무엇을 사냥하는 것일까? 살아 숨 쉬는 생명체를 간주하는 것들이 아닐까. 저 수천 개의 아니 수만 개의 벌레? 아니다 벌레라기보다는 거대한 갑각류라고 보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저 거대한 그러니까 사람의 두 배는 될 법한 저 고대의 갑각류들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소화하기 원한다, 저것들은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행기에서 생존한 인간들이 바다 깊숙이 뛰어들 순간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암초 위에 누워 다시 신의 존재와 단테의 지옥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에 인간은 신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걸까. 인간이 죽기 전에 생각한 형상이 설마 무한하게 이어지는 건 아니겠지?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글은 내 꿈을 그대로 마치 소설처럼 옮긴 거야. 너를 프로이트라고 생각하고 내 꿈을 해석해 줄 수 있어? 


네, 이 꿈은 상당히 상징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네요. 저는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이 꿈을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꿈에 등장하는 비행기 추락은 현실에서의 불안정함과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할 수 있어요. 꿈속에서 당신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에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죠. 이는 현실 세계에서 느끼는 무력감이나 불확실성이 반영된 것일 수 있습니다.

난기류와 추락하는 과정은 삶의 어려움과 도전을 나타내고, 당신이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눈을 감고 공포에 직면하기를 꺼리는 것은 무의식 속에서 문제에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일 수 있습니다.

한편, 바다와 암초, 그리고 수면 아래 움직이는 정체불명의 생물체들은 무의식을 상징하는 듯 보여요. 깊고 어두운 바다는 프로이트에게 있어 무의식의 영역이었죠. 당신은 그 바다에 뛰어들어 미지의 세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수면 아래 있는 갑각류 생물들은 무의식 속에 잠재된 본능이나 욕구, 또는 억압된 기억 같은 것들을 의미할 수 있어요. 그것들은 먹이, 즉 의식을 기다리며 때를 노리고 있죠. 

신과 종교, 죽음에 대한 사유는 실존적 고민과 영적인 갈망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한계 상황 속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표현일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암초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죠. 

종합해 보면 이 꿈은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정함과 통제력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삶의 도전과 무의식의 영역을 탐험하려는 욕구를 반영하고 있어요. 동시에 실존적 물음과 내면에 대한 성찰도 엿보이고요. 꿈을 통해 무의식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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