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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21. 2023

고독한 산책자 4/4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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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책자 3/4 요약


준영은 기묘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황금 접시에 담긴 음식을 주문하게 된다. 그 음식은 눈에는 화려하게 보이지만 맛은 별로였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준영이 돈을 내지 않고 나가려 하자, 레스토랑 주인인 고양이 사나이가 화를 내면서 준영에게 위협을 가하기 시작하는데...





고양이 사나이는 자리에서 진동하듯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마치 초고속카메라로 촬영하듯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실크해트를 뒤집어쓴 고양이 사나이는 온몸이 검은색 줄무늬로 도배되어 있다. 고양이 사나이는 수염을 왼손으로 지긋이 쓰다듬고 그 가느다란 촉수를 보기 좋게 배치하더니, 검은 눈동자 한가운데로 최대한 쓸어 모았다. 그리곤 그 행위가 모두 끝나자, 앞발을 크게 휙 쳐들었다. 


“내 레스토랑에서 돈을 내지 않고 나가는 놈은 절대 가만두지 않아. 파리스 레스토랑의 치욕이지. 너 같은 놈은 절대 가만두면 안 돼. 벌을 받아야지. 무서운 형벌을 말이야. 다시는 못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공짜로 밥을 먹고 도망치면 무슨 꼴을 당하게 되는지 호된 맛을 봐야지. 그렇지 않아? 엉?”


고양이 사나이는 무서운 표정을 지으려고 했으나, 아무리 검은 눈동자가 가운데로 몰린 형상에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고양이가 인상을 쓴다고 호랑이로 둔갑하진 못한다. 포우의 소설 속에서나 고양이는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호랑이와 저 고양이 녀석의 공통점은 그저 무늬라는 점, 그리고 녀석이 걸친 정장일 뿐이다. 앞 발톱이 아무리 뾰족하고 날카롭다 한들, 내 머리통을 날릴 만큼 강력하진 못하다. 하물며 돈을 내지 않았다고 체벌을 가할 권리가 고양이 따위에게 있진 않다.


고양이 사나이는 발톱을 내세우며 그것을 숫돌에 갈아대는 것처럼 모양새를 취했다. 그리고 그것을 시험 삼아 휘두르기 시작했다. 휙! 휙! 공중에서 공기 분자들이 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오직 효과음뿐이었다. 준영은 좌우로 고양이 사나이의 동작을 피했다. 고양이 펀치야 고작해야 냥냥 펀치가 전부란 말이다. 그런 펀치에 맞는 바보도 아니고 그런 펀치에 쓰러질 얼간이도 아니다. 


고양이 사나이와 준영의 긴긴 사투가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다. 고양이 사나이는 카운터 앞 데스크를 쓰러뜨리더니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처럼 준영을 찍어 누르려했고 준영의 몸 위에 올라서더니, 앞발을 휘둘렀다. 고양이 사나이가 준영을 단숨에 제압해 버린 것이다. 고양이 사나이는 발톱을 부들부들 떨며 엄청나게 강력한 마지막 한방을, 최후의 일격을 준영에게 구사하려고 눈썹과 앞발을 동시에 부르르 떨었다. 


준영은 한 손을 제압당했지만 마지막 남은 손이 있다. 게다가 준영도 손톱이라면 일가견이 있다. 녀석이 펀치를 날리면 준영도 그대로 돌려주면 된다. 날카로운 발톱만 피하면 그럭저럭 승산은 있다. 준영에게는 타이슨 못지않은, 아니 몇 달은 깎지 않은 회칼 같은 손톱날이 있지 않은가. 준영의 한방 아니 한날이라면 녀석을 충분히 때려눕힐 수 있다. 일단 폭풍 같은 녀석의 발톱 세례를 막아선 후 녀석이 지칠 때를 기다렸다가 카운터펀치를 날리자, 그렇게 하면 준영은 전세를 충분히 역전시킬 수 있다. 작가인 나도 준영을 응원한다!


녀석의 냥냥 펀치가 시작됐으나, 그것은 솜방망이질에 불과했다. 녀석의 펀치에 익숙해진 준영은 지루해진 나머지 그만 크게 하품을 내질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꿈이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고양이 사나이의 동작이 멈췄다. 모든 게 꿈이었을까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꿈은 아니다. 준영은 레스토랑 바닥에 누워있고 고양이 사나이와의 사투 때문이었는지 테이블은 여기저기 쓰러져 나동그라졌고 음식물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리고 후미진 구석엔 고양이 사나이가 바닥에 앉아서 사나운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파리스 레스토랑은 파리스 왕자를 모시는 일종의 사당 같은 곳이야. 네가 어떻게 여기를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지만 들어온 이상 값은 치러야 한단 말이야. 네가 공교롭게도 파리스 왕자가 즐긴 음식을 주문했으니 난 놀랄 수밖에 없었어. 우리는 손님을 통상 받지는 않지만 가끔 우연찮게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에게 나름의 선택의 권한을 주는 편이 거든. 네가 그래서 메뉴를 골랐고 우린 예정대로 음식을 준비했을 뿐이야. 손님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레스토랑은 성심성의껏 서비스하고 손님에게 돈을 받고 셔터를 내리면 그만인 거지. 하지만 맛있게 먹는 것엔 조건이 따르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말이야. 우리는 음식을 즐긴 인간의 기억을 빼앗아. 그러니까 소중한 기억 같은 걸 영영 빼앗아 버리는 거야. 그게 트로이를 멸망시켜 버린 파리스 왕자의 저주를 푸는 일이라 믿었으니까. 우린 몇 백 년을, 아니 몇 천년을 그렇게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자리를 옮겨가며 제발 저주가 풀리길 기다려왔어. 지하에 잠든 파리스 왕자의 영혼을 달래며 한 인간의 기억을 빼앗아서 그것을 황금사과로 바꿔 제물로 올리곤 했지. 그런데 네가 그 흐름을 뒤틀어버렸어. 말하자면 레스토랑의 질서를 무너뜨린 거야.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음식을 맛없게 먹은 적은 없었거든, 까다로운 구르메도 그런 짓거리를 벌이진 않았으니까. 저주를 풀려면 음식을 맛있게 먹어야 한단 말이야.”


“너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인물인 거야. 그 사실이 우리를 당황시킨 거지. 그래서 나는 너에게 복수를 하려 했어. 하지만 동물이 인간에게 폭력을 쓴다는 거. 그것 또한 코스모스의 법칙에 위배된다는 사실이지. 우리에게 그럴 권한까지는 없었으니까. 하…” 고양이 사나이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요. 제가 질서를 무너뜨린 셈이 됐군요. 하지만 저는 다만 음식이 맛이 없어서,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너무 형편없어서 뱉어버리고 싶었다니까요. 솔직한 것도 죄랍니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고요. 썩어 문드러질 지경의 맛인데, 어떻게 맛있게 그걸 억지로 꾸역꾸역 처먹겠습니까? 저주이건 레스토랑의 역사적 비밀이건, 그따위는 전 관심 없고 저 철창이나 어서 없애주세요. 그리고 내 주머니에 꼬깃꼬깃 감춰둔 5만 원을 꺼내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시고요”


“우리 고양이 일족은 이집트에 살았지. 우린 기원전 31세기부터 인간과 동고동락을 했단 말이야. 어쩌면 우리가 인간보다 더 우월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이집트가 멸망하면서 고양이의 역사도 잠깐 끊길 수밖에 없었지. 우린 그래서 다르다넬스 해협을 헤엄쳐가며 트로이로 넘어가게 됐어. 그게 기원전 12세기의 일이야. 그런데 평화롭게 살아가던 트로이에 아킬레우스 무리들이 쳐들어 온 건지. 재수 없을, 그 빌어먹을 목마 때문에 트로이까지 멸망했단 말이야. 우린 그리스의 함정을 트로이에게 알리려고 했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어. 한낱 고양이 따위가 지껄이는 야옹 소리를 누가 귀담아듣겠어? 애옹거린다고나 생각했겠지. 덕분에 그 불길 속에서 대부분의 고양이들이 불쌍하게 불에 타 죽었어. 비록 파리스 왕자가 원망스럽긴 했지만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고작 사랑과 질투 때문에 국가 하나를 멸망시켜야겠어? 그것도 목마라는 얄팍한 짓거리로… 죄 없는 고양이들에게 구원을…”



고양이 사나이는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곤 계속 말했다. “그 이후로 우린 그리스를 대대로 원수로 생각하고 절망적인 사랑 때문에 나라를 망친 파리스 왕자를 대 끊긴 인간 대신에 돌봐주기로 했어. 모든 인간의 비웃음이 된 파리스를 내버려 둘 순 없잖아. 하지만 트로이라는 낙인이 찍힌 고양이들은 갈 데가 없었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이제는 이 지구상에도 몇 명이 남지 않았어. 그리고 여기에 내가 그 혈족 중의 하나고…”


“아무튼 그건 그렇고 네가 여기서 나가는 방법은 유일하게 단 하나밖에 없지. 그것은 네가 주문했던 음식을 모두 머릿속에서 하나씩 복원해 내는 거야. 철저하게 재료와 소스 하나까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음식들은 모두 깨끗하게 치워졌지. 모두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 속으로 사라졌어. 게다가 넌 머리도 좋지 않잖아? 으하하하. 향신료와 식재료와 음료까지 모두 빠짐없이 기억해 내야 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곳에서 파리스 왕자의 저주와 함께 백골이 될 때까지 남아있어야 할 거야. 음, 하하하 핫 응 허허허허 호호호홍야 이야옹….”


“……”

“시나몬… 시나몬… 시나몬…”


준영은 미칠 것 같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시나몬 향만 가득했던 것이다. 시나몬, 시나몬, 시나몬 준영은 머리를 쥐어짜며 흔들어대며 기억을 짜내려 바닥에 머리를 찧어봤으나 떠오르는 단어라곤 오직 시나몬뿐이다. 준영은… 그래서… 계속…


“시나몬, 시나몬, 시나몬…”

“시나몬… 그리고 나머지는… 뭐… 시…”


파리스 레스토랑은 아파트 주변 산책로에 위치한다. 산책자라면 누구나 파리스 레스토랑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집이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런 그리스 풍의 레스토랑은 재개발 아파트 주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곳의 문은 아무도 두드리지 않을 것이다. 무료함에 빠진 고독한 산책자라면 또 모를까…


오늘은 왠지 파리스 레스토랑의 단단한 철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운이 좋다면 고양이 사나이로 변신한 준영을 만나게 될지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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