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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07. 2023

고독한 산책자 2/4

단편 소설

고독한 산책자 1/4 보기


고독한 산책자 1/4 요약


준영은 도시에서 고독한 산책을 즐기는 인물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매일 무의미한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산책 중 "파리스 레스토랑"이라는 신비한 장소를 발견하고, 그곳의 의미와 존재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느낀다. 그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 결국 그곳을 직접 방문하기로 결심하는데...




출입구 앞을 가로막은 철문은 주석 빛깔로 칠해져 있다. 손으로 살짝 건드리니 표면에서 마치 철에 수놓은 창살들이 서로 마찰하는 것처럼 불편한 소리를 발산했다. 손으로 밀었더니 차가움이 손끝에서 심장까지 전해졌다. 비장함과 비밀스러움을 동시에 품은 철문은 안쪽의 음산한 세계를 위장하고 있다. 


밀어붙였더니 문은 비명 소리 같은 걸 내뱉더니 지친 것처럼 스르르 열려버렸다. 철문 안쪽에는 비밀의 화원이 숨겨져 있지만, 몇 백 년 넘게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것처럼 제멋대로 방치되어 있다.


몇 달 동안 정리하지 않은 마치 밟으면 부스러질 것 같은 잔디밭을 지나쳐, 외관상 관목숲처럼 보이지만 다만 잡초일 뿐인 어지러운 덤불을 지나, 그리고 석기시대의 제단처럼 생긴 계단 3개를 올라, 레스토랑 내부로 진입했다. 


주택의 현관처럼 생긴 곳을 지나치자 아주 넓은 회색 홀이 나타나 준영을 삼킬 듯 덮쳐버렸다. 넓은 홀에 조명은 정중앙에 단 하나 천장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을 뿐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인지 조명은 랜덤 하게 흔들리며 준영에게 야유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마치 박쥐가 촛불을 입에 물고 거꾸로 매달린 채, 증오의 눈초리로 준영을 감시하는 듯하다. 카운터 뒤에는 등을 돌린 남자가 흔들의자에 몸을 뉘인 채 말없이 앉아 있다. 그 남자는 손님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설마 준영의 옷차림이 후줄근한 운동복이라서 그런 걸까. 


박쥐처럼 어둠 속에 시선을 묻은 남자의 눈동자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차가울 테지만, 눈을 감은 박쥐든, 등을 돌린 남자든 모든 느낌은 전적으로 준영의 육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남자의 눈빛은 아마도 얼음 조각처럼 예리하고 냉정하게 이 레스토랑의 구석구석을 비출 테니.


안내도 받지 못한 불쌍한 손님인 준영은 적당한 자리를 하나 골라 앉았다. 마치 외딴 숲 속에 혼자 버려진 기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무대에 홀로 앉아, 다루지도 못하는 악기와 씨름하며 시간이 제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실력 없는 연주가가 된 것 같다. 카운터에 앉은 남자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흔들의자에 앉아 있고 테이블들은 형식 없이 홀에 흩어져 있고, 커다란 티브이에서는 프로야구를 중계하고 있지만 소리는 생략된 채, 아까부터 같은 하이라이트만 반복 재생하고 있다. 잠시 고민하던 준영은 자리에 앉아 재미없는 그림책을 보는 아이처럼 메뉴판을 쓸어 넘겼다.


‘헬리오스의 빛' - 100,000원

'헤라클레스의 힘' - 150,000원

'페르세우스의 용기' - 92,000원

'아테네의 지혜' - 99,000원

‘파리스의 절망적인 사랑' - 49,000원


준영은 마치 고문 의자에 강제로 붙들린 죄수처럼 무력하기만 하다. 뭔가 불길한 악마의 에너지가 점차 준영을 잠식하고 있는데, 마치 전기의자에 앉아 있는 것처럼 일어나기만 하면 끝장이 날 것 같달까. 등 쪽에서는 서늘한 냉기가 스며들었지만 두려움이 섞인 땀방울이 아래쪽으로 침착하게 흘러내렸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무수하게 우리의 삶을 흔들어놓지 않던가. 주문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


나가고 싶은 마음은 불길처럼 뜨겁게 차올랐지만, 몸은 마치 빙하에 갇힌 화석처럼 움직일 수 없다. 그 뜨거운 욕망은 심장을 뛰게 하고, 혈관을 타오르게 만들었으나, 그의 다리는 단단한 뿌리 속에 고정되어 있다. 손은 떨리고, 머리는 혼란스러웠으며, 그의 몸 전체가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에게 지배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위아래 입술은 서로를 굳게 흡착했고, 준영은 그저 현실과 꿈 사이를 방황하는 고독한 산책자가 된 것 같다. 그래, 준영의 주머니엔 8번 접힌 5만 원 권이 한 장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준영이 가진 마지막 카드다. 하지만 히든카드는 아무 때나 불쑥 쓰는 그런 평범한 카드가 아니다. 


그러나 선택권은 준영에게 없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기운이 준영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저 가운데, 박쥐처럼 생긴 녀석이 계속 감시 중이지 않은가. 주머니 속으로 손을 찔러놓곤 지폐를 만지작거렸다. 손 떼를 묻히며 문질 문질 거리지만, 이제 이 5만 원과는 작별을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하지? 주인은 준영에게 관심이 없다. 레스토랑도 육중한 철문도, 저 무심한 불빛도, 담벼락의 초록색 담쟁이도, 심지어는 이해할 수 없는 메뉴판도 준영에게 관심이 없다. 그런데 준영은 지금 배가 고프다. 몇 달은 굶은 사람처럼 테이블 위에 엎어질 것만 같다. 그래서 준영은 주문을 하고 싶은데 ‘파리스의 절망적인 사랑’이 어떤 음식인지 알 수 없어서 불길하다. 불길함 그러니까 불안은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불안은 석연찮게 흘러가는 미래 탓에 생긴다.


‘파리스의 절망적인 사랑…?’이라고 자신도 모르게 금지된 장난을 치듯 메뉴를 슬며시 낭독하듯 읊어봤다. 애타게, 절실한 마음을 담아서, 하지만 자신 없는 목소리, 공기는 변함없이 진공 속을 흘렀다. 여전히 이곳엔 침묵의 사위만 가득하다. 아무도 준영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다.


준영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준영의 시야가 흐릿하게 멀어지며, 그의 존재는 마치 그림자처럼 존재감조차 옅어졌다. 피곤함이 온몸을 짓눌렀고, 살아 있는 감각 곳곳에 잠의 신인 휘프노스의 손길이 스미기 시작했다. 그는 몇 번이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테이블 위에 이마를 부딪쳤지만, 결국 잠이 통증을 이겨버렸다.


그러다 갑자기 나타난 둔탁한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테이블 위에 음식이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다. 준영은 눈을 휘둥그레 뜨곤 주변을 둘러봤다. 카운터의 남자는 여전히 흔들의자 위에서 뒷모습만 보이고 있으며, 주변엔 역시 나 홀로 뿐이다. 식당 안은 더욱더 어둡고 불안한 기운으로 돌변했고, 준영은 그 완벽한 어둠 속에 홀로 남아 있다. 그의 마음속엔 불길함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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