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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14. 2023

고독한 산책자 3/4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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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책자 2/4 요약


출입구 앞의 주석 빛깔 철문을 통과한 준영은 음산한 세계에 속한 비밀스러운 레스토랑을 발견한다. 잔디밭과 잡초로 뒤덮인 덤불을 지나 석기시대 제단 같은 계단을 올라 그곳에 들어간다. 회색 홀에는 위태롭게 매달린 조명이 있고, 카운터 뒤에는 무관심한 남자가 앉아 있다. 준영은 불안하게 메뉴를 살펴보며 주문하고 싶지만,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다. 불길한 느낌과 불안함, 배고픔과 절망적인 사랑에 대한 메뉴의 이름 등이 그를 압박하며, 그의 마지막 카드인 5만 원 권과의 작별을 시사하는데




순금으로 장식된 거대한 접시 위엔 음식이 놓여 있다. 반짝이는 황금빛 물결 위로 음식이 준영의 시선을 따라 흐른다. 음식보다 더 호화로운 황금접시라니! 그런데 이 음식은 무엇일까. 준영은 그저 메뉴를 짧게 불러본 것이 전부였는데, 바로 주문까지 이어진 것이다. 말도 안 돼! 하지만 준영은 여전히 배가 고프다. 그래서 이 상황을 굳이 이해하고 싶진 않다. 최소한 이 음식을 허락 없이 먹는다 해도 돈만 지불하고 나가면 그만일 것이다. 준영은 주머니 속의 5만 원을 주물럭거렸다. 흠, 가만히 관찰해 보니 이만하면 나무랄 데 없는 비주얼이다. 맛은, 영락없이 ‘파리스의 절망적인 사랑’처럼 달콤하면서도 쓰릴 것이다. 이곳에서 탈출하지 못할 운명이라면 배부르게 음식이나 해치우면 그만이다. 준영은 음식을 먹지도 않고 이미 소화하려는 듯,  녹여버릴 듯한 열망으로 바라보고 있다.


접시 위엔 인간을 저주하는 주술인형처럼 생긴 바게트 빵, 올리브, 하바티 치즈, 이집트의 병아리 콩과, 시나몬 향신료, 그리고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나 즐겼을 법한 기묘하고 못생긴 문어 한 마리와 그것에 곁들인 오레가노, 미나리와 월계수 잎, 그리고 와인 한 잔과 양고기 조각이 얌전하게 준영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먼저 빵에서 팔 한쪽을 거칠게 떼어냈다. 그리고 저주를 끝내버리겠다는 태세로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빵은 물론 빵 맛이다. 빵이 소고기 등심 맛일 리는 없지 않은가. 모든 식재료들은 원수지간처럼 서로 화합하지 못했다. 잔치는 풍성했지만 재료들은 마치 서로 짜증을 부리고 있는 것 같달까. 재료의 화합도, 보조도, 어우러짐도 없다. 빵 몇 조각을 떼어먹고 문어 다리 하나를 맛보곤 포크를 그대로 내려놓았다. 시나몬 향이 나는 은은한 소스만이 오직 제 역할을 해내는 듯하다.


“이런 배신자 같은 놈! 딱 파리스 같은 맛이네!”


하지만 준영은 파리스가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른다. 그런 맛은 공짜로 줘도 먹지 않을 것 같다. 음식을 그대로 남겨두고 준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무뚝뚝한 남자가 앉은 카운터로 태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준영은 음식값을 지불할 의향이 전혀 없다. 이런 형편없는 음식에 돈을 내는 것은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카운터를 곧장 통과하는데 마치 오래된 동굴을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등을 돌린 남자가 등짝에 확성기라도 놓은 것처럼 볼륨을 최대로 올렸다.


“돈은 내고 나가야지. 음식을 먹었으면… 엉?”


무시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출입구 천장에서 스파르타 전사들이 쓰던 거대한 창인 도리스가 우르르 천둥소리를 내며 연거푸 쏟아졌다. 굵은 빗줄기처럼 날카로운 창살이 바닥을 사정없이 내리찍어버린 것이다. ‘헉, 하마터면 온몸에 구멍이 뚫릴 뻔했군! 다행이야’라고 한숨을 내쉬기엔 뭔가 일이 단단히 꼬여가고 가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남자와의 길고 긴 언쟁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이 말이야. 음식에 입을 댔으면 계산은 해야지”

“난 음식을 먹은 적이 없어요. 저걸 음식이라고 하면 신문지 조각도 라자냐가 되겠군요. 난 저 접시 위에 굴러다니는 그걸 문어라고 부를 수 없어요. 저걸 문어라고 하면 노란 고무줄도 바다의 미각을 자랑하는 해산물로 변신하겠군요."


그때, 드디어 남자가 서서히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실크해트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는데, 남자의 굳은 표정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연상할 수 있었달까. 아무튼 남자는 상당히 화가 났는지 헛기침을 크게 외치더니 휴지통을 들어 그 안에 가래침을 퉤 하고 뱉어냈다. 그리고 실크해트 옆에 불쑥 솟아난 귀를 가렵다는 듯이 손톱 끝으로 벅벅 문질러댔으나, 욕구가 충족이 되지 않아서 더욱 짜증이 난 것처럼 보였다. 


그 남자는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이런… 남자는 고양이 상이... 아닌 실제 고양이 얼굴을 한, 그래 바로 고양이 사나이였다. ‘고양이? 사나이가 고양이야? 고양이가 사나이인 거야?’ 준영은 이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일이 대체 어떠 형국으로 돌아가는 건지, 메뉴판에서 구경한 파리스 왕자의 이름만큼이나 어이가 없어서 크게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그런데  순간준영은 남자의 목소리에서 이상한 변화를 감지했다그의 목소리가 점점  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마치 포우의 검은 고양이 같은 불길한 울음소리로 변해가는 것이다순간카운터  그림자에서 남자의 모습이 말끔하게 지워졌다대신 어둠 속에서 거대한 검은 고양이의 형체가 등장했다 눈동자에는 붉고 뾰족한 빛이 담겼으며앞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에 날카로운 자국을 찍으며 준영에게 다가섰다.


준영은 순식간에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그러나 검은 고양이 사나이는 천천히 그리고 위협적인 앞발톱으로 준영을 압박하며 다가섰다 순간준영은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식당 주인과  검은 고양이 사이에 어떤 깊고 어두운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너무 뒤늦은 터였다.


고양이의 사나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식당 전체가 불안한 기운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외부 세계와 단절된 듯한  공간에서준영은 점점  어둠에 휩싸여 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준영은 애써 침착한 척하면서…


“장난치고 앉아 있네. 아저씨 유튜브 촬영이라도 하는 거예요? 그 탈 쓰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고 그거 쓰는 건 아저씨 자유니 뭐라 간섭은 하지 않겠는데요? 아무튼 돈은 절대 낼 수 없습니다. 아니, 내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요. 그런 형편없는 음식을 내놓고 손님에게…”


“그래, 돈을 못 내겠다는 거지? 레스토랑의 럭셔리한 서비스를 이용해 놓고 팁은커녕 한 푼도 못 내놓겠다는 거네. 여기서 몸으로 때울 생각도 없을 테고, 그래… 알았어. 그렇다면… 너희 거지 같은 놈들에게 보여줄 게 있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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