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공심 작가 = 나의 화신 = 글쓰기에 미친자
공심 작가는 늘 도구에 굶주려 있다. 그는 도구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에게 도구는 어떤 의미가 될까? 그가 정의하는 도구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컴퓨터 시스템에서 작동하는 각종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도구는 창작의 과정에 관여한다. 이것은 2 × 2 = 4처럼 그에게 명백하다. 아이디어는 창작 과정을 거쳐 책이라는 작품으로 탄생한다.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해봤자 도구 없는 아이디어는 버터 없는 앙버터 빵에 불과하다.
아무튼 도구에 '도른자(미친자)', 즉 공심 작가라는 인간은 도구 없는 원시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는 도구에 최적화된 인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까? 그의 도구 변천사를 들여다보자.
Tool : 구글 킵, 노션, 에버노트(망했음), 종이와 만년필(있어 보임)
이 단계에서는 메모가 중심이다. 기록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초짜 공심 작가는 아이디어는커녕 사실상 머릿속이 텅 빈 진공 상태였다. 그가 머리를 쥐어짜봤자 죄 없는 흰머리만 한 움큼 뽑혀 나올 지경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일상을 살아가며 군말 없이 메모에만 전념했다. 닥치는 대로 어떤 생각이든.
공심 작가는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했으므로 '구글 킵'을 썼다. 사실 누군가 좋다고 해서… 구글 킵은 윈도우 메모장의 상위 호환 버전처럼 보였다. 라벨(일종의 태그 개념)을 만들고 메모를 입력하면 된다고 침을 튀기며 그는 강조했다. 게다가 음성 기능도 지원해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혼자 주저리주저리 속삭여도 다 알아듣는다고 했다. 그래서 슈어 마이크 25만 원짜리를 샀다나…. 포스트잇처럼 색상까지 기호에 맞게 설정할 수 있으니 메모계의 이단아, 아니 메모계의 아이유가 구글 킵이었다. '노션이 좋아요? 구글 킵이 좋아요?'라고는 공심 작가에게 묻지는 말자. 공심 작가의 기호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다. 구글 킵 밖에 모르는 공심 작가를 괜히 노션에 물들게 하지 말자. 툴 비교하느라 정작 메모는 못할 수도 있으니.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다면 구시대적이긴 하지만, 종이에 낙서해도 무방하다. 낙서는 자유로운 사고를 돕고 아이디어를 착상하도록 지원하는 아날로그계의 신이니까. 노트에 끄적거리거나 A4 백지를 가져다 놓고 휘휘 그림을 그려도 좋고 접신해서 신이 이야기하는 대로 받아 적어도 좋다. 작업이 끝나면 결과물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해서 구글 킵에 옮겨놓으면 왠지 디지털계에도 명함을 내민 것 같은 기분이다. 괜히 성질난다고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날아가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 단계에서는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빠르게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 글을 쓰기 위한 아이디어는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기록하는 도구가 중요하다. 공심 작가는 구글 킵에 ‘인사이트’, ‘아이디어’, ‘책 속의 문장’, ‘글감’ 등의 라벨을 만들어놓고 생각날 때마다 즉시 기록했다.
툴 : SciSpace, 챗GPT, Claude, 구글 스칼라. DBPia, 교보 SAM 서비스, 구글 킵, 노션, Perplexity AI
1단계에서 메모를 열심히 했는가? 적어도 1,000건 이상의 메모가 확보되어야 다음 단계로 진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한두 건 입력해 놓고 2단계를 기웃거린다면, 다시 1단계로 냉큼 돌아가도록 하자. 자료 수집 단계는 맹목적인 1단계의 메모와는 격이 다르다. 여기에서는 관심 있는 주제에 맞게 자료를 선택적으로 수집한다. 말하자면 타깃을 향한 정밀 요격인 셈이다. 이게 무슨 소릴까? 1단계에서 메모는 귀납적으로 이루어졌다. 쉽게 말해서 서로 관련성이 떨어지는 상념의 조각들이 얼키설키 얽혀있는 형세가 1단계 메모라면, 2단계인 자료 수집 단계에서는 목적에 따라, 목적에 부합하는 자료들만 능동적으로 모으는 단계다. 1단계가 목적이 없었다면 2단계 자료 수집 단계에서는 목적이 존재한다.
목적이란 '지적 호기심'이 될 수도 있고 오늘 '블로그에 발행할 글의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주제가 결정된다고 무작정 글부터 쓰는, 그러니까 인간의 블러드라면 환장해서 침부터 꽂아대는 성격 급한 모기는 아닐 거라 믿는다. 아무튼, 주제가 윤곽을 드러내게 되면 다른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다양한 시각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국외 학술 논문까지 자세하게 열람할 수 있다.
SciSpace에 접속하면 한글을 키워드로 논문을 검색할 수도 있고, 챗GPT에게 특정 주제로 자료를 조사해 달라고 할 수도 있다. 2억 7천만 편 이상의 학술 논문을 대상으로 검색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한글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검색 결과에 대해 AI가 간략하게 통찰까지 제공한다. 이 기능은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절약해 줄 수 있다. 논문의 주요 내용을 PDF에서 추출하는 기능이 있어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꺼내올 수 있다. PDF로 작성된 전문에 대해 인공지능에게 질문해서 내용을 열람하지 않고도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다. 굳이 국회도서관이나 사회과학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된다.
아날로그에 여전히 고집하는 당신이라면 DBPia나 교보문고 학술 정보 서비스를 이용하면 논문을 열람할 수도 있다. 교보의 경우 SAM 서비스를 구독하면 논문을 열람할 수도 있으니 그쪽을 참고해도 좋다. 물론 이 단계에서 수집한 자료들도 구글 킵과 같은 툴에 저장하는 것을 잊지 말자.
자, 여기서 명심할 것이 하나 있다. 1, 2단계에서 메모 및 자료 수집한 내용은 아이디어를 착안하거나 책에서 얻어온 문장, 학술 논문을 수집하는 단편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로서 책을 출판하는 경우에 목차를 작성하는 것과 다른 상황이다. 그것은 1, 2단계를 반복적으로 오가며 복잡한 사고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처음부터 작가가 되기 위해 콘텐츠의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는, 즉 연역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경우는 극히 예외에 해당하니까, 그것의 설명은 나중으로 미뤄둔다. 지금은 순수하게 메모와 자료 수집에 집중하도록 하자.
툴 : XMind, 노션, 챗GPT
글을 작성하려면 설계도가 필요하다. 건축만 설계도가 필요한 게 아니다. 프로그래머에게도 글을 쓰는 작가에게도 설계도는 필수다. 설계도는 어떻게 작성이 될까? 서론 - 본론 - 결론,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해결-결말, 이런 내용이 설계도다. 글의 밑거름이 되는 자료다. 어떻게 글을 전개할지 간단하게 미리 요약을 기술해야 작성 단계에서 술술 쓰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1, 2 단계를 오고 가다 글감이 하나 퍼뜩 떠오른 상황을 가정해 보자. 주제는 ‘작가는 어떤 툴을 사용할까? 작가에게 툴이 꼭 필요할까?’ 이런 거다. 키워드로는 ‘글쓰기’, ‘툴’, ‘작가’ 대충 이렇게 정리된다. 글의 구조는 필요에 따라 서론-본론-결론, 기-승-전-결 등 단계에 따라 필요한 내용을 간단하게 서술하면 된다.
글을 쓸 자신은 있는데, 뼈대를 만들 자신이 없다? 나는 구조적인 면에 취약하다? 그렇다면 챗GPT에게 뼈대의 작성을 맡겨 보자. 채팅 창을 열고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지자. “작가는 어떤 툴을 사용할까? 작가에게 툴이 꼭 필요할까?’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는데, 주요 키워드는 ‘글쓰기’, ‘툴’, ‘작가’야. 기-승-전-결 구조로 각 단계별로 어떤 내용을 작성할지 간단하게 정리해 주고, 필요하다면 인터넷에서 조사를 해서 참고 자료를 첨부해 줘. 그리고 첫 문단을 예시로 작성해 줘” 이런 식으로 주제와 키워드를 프롬프트로 만들어서 던지면 나름 설계도를 기민하게 작성해 준다. 챗GPT가 만들어준 설계도가 마음에 안 들면 추가적으로 대화를 펼쳐가면서 글에 담을 내용을 풀어나가는 것도 좋다. 대화를 진행하다 보면 글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방향이 잡히기도 한다.
구조 설계 단계에서는 ⑴한 편의 글을 대상으로 설계를 하기도 하지만, ⑵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 목차를 작성하기 위한 작업에 임하기도 한다. 1, 2 단계에서 충분히 책 한 권을 쓰기 위한 예열이 완료됐다면, 바로 출간을 위한 원고 작업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여기서 목차를 작성하게 되는데, 목차는 보통 작가의 몫이다. 출판사에 제안을 받아서 편집자와 함께 목차를 짜는 경우도 있지만, 목차 작성의 책임은 대부분 작가에게 있다.
구글 시트나 노션으로 목차를 작성하게 되는데, 목차 작성이 어렵다면 시중에 출판된 책 중에서 내가 써야 할 책과 결이 비슷한 책을 벤치마킹해서 작업하는 방법도 있으니, 다른 책들이 목차를 어떻게 구성했는지 연구해 보자.
툴 : Scrivener, 노션, MS-Word, 메모장, 티슈 한 장(헤밍웨이도 이렇게 했음)
비로소 글을 쓰는 단계까지 진입했다. 당신에겐 다양한 툴이라는 조건이 생겼다. 입맛에 맞는 툴을 쓰면 되지만, 10만 자 이상의 긴 글을 쓰는 작가라면 스크리브너를 이용하는 게 좋다. 스크리브너(필경사, 필경사 바틀비와 상관없음.)의 장점은 작가가 직접 툴을 개발했다는 데 있다. MS-Word를 쓰다 빡쳐서 직접 개발했다고 하니 왠지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실제로 사용해 보니 굉장히 마음에 든다. 좋은데 이걸 어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다. 스크리브너를 자세하게 설명할 챕터로 역할을 넘기기로 하고 여기서는 간단하게 갈음한다.
스크리브너는 작가에게 필요한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여러 섹션으로 나눠 쓰도록 돕는다. 스크리브너는 글을 목차를 중심으로 구조적으로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개별 목차는 드래그 & 드롭으로 위치를 언제든 바꿀 수 있다. 또한 한 편의 글도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눠서 쓸 수 있고 글의 완성도를 태그로 설정할 수 있어 진척도를 관리하는데도 좋다. 글을 쓰는 중간에 필요한 참고 자료를 한곳에 모아두고 글과 동시에 참조할 수 있으며 실시간으로 몇 자의 글을 썼는지 글 한 편으로, 전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또한 전자책의 표준인 Epub 파일로 저장까지 할 수 있어서 전자책 플랫폼에 바로 유통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책 한 권을 쓸 때는 스크리브너만큼 좋은 툴이 없다. 다만 단점은 가격인데, 약 3만 원 정도만 지출하면 평생 업그레이드가 되니까, 그 정도는 아까워하지 말자. 맥과 윈도우를 모두 지원하니 플랫폼에 따라 구입하면 된다.
툴 : 블로그 에디터, 브런치 에디터
블로그 에디터를 언급한 이유는 맞춤법을 마지막에 체크할 때 요긴하기 때문이다. 스크리브너에서 완성된 글을 블로그 에디터에 붙여넣기 하고 맞춤법을 체크한 다음 다시 스크리브너로 보내자. 스크리브너 자체에서도 맞춤법 기능을 제공하긴 하지만, 정교하진 못하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 에디터나 브런치 에디터를 마지막에 꼭 쓴다.
툴 : 구글 드라이브, 구글 독스, 노션
출판사와 협업할 때는 거의 구글 드라이브와 구글 독스를 쓴다. 정리하자면 스크리브너에서 완성된 글을 MS-WORD로 내보내기 할 수 있는데, 그것을 구글 드라이브에 업로드하면 출판사 관계자와 실시간으로 협업할 수 있다. 구글 드라이브의 폴더만 공유해서 링크를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MS-WORD로 작성한 문서는 구글 독스에서 자동으로 열 수 있다. 구글 독스의 장점은 원고를 수정하지 않고 코멘트 기능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실시간으로 편집자와 작가가 소통하며 원고를 편집할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출판사는 구글 독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노션을 쓰면 더욱 편리하긴 하지만, 구글 독스보다는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툴 : 구글 드라이브, 카카오톡
원고의 작성과 교정 작업이 끝나면 조판 작업에 들어간다. 이제 작가는 함부로 원고에 손을 대지 못한다. 인쇄 직전인 조판 상태에서는 협업이 주로 PDF 파일로 이루어진다. 작가는 원고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며 수정할 부분을 댓글 기능을 통해 전달한다. 이런 과정이 보통 3회 정도 이루어지면 인쇄를 하게 된다.
책의 제목이나 프롤로그, 에필로그의 작성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책 표지의 디자인은 7단계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툴 : 뽀모도로 타이머
뽀모도로는 일정한 시간을 설정해서 집중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반복하며 글쓰기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25분간 작업하고 5분 휴식을 취하는 패턴을 따른다. 의자에 30분 이상 앉아있지 말도록 하자.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올라간다고 하니.
25분간 집중해서 글을 쓸 때는 최대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쓰도록 하자. 그래야 글이 자연스러워진다. 수집해 놓은 자료는 쓰기 이전에 충분히 읽어서 숙지해 놓도록 한다.
음악과 몰입 기법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을 추천한다. 음악의 박자와 리듬이 글에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준다. 로파이(lofi) 음악, 재즈. 클래식처럼 집중에 도움이 되는 장르를 추천한다. 글을 쓸 때 유난히 영감을 흔드는 음악이 있다. 나의 경우는 필 콜린스의 'Do you remember'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면 글이 잘 써지는 느낌이 든다.
https://youtu.be/NTvR7HySgHo?si=6dM6dMgmAdycu26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