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작가는 어떻게 글을 쓰는가
나는 자타 공인 파워 INFP다. MBTI의 두 번째 글자 N, 즉 iNtuitive(직관형)은 INFP의 핵심이다. 직관형은 창의성과 미래지향적 사고를 품고 있다는데, 곰곰이 되새겨보니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나는 직관형이고 게다가 매우 내성적인 편이다. 글을 쓰거나 말할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에 집착하는, 그러니까 몽상적인 글쓰기를 선호한다. N 종족들은 감정을 직관적으로 느끼기 위해 상징과 비유가 포함된 글 읽기를 즐긴다. 그렇지만 때론 이야기 속에 감정을 과도하게 몰입하다 현실이 아닌 상상의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직관은 사전적 정의로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등의 사유 과정 없이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글쓰기 과정에서 놀라운 장점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소설을 쓸 때 인물의 복잡한 성격을 구체화하거나 예상치 못한 플롯 전개를 전개하는 데 직관이 큰 역할을 한다.
칼 융은 감각, 사고, 감정, 직관을 인간의 주요 기능이라 정의했다. 직관은 즉각적이지만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능력이라고. 작가에게 직관은 무의식의 세계를 건드리며 영감을 얻는 길로 이끈다. 창의적인 영감은 인위적인 사고의 조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 감정, 연상 작용, 영감이 글을 창의적으로 쓰게 만든다.
나는 그래서 자주 무의식에 기대려고 애쓴다. 글을 쓸 때는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야 한다. 고요하고 고독한 분위기에 빠져드는 나만의 리추얼을 반드시 지킨다. 집 앞 작은 공원을 목적 없이 떠도는 일, 낮잠을 자는 일, 레고 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손으로 만들어보는 일, 우주의 길이와 원자로 구성된 물질세계를 공상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Eva Cassidy의 'Kathy's Song'이나 Phil Collins의 'Do you rember'를 틀어놓고 눈을 감는다. 문득 떠오르고 스쳐 지나가는 상념들과 그 상념이 살아 숨 쉬는 편안한 풍경과 내가 하나라고 상상한다. 그리고 그 평화로운 분위기와 나의 조성을 맞춘다. 음악이 무엇을 써야 할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적인 호기심이 글감을 주지도 않는다. 단지 낯설지만 평화로운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것일 뿐이다. 무의식 속으로 깊이 침잠할수록 그곳에서는 어떤 글자가, 귓속말이, 어떤 추동이 직관을 건드린다.
그리고 무아지경에 빠진다. 나는 받아쓰기만 할 뿐이다. 연상의 연속적인 흐름, 그 흐름 속에 숨겨진 상징,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야기가 다가온다. 나는 그것을 인간의 예술적인 표현 방식인 비유와 은유로 세상에 드러낸다. 물론 그것들은 날것에 불과하다. 살아서 춤을 추며 번뜩이지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직관에 기대는 일이다.
자, 그렇다면 직관이라는 재능은 글쓰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직관은 우리가 감각한 세상을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역할을 담당한다. 세상에서 흡수한 정보는 느낌으로 체화되고, 작가는 그것은 비유와 상징 그리고 묘사라는 방식으로 다시 세상으로 표출한다. 내가 경험한 대상을 직관할 때, 그 대상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럴 때 예술적인 영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글 쓰는 일이 그 자체로 예술적인 행위임에도 나는 때로 주저한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무엇보다 나의 직관을 믿고 따르는 게 중요하다. 기억한다, 의심하지 말고 직관의 능력을 믿고 따르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글재주가 없어', '표현력이 부족해', '어휘력이 달려'와 같은 자기 비하는 과감히 버린다. 대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막막한 순간에는 떠오르는 이미지나 감정을 글로 옮긴다. 주제에 신경 쓰지 말고 논리적 타당성도 검증하지 말며, 목표한 글자 수를 달성하는데 몰입한다. 수정은 완성한 후에 천천히 한다.
글을 쓸 때 직관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플롯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논리적인 계획보다 더 큰 흐름에서 직관은 이야기의 본질을 잡아낸다. 인물의 심리를 묘사할 때, 나는 직관을 통해 캐릭터의 심리적 깊이를 포착하고 그들의 내면세계를 보다 생생하게 그린다. 이 측면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인물이 될 때, 즉 인물이 주도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때 확인할 수 있다. 하루키를 비롯한 많은 소설가들은 인물에게 이야기를 맡긴다. 작가가 아닌 인물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도록 놔둔다. 직관의 본능적인 통찰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글 쓰는 순간에는 나와는 또 다른 페르소나에게 글쓰기를 맡기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무의식을 여러 층위로 표현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피상적으로 느끼는 세계보다 이면에 숨겨진 더 깊은 심연에 집중한다. 본질적 층위에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작가의 무의식 속에 잠겨 있던 심상들이 솟아올라 만들어낸 걸작이다. 이 작품은 한 인간의 정신적 성장과 자아 찾기라는 주제를 다룬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어린 시절부터 빛과 어둠이라는 두 세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러나 이 빛과 어둠은 단순한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선다. 그것은 융이 말한 인간의 본성이 지닌 양면성을 상징한다. 헤세는 이 상징으로 인간 내면의 복잡다단한 풍경을 그려낸다. 독자들은 싱클레어의 여정을 따라가며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낯설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싱클레어의 삶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와 감정적으로 연결되고 동화된다. 감정적인 직관을 체험하는 순간인 것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인간 소외와 정체성 상실이라는 현대인의 불안을 드러낸 작품이다.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벌레로 변신하는 설정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보여준다. 이 기괴한 변신은 육체적 변화를 넘어, 사회적 관계의 축소와 가족 내 정체성의 붕괴를 상징한다. 카프카는 자신의 불안을 작품에 투영했지만, 이는 동시에 우리 모두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잠재된 보편적 경험과 맞닿아 있다. 독자들은 그레고르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있던 인간 소외와 정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감정적으로 작품에 깊이 몰입하며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렌즈로 세상을 본다. 세상은 나에게 다채로운 장면을 보여주고 나는 거기에서 생생한 감각을 얻는다. 세상을 보는 눈은 비슷하지만 느끼는 감각은 다르다. 자신만의 관점을 넘어서 대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이 벌어지면, 나는 그 경험을 글로서 표현하고 싶어 진다.
직관은 유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사고의 본질》에서 주장했듯이, 유추는 사고의 핵심이며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러한 유추를 통해 복잡한 개념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사랑은 전쟁이다"라는 은유는 사랑의 복잡한 특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유추는 생소한 사물이나 개념을 내가 이미 익숙하게 잘 알고 있는 사실과 비교한다. 그리고 범주화는 유추한 사물을 머릿속의 적절한 상자에 분류해 넣는 과정이다.
유추나 범주화는 주관적으로 대상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유추는 무의식적으로 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며 나의 경험의 폭을 기존의 범주와 연결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유추에서는 비유가 가장 핵심적인 기능을 맡는다. 예를 들어, ‘공심 작가는 참 속이 밴댕이 소갈머리 같아’라고 비유를 쓰면, 독자는 ‘아하! 공심 작가는 속이 아주 좁고 심지가 얕구나’라는 사실을 직관할 수 있다.
직관은 어떻게 일어나는 걸까?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인 사고도 아닌 직관은 어떻게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걸까? 직관은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와 깊이 연관된다. 감정은 직관적인 결정과 행동에 관여한다. 이성적인 판단은 시간이 걸린다. 눈앞에서 흑곰이 앞발을 휘두르는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재빠르게 도망치든지, 아니면 곰의 등에 매달려 목을 조르든지. 곰에게 '잠시만 기다려봐!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폭력을 휘둘러도 늦지 않다고!'라고 건설적인 타협을 시도할 수는 없다.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끌어와 현재와 빠르게 연결하는, 그러니까 유추와 범주화 프로세스를 가동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직관은 글쓰기에서 무의식의 세계를 건드리고, 나의 창의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원천이다. 나는 직관으로 무의식의 깊은 세계를 탐험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상징을 글로 표현한다. 나의 직관과 통찰이 독자의 마음속에 작은 울림을 일으키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