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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Oct 10. 2024

작가의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4. 실전 : 내 생각 찾기

작가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나는 한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다. 작가는 의도적인 훈련과 반복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지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순수한 영혼으로 작가는 먼저 존재한다. 한 인간은 우연히 태어나고 나무처럼 묵묵히 자라난다. 그 성장 과정에서 세상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주체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도 한다. 성장 과정은 일관된 방향성을 향해 진보하며,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해 나간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수없이 많은 우연히 빚어낸 경험이 축적된 가설과 검증의 연속이다. 가설은 복잡한 경험을 통해 본질, 즉 자신다운 정체성으로 굳어지며 증명된다. 그렇다면 정체성은 성장이 끝나는 순간 멈추는 것일까? 아니면 계속 변화를 거듭하며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꿀까?


리처드 링글레이터 감독의 『히트맨』을 살펴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평범한 너드다. 하지만 그는 부업으로 청부살인업자를 연기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 그 정체성은 숨겨져 있었고 나타나고 싶었으나, 어떤 심리적인 요인이 억압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지만, 비의도적으로 설정된 환경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 나간다.



정체성은 바뀔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믿음과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방향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에서 깨닫게 된다. 결국 방향을 바꾸는 데에는 혼자만의 의지만으로는 다소 부족하며,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전제를 우리는 자연스럽게 설정할 수 있다.


정체성은 만든다는 게 맞을까? 발견한다는 말이 더 유효할까? 한 인간이 자기 것으로 믿으며 품어온 정체성은 그에게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며,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할까?


나는 지독하게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차가운 겨울, 밤마다 연탄을 갈아가며 얇은 이불을 덮고도 끝없이 스며드는 잔혹한 바람에 몸을 웅크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던 시기부터 청소년 시절까지, 가난은 마치 숨 막히는 늪처럼 나를 감싸며 평생 나를 괴롭히는 괴물로 남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았다. 가난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와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납덩이었다. 그 굴레 아래에서 부모는 자신의 불만을 자식에게 폭발시켰고, 그들의 거친 목소리와 함께 방 안의 공기는 항상 차가운 쇠붙이처럼 날카로웠다. 울분과 원망이 쌓여 갈등이 되어버린 그 공간에서, 나는 마치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난과 갈등은 어린 나를 피해의식으로 물들였고, 나는 평생 이 지옥 같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갇혔다. 나는 우울한 소설책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성장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많은 갈등과 상처를 겪었다. 그것은 나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나는 그 갈등 속에서도 어떤 이야기에 공명되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어린 왕자』, 『소공녀』, 『제인 에어』, 『톰 소여의 모험』, 『대지』와 같은 이야기들,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는 환상이 창조한 세계에 본능적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그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가 차라리 사라지고 싶었다. 옷장을 열면 이 세상이 아닌 전혀 다른 외계 너머로, 거기에서 장엄하게 클라이맥스를 맞아보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 불과했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가난, 억압, 폭력, 열등감, 자기기만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갈등이 많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복잡한 심리와 감정을 잘 읽어내는 감수성을 키우게 된다. 이러한 감수성은 이야기를 섬세하고 풍부하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작가로서 매우 중요한 자질이 된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은 성격이 예민하게 왜곡되며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작가에게는 큰 자산이 된다. 예민함은 글의 톤과 스타일에 깊이를 더하고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심리적 트라우마 역시 강렬하고 진실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원천이 된다.


과연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모두 불행한 세월을 보냈을까? 오직 나만이 피해자인 걸까? 세상이 가해자가 되어야만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만 내가 구원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일까? 나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패배주의의 굴레를 이제는 내 자식에게까지 전해주어야만 하는, 그런 얄궂은 운명을 계속 짊어져야 하는 걸까? 그래서 내가 딩크가 된 걸까.


카뮈는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세상이 끔찍하게 불행한 모습만 보여준다면 나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세상이 지옥으로 연출될지라도, 언젠가 벗어날 거라는 실낱 같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시시포스처럼 매일 바위를 언덕으로 밀어 올려야 할 운명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부스러지는 작은 돌멩이를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 난폭한 운명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 나는 시시포스처럼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보지 못했다. 불행으로 가득한 삶이었지만, 그 안에서도 가끔씩 찾아오는 작은 행복들이 있었기에 나는 살아남을 이유를 나도 모르게 발견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위대한 작가들은 어떤 삶을 보냈을까? 찰스 디킨스는 아버지의 채무로 인해 감옥에 갔고, 12살에 구두약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레마르크는 1차 세계대전 중 전선에 투입되어 부상을 입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썼다. 엘리 위젤은 나치 수용소에서 겪은 고통을 바탕으로 『밤』이라는 자전적 소설을 썼다. 트라우마는 상처의 기억이지만,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작가에게 치유의 과정이 된다.


작가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며, 나는 인간의 성장 과정, 특히 나의 경험과 위대한 작가들이 글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표현했는지 언급했다. 내가 가난 속에서 고통을 겪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다는 사실은 다른 위대한 작가들의 삶과 비교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경험들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어떤 기억들은 강렬한 감정을 동반하며, 아무리 지우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는 나와 내면이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이다. 단순히 생각으로 머무르는 것과 그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글로 표현되는 나의 정체성은 여전히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글 속에는 나의 정체성의 일부분이 분명히 담겨 있다.


이 글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렵다. 다만 인생에서 가장 깊이 각인된 경험들, 그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미친 영향, 상처와 괴로움이 오히려 내 인생을 혁명적으로 전환시킬 모멘텀이 되었음을 말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저 작가는 참 진정성이 있네, 솔직하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나를 정확히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는 내가 글을 통해 드러낸 부분만 보고 평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짧은 글 속에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아내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깊은 고통을 겪었던 순간들,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 상처와 괴로움이 어떻게 내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


작가의 정체성이란, 아니 한 인간의 정체성이란 그가 살아온 삶의 총체적인 경험이 반영된 과정이며, 그 과정 중에서도 하나의 단면일 뿐이다. 나는 지금 가난에서 벗어나 나름 안정적인 삶을 꾸려가며 과거의 상처를 잊는 중이지만, 현재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정체성에는 과거의 잊고 싶은 정체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이 나를 여전히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감정적으로 쓰러지게 만들려는 작용을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나는 그곳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나와 현재 변해가는 나의 정체성, 이 모순된 두 가지가 나를 이루고 있다.



나는 정체성은 한 인간이 표현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지금 당신은 어느 쪽에 몰입하는가? 글인가, 그림인가, 영상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인가? 그곳에 담긴 당신은 현재 무엇에 몰입하고 있는가? 왜, 무엇 때문에,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는가? 표현하기 위해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거기서 해결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그리고 왜 그 정체성을 자신이라 믿고 끝까지 고수하려 하는가?


제텔카스텐의 구축 과정을 설명하며 나는 한 인간의 정체성까지 언급하게 되었다. 그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할 생각이 생산되는 과정이다. 나는 그것을 단지 글로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것은 은유 차원이 아니다. 제텔카스텐이든 메모든, 결국 글쓰기라는 과정에는 자신의 정체성, 작가의 본래적인 자기 인식이 포함된다. 자신이 누구였든 그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누구로 살 것인지, 그것이 더 의미 있다.


다시 『히트맨』으로 돌아와 나는 영화 속 철학과 교수인 게리 존슨보다 매력 없는, 그저 그런 정체성을 지닌 존재다. 나는 교수도, 청부살인업자도 될 위인이 못된다. 주인공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다만 정체성이 과거 어느 한 시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망치고 싶지 않다는 의지도 강하다. 니체의 말처럼 나는  어린아이로 남고 싶다.


나의 성장 스토리가 이런 글을 만들었는지 증명할 수는 없다.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불우한 성장 과정도 있겠지만, 인간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존재다. 현재 내가 쓰는 이 글뿐만 아니라 다른 실용적인 글도 나를 완벽하게 표현하지는 못한다. 적어도 나를 왜곡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래적 실체가 많은 글들 중 하나쯤은 숨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작은 단서를 글에 남겨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몇 가지 솔루션을 제시한다.


1. 자기반성적 일기 쓰기: 반성이란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추는 것이다. 매일 느낀 감정이나 생각, 고민을 글로 정리해 보자.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 두려워하는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게 된다.


2. 질문 던지기: "나는 누구인가?" "변하고 싶다면 어떤 모습으로 구성될 것인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정체성을 다듬는다.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질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3. 다양한 경험에 도전하기: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 목적지 없이 여행하기,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기, 낯선 경험을 시도해 보며 자신의 시각을 넓혀본다.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통해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


4. 자기 수용: 강점뿐만 아니라 약점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으로 약점을 흡수한다고 할까. 솔직하게 자신의 약점을 수용하는 태도가 자신을 온전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5. 창의적인 활동에 몰두하기: 그림 그리기, 음악 연주, 글쓰기 등 창의적인 활동에 몰두해 보자. 창의적인 작업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다.


6. 명상과 자기 관찰: 명상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해 보자. 명상은 자신과 마주하고 현재의 감정과 생각을 관찰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7. 가치관과 목표 설정: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 보자. 무엇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지를 고민하고, 그에 맞는 목표를 세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목표 설정은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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